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바다로 고기를 낚으러 간다지만, 나는 바다에 나를 버리러 간다. 세상의 잡다한 말과 생각들을 파도에 던져버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비움의 공간에서 자신을 마주 보는 것이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화가 나면 무조건 걸어서 충분히 왔다 생각되면 막대 하나를 꽂아 두고 돌아온다고 한다. 미움, 원망, 서러움, 얽히고설킨 감정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온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날 밤에 가슴 설렘으로 잠 못 이룬 것처럼, 일찌감치 일어나 어둠이 채가시지 않는 표구에서 배의 시동을 걸었다. 배의 엔진 소리가 적막을 깨우며, 오늘의 막연한 기대감으로 가슴 떨린다. 매주 로또를 사면서 한 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젯밤 준비한 낚싯대와 릴, 채비, 미끼 등을 정성껏 준비했다. 바다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 또한 대답할 것이 없었다. 달리는 배 위에서 일상의 묵은때를 씻어내며, 오늘 낚싯대 끝에 전해질 강력한 떨림을 기대하며 푸른 바다를 향해 달린다. 배의 속력을 높이자 싸늘한 새벽공기와 하얗게 부서진 포말이 뺌을 스칠 때마다 정신을 맑게 해준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바다 중간지점 등대 아래 수심이 깊은 지역으로 묵직한 놈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영토이다. 피쉬 파인드로 체크해 보니 아주 좋은 포인트에 도착했다. 낚싯대를 만져보며 나는 상상한다.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 어둠 속에서 유유히 놀고 있을 그 존재들...... 나는 비로소 세상의 모든 잡념으로부터 단절되어 오직 살아있는 생명과 생명으로 마주하게 될 것이다. 파도에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하나하나 채비를 챙기면서 바다가 내어줄 한 번의 기회 준비를 마쳤다. 나는 숨을 고르며 채비를 바다 밑으로 내렸다. 묵직한 추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릴의 스플이 경쾌하게 돌았다. 처음 한두 시간은 감각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낚싯대의 작은 움직임에도 움찔거렸고 대어가 내 미끼를 건드리지 않나
조바심으로 초릿대 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가 수평선 위로 완전히 떠오르고 입질이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낚싯대를 쥔 손의 감각이 희미해졌다. 이제까지 나를 괴롭혔던 고민과 고통의 순간들이 심지어 나라는 존재의 무게 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순간이 찾아왔다. 아련한 시선은 끝없이 넘실대는 푸른 물결과 윤슬 위에 머물렀고,
그저 바다와 내가 자연스럽게 한 몸이 되었다. 생각이 멈춰진 시간 속에서 평온만이 내 몸을 감쌌다. 지난날을 후회와 미련 없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는 평안한 지금이었다. 낚싯줄을 타고 전해지는 것은 물고기의 저항이 아니라, 바다가 만들어내는 미세한 진동뿐이었다. 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파도 위에 떠 있었다. 이미 내 마음은 바다와 일치하여 고요함으로 충만해지고 있었으니까. 떠다니는 한 조각 스티로폼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간마저 멈춰진 평온 속에서 얼마가 지났을 때, 무념의 바다 위를 떠돌던 내 의식을 날카롭게 찌르며 들어온 것은 낚싯대의 초릿대가 흔들리며 쭈욱 치고 나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끼를 빨아먹은 듯 작은 흔들림이 끝내 강열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왔구나” 소리 내어 말하기도 전에 낚싯대는 순식간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수면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조금 전까지 나를 감싸던 고요함과 평온함이 박살이 났다. 릴의 드래그가 비명을 지르며 풀려나갔고 낚시줄은 팽팽하게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떨렸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돌아온 모든 감각은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선명했다 낚싯대를 쥔 손맛보다 진한 몸 맛으로 물속 깊은 곳에서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대어의 묵직한 무게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놈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낚싯대는 부러 질듯 휘어졌다. 하지만 나는 조급하지 않았다. 조금 전, 무념의 상태에서 얻은 평온함이 내면의 단단한 중심이 되었다. 나는 줄을 풀어주고 감기를 반복하며 수면 위로 그놈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무념은 사라지고 잡아야 한다는 욕심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단, 물 위로 올라온 그놈은 공기를 마시고 난 후 힘이 쭈욱 빠졌다. 이윽고 배 위로 올라온 놈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나를 응시하는 그 눈동자는 조금 전, 머물렀던 깊고 고요한 바다의 풍경이 담겨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승리감에 도취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생명체에 대한 묘한 유대감과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나는 얼른 떨리는 마음으로 그놈의 입속에서 바늘을 빼냈다. 내가 오늘 바다에서 낚아 올린 것은 물고기가 아니고 무념의 시간을 견디어 낸 끝에 바다가 내게 준 선물이었고, 치열한 사투를 통해 얻은 삶의 증거였다. 이제,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멀어져 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놈이 남긴 묵직한 전율과 등대가 있는 푸른 바다의 침묵이 생생히 새겨져 있었다. 또 다른 감정의 사투를 그리워하면서 허탈한 마음으로 포구로 돌아온 날들도 교차했다.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던 초릿대의 팽팽한 휘어짐과 긴장감은 허무한 정적으로 바뀌고, 허공을 가는 팽팽한 대결 끝에 힘없이 부러진 낚시대와 빈 바늘...... 바다가 잠시 내어 주었던 생의 활기를 다시 거두어 갔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손에 쥐어진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열망하며 깊은 바다속과 맞섰던 모든 과정이었는지 모른다. 오늘 바다는 나에게 비움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순간을 채움으로 건내 주었다. 내일 다시 던질 낚싯대는 오늘보다 더 멋진 설렘과 기대에 매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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