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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랑에 빠진 98세 노인(하) 2024.02.05 (월)
박병호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기고] 내 인생의 강물 2023.02.06 (월)
박병호 / 사)한인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인생의 강물은 내 맘대로 흐르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다. 완만하게 굽이돌며 한 없이 흐른다. 거침없이 흐르는 푸른 강물이다. 내가 나에게 끼어들 새가 없다. 일반적으로 강물에 실린 그리움과 기다림의 원천은 어머니다. 그런데 나의 그것들은 내 나이...
[기고] 유칼립투스 나무 아래서 2022.08.03 (수)
박병호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노인이 걷는다. 누가 뭐래도, 초원에서는 볏짚으로 만든 신발만을 고집하는 노인이다. 그가 발걸음을 크게 떼면서 위엄 있게 들판을 천천히 걷는다. 오직 한 소년만이 노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소년의 뒤는 작은 반달가슴곰을 닮은 태즈메니아 데빌이 따라 걷는다....
[기고] 처음이자 마지막 수업 2022.02.22 (화)
박병호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열대우림 속 창문을 열자 햇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 순간 교실 미닫이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사슴 돼지 한 마리를 끌고 들어섰다. 그 녀석은 주름이 많은 회색빛 몸통에 축 처진 갈색 꼬리를 달고 있었다. 사슴을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고, 다리가 긴...
[기고] 도전의 향기 2021.09.13 (월)
박병호 (사)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네스라는 섬에 카를로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어요. 와인 상인의 아들이었지요. 그의 가문은 옛날부터 더 나은 땅들을 찾아 바다 건너 포도밭을 일구어 왔어요. 그의 할아버지는 잉글랜드에서 시칠리아 섬으로, 아버지는...
[기고] 아웃오브 오션 2021.05.25 (화)
조선일보 동화 박병호 그날은 상상했던 것보다는 차갑지 않았다. 남극의 얼음장 같은 찬물이 짙푸른 태즈먼해 수면 바로 아래까지 흘러온다. 원래는 그곳에 손을 담그려면 후다닥 넣고 빼야 한다. 까딱 늦게 빼면 동상이 들기 때문이다. 해안 육지는 영하로...
[기고] 박각시나방 2020.11.23 (월)
윌리엄은 다시 뛰었다. 발바닥이 아파 멈칫했지만, 젖 먹던 힘을 다했다. 동굴을 쳐다보니 박쥐는 이미 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굴 천정에 꽉 달라붙기 전에 잡아야 했다. 방학이 끝나가는 오늘은 잡아야 내일 학교에 가져갈 수 있었다. 그는 동굴 앞에 와서야...
[기고] 할머니의 선물 2020.08.24 (월)
박병호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할머니의 볼록한 발등에 손을 댔다. 아직 부기가 가시지 않았다. 보통은 1, 2주면 가신다는데…“이제 통증은 가셨어요? 곧 고모가 오실 거예요.” 귀먹은 할머니의 귀에 속삭였다. 아직 주름 하나 없이탱탱한 할머니의 얼굴이 고운 주름 꽃을 펼치며 미소 짓는 것...
[기고] 탁란(托卵)* 2020.05.26 (화)
박병호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아침에 일어나보니 책 보따리가 또 사라졌다. 이건 분명히 할머니 짓이다. 이른 새벽이지만 어제저녁 쌓아 둔 책 보따리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집 안에는 어차피 더는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까. 벽장에서, 헛간에서, 사랑방에서 며칠째 찾아냈으니...
박병호 /한국문인협회 밴쿠버 지부 회원
늘 푸른 미니스쿨의 첫 수업 (下)       (*2019-10-07에서 계속)                                                              “시간의 가치는...
박병호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헬로 에브리원! 마이 네임 이즈 H. 청년기의 황금 같은 5년, 캐나다 각 분야 지도자를 소리 없이 양성하기 위한 이곳에서 함께 뒹굴 제군들의 첫 수업을 맞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17대1, 세 단계의 어려운 관문을 뛰어넘은 호기심 가득한...
[기고] 오랜 평화, 짧은 전쟁 2019.07.15 (월)
박병호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나팔꽃이 순식간에 흰 꽃망울을 터뜨린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전날 밤 제법 큰 줄기의 빗물에도 먼지 땟국이 깨끗이 지워지지 않은 창가에 누워 잠꾸러기 필립이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나팔꽃의 어서 일어나라는 속삭임이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실려...
[기고] 골반이 틀어진 여인(하) 2019.03.06 (수)
박병호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배가 두 번 연거푸 급충돌하는 순간 여인의 상·하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뒤틀리며 사춘기 무렵 틀어진 골반이 바로잡혔다. 여인은 욕지도 주민 숙원이었던 공중목욕탕 사업을 해결한 통영 시장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자기 의지 없이 죽음의 바다에...
[기고] 골반이 틀어진 여인(상) 2018.10.22 (월)
박병호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그해 3월 첫 장날은 찬 공기가 남아 있어도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화창했다. 따뜻한 희망을 품은 남풍이 부는 바다는 은빛 물결로 잔잔했다. 짙푸른 물이 물결치며 만든 새파랗고 신비로운 색상들이 고흐의 ‘몽마주르의 고귀한 석양 하늘’을 떠올렸다. 꿈을...
[기고] 소설 초록 그린란드(3) 2018.06.11 (월)
박병호/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전 호에서 계속)이윽고 두 남자는 서로 다른 색깔의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아침, 어서 먹고 출발합시다. 안 먹으면 갈 수 없어요. 든든히 드세요. 배 고프지 않아도 먹어야 해요.” 이사벨이 상기된 입가에 웃음을 띤채 말했다. 그들은 어느 한가한 편의점에서...
[기고] 그린란드<2> 2018.02.05 (월)
박병호 / 한국문입협회 밴쿠버지부
그날 밤 집에 돌아온 청마는 우연의 일치 치고는 기막힌 일치라고 생각했다. 이사벨이 3개 국어를 말하는데 모두가 그가 꿈에 그리던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덴마크어, 영어, 그리고 그린란드어.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자체는 환영했으나...
[기고] <단편소설> 그린란드 2017.09.25 (월)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소설
그녀는 밴쿠버의 한 사립 지역사회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이 학교의 다른 대부분의 교사들은 15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하나의 반을 맡아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전 과목을 모두 가르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녀는 한 번도 하나의 반을 맡아본...
[기고] 화가가 걷는다 2017.05.27 (토)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단편 소설
화가가 걷는다. 녹슨 철길 뜯고 아스팔트 부어 만든 자전거 길을 성큼성큼 걷는다. 그리고 훠얼훨 걸으며 난다. 길 옆 가시 달린 연갈색 덤불들이 치맛바람에 밀리듯이. 파란하늘에 새하얀 목화송이구름이 솟아오르듯이. 야생베리나무 다가오면 배리따러 나선듯이....
[기고] 초록 고래가 온다 2016.12.17 (토)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기고/동화
몇 달째 계속된 하얀 밤이 물러날 기세가 없는 밤이었다. 베링 해의 문앞 에 짙은 검정 물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틱틱, 티티틱, 티익틱’멀리 새파란 밤하늘과 새까만 수평선 사이에서 오는 희미한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속살이 비치는 실루엣 커튼을 두른...
[기고] 철새 벌새와 원주민 할머니 2016.07.08 (금)
동화
4,200km먼 길을 날아온 이후 루퍼스는 지금껏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 달걀보다 작은 집이지만 거미줄로 촘촘히 엮어 지어, 나무를 으깨서 지은 장수말벌의 펄프 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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