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회원
30년 전 빅토리아에서 편의점을 운영할 때였다. 한 번은 내 가게에서 일하는 모하메드 (아프가니스탄인)가 어떤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고 혼내 주었다고 한다. 그 아이 인상착의를 들으니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담배나 우유를 사러 오는 테미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잔돈 남은 것으로 사탕을 사 먹는 순해 보이는 4-5학년쯤 되는 남자아이였다. 며칠 뒤 저녁때쯤 그 아이와 친구가 사탕을 사러 들어왔다. 검은 큰 잠바를 입고 사탕과 초콜릿이 진열된 곳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잠바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아이를 주시하는 것을 본 친구는 눈치채고 나가 자고 하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못 들은 것 같았다. 그 아이가 계산대 앞에 오자 내가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손을 흔드니 초콜릿 바가 털럭거렸다. 나는 그것을 꺼내면서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네가 이러하니 가끔 담배 심부름(엄마가 메모를 써 보냄)도 의심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이 하는 말이 “저 담배 안 피워요!” 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오후였다. 인상이 한국인과 비슷한 원주민 소녀와 백인 여자친구 둘이 들어왔다. 원주민 소녀가 몰래 초콜릿을 소매 속에 넣는 것을 목격하였다. 결국 붙잡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 연일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이런 비즈니스 하는 것이 싫어졌다. 결국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이 비즈니스를 팔고 말았다. 이런 비즈니스를 먼저 시작한 선배에게 물으니, 그럴 때는 주소를 적어두고 부모한테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는 통제할 만큼 가게에 들여보내고, 나머지는 문 앞에 대기시키면 주인 말대로 기다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슈퍼마켓 하는 분의 얘기는,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주인이 원하면 자기들이 처벌하고 그렇지 않으면 훈방조치한다고 한다. 그분은 다 같은 부모 마음에서 그럴 수 없어 그대로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잘 타일렀다고 한다.
밴쿠버로 이사 나와서 이상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집에 차를 두고 수영장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수영가방을 잠시 벤치 위에 놓았는데 순간 사라졌다. 이리저리 보니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미남의 백인남자 발 옆에 놓여 있었다. 의아해서 그 남자를 쳐다보며 “내 가방이 왜 여기 있지?” 했더니 “별것 없네” 하면서 당당히 나와 같이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내가 오히려 먹먹하고 망연자실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은 내 가방 안에 뭐 좀 가치 있는 것을 안 넣고 다닌다는 책망 같은 분위기였다.
어디서나 인간 사는 곳엔 비슷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것인가. 그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이의 도벽은 일시적인 것일 확률이 크다고 한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의 도벽은 흔히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도록 잘 타이르며 다독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났는데도 도벽이 계속된다면 부모나 교사는 관심을 갖고 지혜롭게 사랑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 시기를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방치한다면 그 아이는 욕구를 절제하는 능력을 배우지 못한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될 것이다. 바로 버스 정류장에서 주인이 있는데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또 이런 황당한 일을 겪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조심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때의 일은 아직도 기억에서 떠나질 않는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얼마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양상군자 : 대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점잖게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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