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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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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8-17 08:41

김현옥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남편의 건보팀에서 13년 선배 되시는 분께서 생전에 그의 부인을 극진하게 아끼시며 돌보시던
분이 있었다. 그 부인께서 무릎이 튼튼하지 못하시어,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게 되면 꼭
옆으로 오시어 부축하셨다. 자동차 타러 가실 때에도 옆에서 부축하시고 같이 정답게 걸어가셨다.
식당에서 식사하실 때에도 그 남편 되시는 분은 남편팀 식탁에 속하여 떨어져 앉아 계셔도 부인을
사랑을 가득 담아 바라보시기에, 우리는 “그윽한 눈길”로 부인을 바라보고 계신다고 말하곤
하였다. 실제 그 부인은 85세 정도로 나이가 많으시고 몸도 날씬한 편이 아니다. 단정하고 중후한
멋이 있으신 할머니이시다. 언젠가 그 부인께서 젊을 때의 사진을 보여 주셨는데, 너무 멋있고
날씬하고 아름다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귀족적인 매력에 한눈에 반할 미모였다. 현재의 모습은 그
젊을 때와 너무 다르지만, 남편이 아직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을 보면서, 젊을 때 한눈에
반한 인상이 남편에게는 늘 기억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12년 전쯤에 남동생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로스앤젤레스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결혼 전
청년 시절 한국 교회에서 같이 신앙 생활했던 옛 교우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이민 오면서 한국을
떠날 때 그들도 모두 청년들이었다. 30년도 더 지난 후에 만나 보게 된 교우들인데, 나이 들어
늙어진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예전의 젊었을 때의 청춘의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됨을
느꼈다. 지금도 그들을 떠올리면, 나이 든 모습보다는 예전의 젊은 모습들로 생각이 난다. 그 후의
나이 든 모습은 흡사 가면을 쓰고 있던 것처럼, 가면을 벗기고 바라보며 기억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인상은 그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주기도 하고, 같이
생활하고 지낸 시절 경험에서의 인상이 기억되기도 하는 것 같다. 특히 젊었을 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그 사람을 기억하려고 할 때 젊었을 때의 모습이 그 사람의 인상으로 추억된다.
때로는 젊은 날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다가 너무도 많이 늙어 버린 모습에 실망하고 몰라보는
경우도 있긴 하다. 특히 친하지 않았고 관심이 없었던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서양 농담
이야기에서, 어느 할머니가 치과 병원에 갔다가 대기실에서 치과 의사의 이름이 50여 년 전
고등학생 때 알던 잘 생기고 멋졌던 남학생 이름과 같음을 발견한다. 거의 대머리에 회색
머리카락으로 주름이 많은 보기 싫은 할아버지가 된 그 치과 의사를 보게 된다. 그 치과의사에게
언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냐고 물으니, 같은 해에 졸업한 그 동급생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할머니는 반가워서 자신도 고등학교 같은 반이었다고 말한다. 치과 의사는 자세히 할머니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어느 과목을 가르치셨는지요?”라고 묻는다. 할아버지 치과
의사가 보기에 할머니는 동급생이 아니라 선생님으로 보일 정도로 더 늙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남편이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였을 때 일이다. 남편이 거의 알아보지 못한
동창생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특히 친하게 지냈던 동창들은 잘 알아보고, “너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하면서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었지만, 예전의 특징과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있어서 비록 주름이 생기고, 체중이 좀
늘고, 머리가 빠지거나 하얘졌어도 서로 알아보는 것 같았다. 늘 같이 만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같이 늙어 가는 모습을 보며 지내기에 그 사람의 인상은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나, 같이 지내다가
오래전에 헤어진 경우에는 세월이 지나도 헤어질 때 당시의 모습으로 종종 기억된다. 예전에 살던
고향이 언제나 옛 모습으로 마음속에 살아 있어 기억되듯이, 사람들에 대하여 기억되는 인상도 옛
모습으로 남게 됨을 느낀다. 아마도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은 잠재적인
내면의 바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근처에 아들네가 살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만나고 있다. 세 명의 아이들을 둔 아들이
40세가 넘어 요즈음 머리에 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하는데도, 나에게는 항상 20대 초반의
청년으로만 느껴지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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