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어둠은 없다.
북극성도 움직인다. 우주에 고정되어 있는 자리는 없다.
오래 고정된 자리는 빛을 잃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지구의 반쪽은 검은 바다처럼 깜깜했고, 행복도시 닻별 동산은 푸른 소나무들 속에 붉은 기도는 보라색 미선나무가 하얀 꽃망울을 머금고 희미한 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빛과 어둠이 톱니처럼 맞물려 도는 동산에서 수목장 수목들은 바람에 이름표를 흩날리며 빛이 어둠을 삼키기를 기다렸고, 잔디장 지표 위 까만 명판 석물들은 빛이 어둠을 잠재우기 시작할 무렵 초록 바탕에 검정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49년 전에 죽었다. 동년배 산자의 지구 나이로 치면 백 살 하고도 한살이다. 나의 몸은 닻별 동산에 묻혀 있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은하수공원 잔디장 묘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움직이는 북극성에 대해 육지에 파고든 만에 닻을 내려 고정시킨 배로 여기는 틀린 생각들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2년 전 묻힌 내 아내의 몸이 그곳에 있어서이긴 하다.
지금 내 몸은 경남 산청에서 서쪽으로 내달려 품이 어머니같이 포근한 산 하나 넘어 지리산 서쪽 끝자락 북도 ‘금과’ 와 남도 ‘옥과’의 경계, 설산의 선산에 묻혀 있다. 죽어서도 아버지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다. 나는 장손 아버지의 큰아들이다. 그곳은 어찌나 골이 깊든지 내 아버지의 호는 설곡이고 내 호는 죽곡이다. 낮과 밤의 경계에서도 온 땅이 새까맣다. 동쪽 하늘에서 들려오는 빛이 오는 소리마저 끊기게 되면 온종일 그곳은 절망의 암흑이 지배하게 될 땅이다. 이를 간파하고 절망이 판을 깔지 못하게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인 근암 선생은, ‘근암 집 (전남대 도서관 소장)이라는 책을 내고 서당을 개설하여 문학과 천문에 빠진 쟁쟁한 후학들을 배출하고 훗날 긴 어둠이 온다 해도 이를 이겨내고 발아할 빛의 씨앗들을 심어 놓았다.
내 영은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밝은 별자리 카시오페이아에 머무르고 있다. 지구에서 이타주의자로 불렸던 나는 우주에서도 그런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그렇게 돼버린 것이다. 대한민국 공무원 공채 1기인 내 첫 월급을 밥 굶는 이웃을 위해 밀가루 1포대로 바꾸어 준 첫 선행에 얼굴을 드러낸 대가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주지 않고 물고기를 주면서 누가 주는지를 알게 하면 의도하지 않은 이타주의자가 된다. 주는 자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소문은 날개를 달기 때문이다. 반복된 호의는 받는 자의 희망 권리가 된다.
나의 영은 나를 바쳐 북두칠성을 돕기로 했다. 북두칠성이 ‘해’라면 나는 그를 바라보고 도는 ‘해바라기’이고 그가 빛이 필요하면 나는 연 짱 6개월을 한잠 자지 않고도 그를 비출 것이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이의 빛 거울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잠깐 조는 사이에 북극성이 어둠에 빠지면 내 역할을 고스란히 맡아 여전히 빛나도록 비춰줄 친구, 북두칠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북두칠성과 함께 북극성을 위하려는 것은 북극성이 빛을 잃으면 누구나 생의 절반은 나침판 없이 위험한 밤바다를 항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둠의 항해 길에는 도처에 암초가 뱀처럼 도사리고 있다.
죽은 몸을 한 세대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수용하는, 배의 닻을 닮은 닻별 동산의 오늘 아침 해 뜰 무렵에는 아침 고요 수목원처럼 은은한 물푸레나무 푸른 잎이 연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산 잔디장 상단 가운데 정자에서는 두 여자가 넋을 놓고 있다가 불쑥 일어나 닻별 동산과 늘해랑 동산의 능선을 거닐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 몸은 벌써 두 해째 닻별 동산으로의 이장을 정중히 강요받고 있었는데 우주에 맞추기 위한 여분의 달, 소위 윤달이 낀 올해는 더 세게 받았다. 내 아내의 2주기 추도일 아침, 위아래 검은색 옷을 입은 한 중년의 여성 장례지도사에게 흰 상의에 검정 치마바지를 입은 장년의 둘째 딸이 동조하는 태도로 대화를 시작한다.
“닻별 동산의 우리 엄마가 30년 후면 또 다른 묘원으로 옮겨가야 하지요?”
둘째 딸이 무덤 속 인자들의 땅속의 밤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낮은 음성으로 묻는다.
“맞아요, 하지만 대부분 죽은 몸과는 이 자리에서 영원히 이별을 하지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어머님과 아버님을 만나게 해 드려야 한다는 겁니다.”
장례지도사도 동일한 톤으로 대답한다.
“너무 짧아요.”
지구 기준 30년이라는 시간, 행복도시 모습도 세 번이나 바뀔 긴 세월을 짧다고 느낀 둘째 딸이 어둠 위로 푸릇푸릇 깨어나는 몇몇 잔디장들을 보며 말한다.
“요즘 후손들은 30년 이상 줄기차게 추모하러 오는 사람이 없답니다.”
키 작은 장례지도사가 얼굴을 둘째 딸에게 치켜들며 역시 낮은 톤으로 답한다.
그날 별이 쏟아지는 밤, 하나뿐인 내 아들은 안데스산맥 한 봉우리에 오르다 중간 기지에 쉬고 있다. 아마추어 등반가도 아닌 아들이 그곳에 간 것은 높은 산을 밟고 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 높이 들기 위함이 아니다. 대형 광학 마젤란 망원경이 높은 산 위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곳이 북반구가 아닌 남반구여서라고 답해야 대충 맞는다.
내가 죽은 이후 50년 가까이 쉬지 않고 탐구해 온 북반구 하늘보다 아들에게 처녀지인 한국의 대척점 인근 남반구에서 바라본 밤하늘이 더 흥미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가 취미인 자는 아무도 막을 자가 없다. 그래도 내 아들은 취미를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다.
자기 분야든 아니든 한 번 빠지면 최고가 되지 않으면 빠져나오지 않는 내 아들은 아마도 그냥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만의 뭔가를 직접 경험으로 깨달을 때까지는. 지금이 내가 죽기 2주 전의 과감한 행동을 처음으로 공개하기 좋은 기회로 보인다. 며느리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하고 죽은 시아버지에게는 결혼한 여자들은 누구나 싫어한다는 그 ‘시’라는 한 글자를 빼고 기려주었으면 한다. 내 하나뿐인 귀한 아들의 가장 소중한 그것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자연의 모습으로 직접 만들어 주었으니까.
거의 2주간 밥을 못 먹어 기력이 어둠에 빠져들고 있을 때, 내 엄지와 검지의 힘이 더 빠지기 전에 오직 두 손가락만으로 과감히 아빠가 직접 감행했던 아들의 할례, 아빠에게 순순히 팬티 내리고 순종했던 내 아들, 그것만큼은 내가 직접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 오랜 염원이었음을 몰랐던 내 아들의 그것을 3년 후 군대에서 위생병의 칼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남자 몸의 가장 중요한 부위라 해도 칼을 내 손보다 숭고하게 쓰지는 않을 테니까.
함부로 놀려 너무 깊게 잘라 내 아들과 며느리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여간 나는 단박에 해냈고 우리 아들은 진짜 바람직한 남성으로 성장했다. 칼은 손을 당하지 못한다. 특히 어른과 아이의 경계선상 아들에게 아버지의 손보다 더 부드러운 손은 없다. 어느덧 내 며느리도 시아버지가 준 내 남편의 소중한 그것을 자기가 받은 가장 큰 유산으로 인식하여 어둠을 구분하고 미세한 빛의 세기를 감지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더 돌이켜 보니, 말문이 트인 후 채 1년도 안 된 아들의 매우 어린 시절, 한여름 밤 극성이는 모기를 생솔가지에 찬물 뿌려 태운 검회색 연기로 쫓아내며 나와 함께 별 하나 별 둘, 한참을 세더니 갑자기 물었었다.
“아빠, 저 별들 뒤에는 무엇이 있어요?”
라고 아이치고는 좀 심오한 질문을 했다. 나는 그때 이미 짐작했다. 내 아들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아이라는 것을. 그 뒤론 나는 일절 그를 간섭하지 않았다. 내 아들은 좋은 의미의 자유방임형 아들이 되었다. 스스로 결정하고 혼자서 책임진다. 누구나 그렇다면, 모든 구성원이 주어진 권한만큼 책임질 줄 안다면 그 집단은 건강한 것이다.
아마도 내 아들은 고도가 높은 칠레의 한 사막의 천문대에 들어가 지름 8.4미터의 반사경 7개가 크고 둥글게, 한데 모여있는 연꽃잎처럼 설치된 세계 최대 마젤란 망원경으로 카노푸스 노인별을 확실히 관측하고 나서야 돌아올지 모른다. 이 별을 보고 살면 오래 살 거라고 내가 죽어가는 날, 열일곱 살의 아들이 청각이 아직 살아 있는 내 귀에 대고 말했었으니까. 또한 그 별은 돌아와서도 그가 좋아하는 남도 나로도에서 좀 희미하게나마 계속 관찰할 수 있을 테니까.
외계 행성을 탐사하러 화성에 갔다 올지도 모르지만, 내 아들은 그렇게 이 은하 저 은하 경험한 후 끝내 사람들의 근원적 궁금증을 알아낼 것이다. 별세계 너머의 세상을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로 표현해 내는 유일한 작가가 되고야 말 것이다. 그는 맑고 안정된 하늘을 가로지르는 뚜렷한 형태의 남반구를 누구의 도움 없이 찾아서 스스로 선택했다. 선택의 책임도 항상 그가 지니 좋은 조언이 천사처럼 날개를 단다.
남 십자성은 작은 별자리이지만 형태가 뚜렷하고, 검정 바탕에 노란색처럼 식별이 용이하다. 그래서 남반구 항해자들에게 북반구의 북극성 역할을 하는 별이 되었다. 조타수들도 각자의 어머니 얼굴만큼 밝은 별들을 꿈에 그린다. 북극성처럼 고정된 극성은 없지만 이 열십자 모양의 순 은빛 품은 노란 별자리를 이용해 자기 배가 어디쯤 항해하고 있는지, 자기가 망망대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으니까.
지금 북반구에서 보이는 북극성에는 1,726년 전, 서기 300년에 이주해온 ‘보류지’라는 이름의 폴라리스가 자리한다. 앞으로도 3000년 후까지 머물다 그 자리를 다른 별에게 넘기고 떠날 것이다. 움직임이 나무늘보 보다 수조 배 아니 수경 배나 느린 이 나침판 별은 3300년을 죽지 않고 사는 자만이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그렇게 오래 사는 사람이 없으니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긴 시간이자 정지된 공간이다. 시간이 멈추면 공간도 멈춘다. 둘은 하나다.
넓은 풍광을 담기 위해 빛을 모아 발산하는 초광각 렌즈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고정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오니 천문학자가 아닌 한 누구나 당연히 북극성은 고정된 별이라고 믿는다. 모두가 믿으면 그렇게 된다. 인간의 뇌는 유연하고 약하다. 믿은 대로 될지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공부하고 나면 창조주의 눈이 자기 눈에 트여 북극성의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느려 빛과 어둠 사이를 빠르게 넘지 못하기 때문에 좌우로 창조주가 하나씩의 호위별을 달아 준 것이다. 바라보는 자들을 위해서다. 어둠 속에서도 바라보고 간구하면 빛이 다가온다. 긴 터널의 끝에 빛이 있다.
그 결과 창조주의 눈과 같지는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탐구하면 늘 빛나는 북극성 작은곰자리를 바라볼 수 있다. 북두칠성 큰곰자리와 카시오페이아자리 양쪽에서 북극성을 향해 교대로 비추는 빛으로 인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둠의 문이라도 쉬지 않고 두드리면 빛이 열린다.
때마침 지금, 묘지 이장을 독촉하는 전령 새의 날갯짓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지구에서 십 리 밖 닭 울음소리를 들었던 내 귀는 우주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무한의 숫자로 밝아져 몇 광년 거리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성미 급한 둘째 딸의 강요 편지를 가져오고 있나 보다.
안개처럼 희뿌연 하늘과 어슴푸레한 지구의 회색 경계에 전령 새가 도착했다. 회색빛 줄기를 쏘아대는 하늘과 지구의 경계에 부리 긴 새가 공기와 바람으로 만든 진공 튜브 하이퍼루프를 타고 빠르게 올라왔다. 하늘땅 전령 새가 천사 앞에서 화려하지 않은 별빛 날개를 접는다. 마치 비밀스러운 바닷길 긴 범 머리 길을 감싼 서해 가로림만에 돛을 내리듯 한 발은 접어 올리고 다른 한 발로 서서 마중 나온 천사에게 묻는다.
“천사님, 저 반짝이는 별들 사이 캄캄한 우주 끝에는 빛의 알갱이들이 있나요?”
전령 새로부터 받은 땅의 소식을 천국 동산에 전하는 미가엘 천사가 어둠 한가운데에서 빛의 싹처럼 솟아 나와 청소년 동화책을 읽어주듯이 빠르게 말한다.
“시간은 절대 변하지 않은 그릇이어요, 시간이 변하지 않는데 공간도 변할 일 없겠지요?”
부리 긴 도요새 닮은 전령 새가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작은 눈만 끔뻑거리자 미가엘이 말한다.
“별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그것들을 담을 그릇 또한 쉼 없이 확산되기 때문에 우주의 끝이라는 건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소식을 가지고 왔나요?”
전령 새가 미가엘의 날개에서 내려온 나를 보며 뒤 부리에 달고 온 접이식 목각판 한 장을 펼치더니 어린이 동화책 읽듯이 느리게 읽는다.
‘오늘 아침 지상 세종특별자치시 닻별 동산에 초록 융단이 내려와 당신 부인의 자리를 덮고 있었습니다~~.’
진공관 칠흑같이 긴 어둠을 뚫고 올라온 큰 뒷부리도요새를 닮은 하늘땅 전령 새가 산벚나무 목각판 한 장에 그림을 그리듯 한글 캘리그래피로 쓴 지구의 소식을 내 앞에서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묻고 답한다.
“그래요, 나는 방금 이 깊은 루프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아직 캄캄합니다. 이제 다시 이 진공관을 통해 돌아가게 됩니다. 앞으로는 저를 보고 싶어도 더 못 보겠네요. 북극성에서 남 십자성으로 이동할 거니까. 미가엘 천사님이 다른 전령 새를 보내주실 겁니다. 앞으로는 그 새로운 새가 더 이려거니 해야 희망의 빛이 사라지지 않아요. 끝내는 더 못 본다는 어두운 마음은 희망 빛 씨앗 한 톨로 걷히니까요”
하늘땅 경계에는 여전히, 북극성에서 은회색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나는 곧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내는 남반구의 천국으로 떠날 것이고, 그곳을 향해 이미 내 아들은 어미의 영이 닻을 내릴 자리인지도 모르고 그 별자리를 관찰 중이다.
그곳에는 남십자성 하늘 경계까지 다다를 만큼 강하고 습한 꽃향기 같은 빛바램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하이퍼루프 길이 들어서지 않아 철새처럼 날아오는 길에 빛의 파장들을 빼앗겨 경계에 다다라서는 구름에 가려진 달빛처럼 어슴푸레한 빛 바람으로 약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빛만 있다면 상관없다. 우주도 빛을 먹고 자란다.
전령 새가 귀띔했다. 남 십자성으로 들어가는 관건은 빛을 잃지 않는 거라고. 이 사실을 내 아내에게 알려줄 거라고. 내 아내도 나를 따라 의도하지 않은 우주의 이타주의자가 될 것이다. 81년 전 그렇게 ‘누구에게든 밀가루로 주지 말라’, 밀가루 포대를 공짜로 받은 사람은 다 안다. 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그렇게 말하곤 했던 내 아내가 당시 어둠에 빠진 나의 빛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나는 설산 선산에서 닻별 동산으로 몸을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전령 새가 둘째 딸에게 전한다. 엄마와 아빠는 이미 만난 거나 다름없다고. 북극성을 비추는 나와 남십자성을 비추는 내 아내는 둘 다 어둠의 침입을 물리치는 빛의 사자가 될 것이다.
여전히 닻별 동산과 설산 선산에 몸은 떨어져 있어도 우리의 영은 빛이 하나 된 곳에서, 육안으로는 마주 볼 수 없어도 마젤란 망원경으로 동시에 관찰 가능한 거리에서 우리가 만든 빛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영원한 존재로 살아 있을 것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우주에서 끝이 없는 끝까지 빛을 만들어 닻을 내리게 할 것이다.
긴 귀향길 암흑의 진공관 속에서도 바라보고 간구하니 어둠의 끝이 보였다. 하이퍼루프를 통과하니 빛이었다. 빛이 닿는 꽃들은 어둠이 사라지고 밝게 빛났다. 닻별 동산의 미선나무도 흰 꽃망울을 피웠다. 돌아오는 길은 멀지 않다.
어둠은 절대로 빛을 이기지 못한다. 영원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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