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가 ( 브리태니커 대 백과사전) 로 칭송을 받는 톨스토이는 1828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의 대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참회록 그리고 많은 주옥 같은 중 단편을 수 십 편을 남겼다. 그는 34세에 18세 였던 소피아라는 16세 연하의 여인과 결혼하였으나 그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와 시베리아와의 인연은 그가 "전쟁과 평화" 를 집필하려고 하던 때에 수집된 자료 중 데카브리스트에 관한 자료에서 기인되었다. 데카브리스트란 1805년 나폴레옹전투에서 승리하고 프랑스 파리까지 점령했던 러시아 군대의 젊은 장교들이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맛본 선진국의 제도와 자유주의 사상을 후진국 러시아에 전파하려던 일단의 개혁파 군인들을 말한다. 이들 급진 개혁파들은 니콜라이 1세의 집권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꾀했으나 정부군의 무력에 굴복, 모두 사살되거나 체포되었다. 이들 중 체포된 자들은 모두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다. 마치 조선 말기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등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급진 개혁파들이 일으킨 갑신정변과 판박이다. 당시 시베리아는 기껏 바이칼 호수 주변 이르쿠츠크까지만 개발이 된 상태로 지금의 시베리아 동부 끝 블라디보스톡과는 한참 멀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가 전 국력을 동원해 1900년 초에 개통한 시베리아 횡단철도 완성 후에 개발된 신 도시이다.
만약 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 전 노선 완공 1916년 ) 가 러-일 전쟁 (1904- 1905년) 이전에 완공되었더라면 일본이 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조선 또한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안았을지 모르겠다. 2차 대전 (1939 - 1945년 )에는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 만주에 주둔시킨 대규모 병력을 이 철도를 이용해 신속히 서부로 이동시켜 히틀러의 독일에 엄청난 타격을 가했고 결과적으로 2차대전을 연합국 측의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 이 철도는 스탈린의 극동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극동지역에 살던 우리 동포를 카자흐스탄 공화국과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으로 강제이주 시키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참고로 시베리아횡단철도는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모스크바까지 총길이 9289 킬로이며 그 사이 8시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우리의 경부선이 442킬로에 서울과 부산이 동일한 시간대임을 감안할 때 얼마나 긴 거리인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러나 아직도 러시아의 끝과 끝이 아니다. 러시아의 서쪽 끝 철도역은 모스크바에서 688킬로를 더 가서 상트페테브르크에서 끝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우리의 상식적인 개념과는 좀 다른 게 몇 가지 있다고 한다. 즉 단적으로 시베리아를 표현하는 말로 시베리아에서는 4000키로가 넘어야 좀 멀다 라고 하는가 하면 영하 40도 정도가 되어야 좀 춥다 라고 하며 술은 40도 정도가 되어야 마실만 하다고 한다. 이런 시베리아야 말로 당시 러시아 정부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가둬두는데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하여튼 당시 많은 시베리아의 유형자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 하지만 부인이 이들 남편을 따라와 온갖 고생을 하며 남편을 보살폈으며 나중에 사면/복권이 되어 모스크바 정계로 복귀한 기록이 있어 톨스토이는 이 귀중한 자료를 바탕으로 소설 " 부활 " 을 저술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소설 부활에서는 역할이 바꾸어 지고 지순한 데카브리스트의 부인들 대신에 네플류도프라는 백작이 카츄샤라는 창녀의 시베리아 유형을 따라 나선다는 줄거리다. 물론 네플류도프가 순결한 카츄샤를 한 때 사랑하다 버렸다는, 그로 인해 임신한 카츄사는 오갈데 없이 헤매다 결국 창녀가 되었고 어느 부유한 상인을 살해하고 그의 돈을 훔쳤다는 죄명으로 법정에 선다.
배심원의 일원으로 그 법정에 선 네플류도프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 받자 네플류도프는 모든것을 다 버리고 카츄샤를 따라 시베리아로 향한다. 처음에는 그를 절대로 용서할 것 같지 않던 카츄사는 그의 정성어린 헌신적인 노력에 마침내 마음문을 열고 결국 그를 용서하기에 이른다. 이제 네플류도프는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
춘원 이광수는 1892년생으로 톨스토이 보다 64년 뒤에 태어났다. 그가 일본 메이지 학원 유학시절 그는 톨스토이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그는 톨스토이의 책을 모두 읽었으며 특히 부활을 읽고 부활의 무대가 된 이르크츠크와 바이칼 호수를 여행한다. 최초의 시베리아 여행은 1914년 그가 22세 때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미국으로 가는 길에 들른 이르쿠츠크와 바이칼호였다. 그러나 그의 미국행은 1914년 에 구라파에서 터진 제 1차세계대전으로 인해 이르쿠츠크에서 끝나고 그는 곧바로 귀국한다. 그 후 소설 " 유정 " 을 쓰기 위해서 1933년 재차 이르크츠크와 바이칼호수를 여행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유정은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듯하다. 이광수가 톨스토이의 광팬이었던 점에다 소설의 무대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주변에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냠자 주인공들이 어떻게 보면 불운의 여자주인공에게 지극한 플라토닉 사랑을 바치는 것도 같다.
톨스토이의 결혼생활과 마찬가지로 이광수의 결혼생활도 그다지 원만하지 않은 듯 하다. 둘은 죽음까지도 비슷했다. 톨스토이는 가출한 상태로 러시아의 조그만 시골 여관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춘원 이광수는 6/25 전쟁 중 이북으로 납치되어 북한의 이름없는 어느곳에서 지병으로 사경을 헤매다 홍명희가 김일성에게 특청을 해서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 후 곧 사망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홍명희는 1948년 온 가족을 이끌고 월북한 소설 임꺽정전의 저자로 춘원과는 일본 메이지학원에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며 춘원에게 톨스토이를 처음으로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벽초 홍명희, 육당 최남선 그리고 춘원 이광수 이 3인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3대 천재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참고로 홍명희는 월북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총리로 그의 아들 홍기문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손자 홍석중은 소설가로 그의 일가는 대부분의 월북자들과는 달리 북한정권으로부터 비교적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 그의 손자 홍석중은 북한 판 " 소설 황진이 " 를 썼고 그 책이 KBS TV " 책을 말하다. " 에서 " 테마 북 " 에 선정되었다. 그 덕에 2004년에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북의 현역 작가가 남한에서 주는 문학상을 타는 진기록이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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