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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종단 여정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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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11-08 17:11

- 미우라 아야코 기념문학관에서··· -
霓舟 민완기(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장)
  1.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부가 함께 일본과 관련 물류 쪽 일을 오랫동안 해 오면서 자주 일본나들이를 하는 일본通 후배에게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형님, JR패스로 삿포로에서 가고시마까지 일본 종단하는 신칸센 기차 여행 같이 한번 해 보시겠어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하지 않던가? 자유여행 준비과정의 어려움을 익히 아는 터에, 더구나 단체 패키지 투어의 10% 부족함을 충분히 경험한 바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자네가 제수씨에게 100% 허락만 받아준다면 우리 부부는 그저 감사하지.”
“물론입니다. 단 조건은 제가 전에 함께 여행했던 저희 교회 지인 부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사전에 너무 많은 여행 관련 유투브 영상을 보시거나 또는 맛집 자료를 검색하셨다가 가이드한테 슬쩍슬쩍 훈수 두시는 것만 안하신다고 약속하시면 OK입니다.”
다짐 뿐 아니라 문서로 약속이행문을 요구한데도 안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2.
우리 부부는 동경 하네다로 들어가 3일간을 개인 투어를 먼저하고, 후배 부부는 샌프란에서 인천을 거쳐 삿포로로 건너와 신치토세 공항에서 조우하였다. 여행전부터 카톡으로 틈틈이 일정과 준비사항, 사전 입국심사 앱 등을 보내주는 후배의 꼼꼼하고도 사려깊은 모습에 놀라 후배를 농담삼아 ‘AI가이드’라 호칭을 하곤 했는데, 과연 그 호칭에 걸맞게 선배의 취향까지 고려하여 삿포로의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아사히카와 소재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문학관을 여행의 시작점으로 잡아주었다. 사실 동경에서 이틀째인가 오전 7시 호텔 조식을 하며 TV를 무심코 쳐다보는데 한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일본어 자막과 함께 펼쳐지는 것을 보고 세상에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하던 참이었다.
 삿포로역에서 기차를 타고 홋카이도 내륙에 위치한 아사히카와에 도착하였다. 역을 벗어나자 큰 다리를 만났는데 다리의 이름부터가 ‘빙점교’였다. 다리를 지나 ‘빙점로’를 따라 10분을 걸으면 그녀의 기념문학관이 보인다. 키가 큰 잘생긴 스토로브스(strobus) 잣나무가 먼저 보이면서 마치 온 도시가 한 작가의 공로를 기리는 듯 느껴졌다. 
 바람이 전혀 없다.동쪽 하늘에 높이 뜬 뭉게구름이 햇살을 받아 빛나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스트로부스 소나무 숲의 그림자가 땅바닥에 짧고 짙게 깔려있다. 그 그림자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듯 거무죽죽한 모습으로 숨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 ‘빙점’은 이렇게 시작된다.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야코는 37세에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하여, 42세때 아사히 신문사 주최 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이 작품으로 일약 일본 최고의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77세로 소천하기 까지 평생 30여권의 작품집 및 기독교 강해집을 출간하였는데, 이는 그녀가 등단 후, 병약한 몸으로 해마다 평균 1권 이상을 써온 셈이다. 이 부분은 40세에 여성동아 공모전을 통해 ‘나목’으로 늦깎이 데뷔한, 그리고 40여권의 작품집을 상재한 박완서를 연상시켰다.
지독한 병마로 신음했던 어린 시절과, 그녀를 전도했던 첫사랑 의대생의 죽음,13년간의 투병생활…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말해 고난과 불행속에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절대자 앞에 나아감으로써 가장 무력하고 보잘것 없는 인간이 어떻게 신의 그릇으로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가를 보여준 산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념관 내부를 둘러보며 가장 감동적인 것은 긴 세월 투병 중이었던 그녀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며 병상을 지켜준 독실한 기독교인인 남편을 30대 중반에 만나게 된 것과, 그녀의 육필원고들과 함께 그녀가 노년에 병약하여 더 이상 펜을 들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녀의 구술을 적어 소설을 써 내려간 헌신적인 남편(미우라 미쓰요)의 육필원고가 함께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점이었다. 
관람을 마치고는 방명록에 짧은 인사말을 손편지형식으로 남겼다. ‘2024.10.13.(일) 오전 11시37분. 주일 11시 정각 기념관을 찾게 되어 선생님의 유품을 뵙기 전에 함께 방문한 후배 부부와 간단한 예배를 먼저 드립니다. 짧은 인생의 시간을 길게 쓰시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신 분께 고개 숙여 묵상으로 안부를 여쭙니다. 특별히 생전 장기를 즐겨 두고, 카라오케를 좋아하고, 손잡고 함께 산책하는 생전의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보며 작품 이전에 벌써 많은 따뜻함을 얻고 갑니다. 천국에서 영면하소서’    
사람들 마음속에 저마다 내재한 기가 막힌 말못할 절절한 사연, 가슴 찢어지는 숨은 아픔들이 있을진대, 우리가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그 아픈 단어를 들으면 순식간에 웃음마저도 얼어붙는 지점이 있고 미우라는 그 지점을 ‘氷點’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며 기념관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는 키 큰 외래수종 나무 한 켠에 모든 무거운 굴레를 달아두고 나오고 싶었다. 

附記 도쿄 하네다 공항과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마치고는 짐을 찾는데 놀랍게도 컨베이어벨트 위에 수화물들이 하나같이 가지런하게 트렁크 손잡이가 나를 보고 누워서 나오는 모습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일본의 섬세하고도 친절한 단면을 마주한 것 같아서 감동이었습니디만, 호텔 체크인 시간 전에 도착하게 되어 투어를 위해 짐들을 맡길 때면 가방 하나하나에 짐 표를 붙이고 마지막에 꼭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 제 보관증에 꼭 인감을 찍어 주는 모습을 마주하면서는 일본의 장기 침체의 원인이 이런 점은 아닌가 싶기도 하였습니다. 밴쿠버에 무탈히 돌아와 짐을 찾는데 온통 가방들의 바퀴란 바퀴는 다 나를 향하고, 2층, 3층으로 포개쌓여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이런 게 사람 사는 게 맞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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