김의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넘어지는 것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A stumble may prevent a fall)”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고 한다. 이 속담을 듣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은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줄 모르고 어떤 목표를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넘어져 더 큰 봉변을 면하는 광경이다. 일상생활에서 “넘어진다는 말은 자의에 의해서 넘어지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 아닐 것 같다. 자신이 실수하거나, 타인이 의도적으로 넘어지게 하거나, 주위의 환경 때문에 넘어지는 것 외에는. 사실 넘어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몸이 어떤 장애물로 인해 넘어지기 때문에 기분이 상쾌할 수가 없다. 또한 “넘어진다 ”라는 말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며 달려가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일컫기도 한다. 다시 말해 본인이 원하는 바가 아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넘어졌기 때문에 더 커다란 난을 면할 수 있다는 이 속담은 여러 어려움과 위험한 일이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삶에 커다란 위안이 되는 말이다.
살아오는 동안 실제로 넘어져서 아파했고, 원망했으며 일에 실패해서 분해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던 경험이 여럿 있다. 그러나 지금 삶을 되돌아보니 만일 그때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혹은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더 큰 낭패를 당했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어렸을 때 6.25사변이 일어나 우리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부친은 초등학교 교사였고 우리는 당시 황해도 연안이란 도시에 살고 있었다. 난을 피하여 부친과 6살 위인 형은 월남했고 어머니와 나머지 식구는 학남리라는 해주와 가까운 시골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에서 살 게 되었다. 몸이 자라서 발에 맞는 신발이 없었고 전쟁 중이라 물자가 없어서 거의 1년간 맨발로 지냈다. 어느 해 어머니께서 해주에 가서 쌀을 팔아 고무신을 사 오셨다. 오래 신어야 한다고 사이즈가 큰 것을 사 오셨지만, 그때의 기뻤던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사이즈가 커서 자주 벗겨졌지만 새 신발을 오랜만에 신으니 밥만 먹고 나면 어디고 가고 싶어 밖에 나가 돌아다녔다. 동네에는 동갑내기가 없었고, 이웃에 내가 늘 따라다니던 형 또래의 청년이 있었다.
시골에서는 겨울 난방을 위해 땔감을 매일 지게로 한 바리씩 수집해야 한다. 아직 어렸기에 지게를 질 정도는 못 되었고 새 신이 생긴 후에는 매일 이웃 형을 따라다녔다. 산으로 가면 산으로 들로 가면 들로. 추수가 끝난 어느 가을날 형은 들로 갔다. 논에서 지푸라기를 갈퀴로 모으고 있었고 좀 떨어진 곳에서 나도 손으로 모아 보태고 있었다. 갑자기 엄청나게 큰 비행기가 우리를 향하여 내려오며 기총사격을 했다. 늘 하늘 높이 나는 비행기를 봐 왔지만 그렇게 큰 것을 본 일이 없었다. 겁에 질려 총력을 다하여 형 쪽으로 달려갔다. 벼를 베고 난 짚단 뿌리에 걸려 나가 동그라졌다. 사이즈가 큰 신발이니 자연히 한 짝이 벗겨졌다. 나에게는 가장 귀한 것이어서 곧 집어 들고 형에게 달려갔다. 형은 다리에 총을 맞아 피가 흐르고 있었고 고통으로 소리를 질렀다. 겁에 질려 정신없이 집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뛰었다. 비행기가 폭격하고 사라지자마자 폭격한 곳을 보기 위해 어른들이 동네 어귀에 몰려나왔고, 어머니도 그 곳에 계시다가 달려오셨다. 형이 피 흘린다고 하면서 고무신을 한 손에 든 채로 한 짝을 잃었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어머니께서 한 짝은 네 발에 있다고 알려주셨다. 너무 놀라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지금 생각하면 만일 그때 넘어지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며 감사한다.
어머님의 결단으로 나와 동생은 1953년 휴전 직전에 남하했다. 인천에서 살다가 부친께서 서울로 발령을 받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대학은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졸업하는 해에 국가에서 시행하는 기사 고시가 있었다. 기사 고시는 공학 분야에서는 사회에 많이 알려진 사법부의 사법고시 나 행정부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자격시험이다. 합격하면 1급 기사 자격이 정부로부터 주어지며 미래가 보장된다. 대학 재학 동안 학자금을 마련키 위해 입주하여 가정교사를 했기에 시험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는 못했다. 일본 문제집에서 많이 출제된다고 하여 일본어 공부도 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그해 3명이 합격했는데 모두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씁쓸한 마음 달래기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실패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만일 그때 넘어지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정부 기관에 들어갔을 것이고, 정부 기관에서 일하다 보면 여러 사업에 관련하게 되고, 공부하고는 당연히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다. 성격상 정치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넘어졌기에 유학하기로 했다. 군 복무하는 동안 기사 고시는 제쳐 두고 유학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당시 최상의 영어 학습 장비를 갖춘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복무했기에 영어 공부 기회도 좋았고, 가끔 미국 해군의 방문 때 통역하는 경험도 있었다.
살아가면서 넘어짐은 누구에게나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넘어졌을 때 고통과 쓰라린 심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넘어진다는 것은 더 좋은 길을 찾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성경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목적 달성에 실패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기회를 찾고 새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하여 열심을 기울일 때 분명 길이 있음을 믿고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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