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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살다가 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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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4-08-12 09:21

자명 (사)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1세기 전 인간 수명은 50~60세가 평균이었다. 10년 수명이 늘어나는데, 100년의 기간이 필요했지만 21세기 들어 불과 반세기만에 80~90세 수명연장으로 이어졌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빛이었다. 과학의 발전으로 빛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세분화되었기 때문이다. 빛을 활용하는 기술로 밤에도 낮처럼 일할 수 있고, 사회기반시설을 가동하며 24시간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신체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스마트폰과 우리들의 일상 속 필수품인 TV도 디스플레이 화면의 빛 때문이다. 무엇보다 생명연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의료기술의 혁명이다. 각 종 병의 원인을 찾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혁신은 X-레이나 MRI기술도 빛의 파장을 이용한 것이다.
 빛의 신속성과 미세한 크기로 그 정체를 정의하는 것은 현대 과학으로도 쉽지 않은 숙제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빛은 광자(혹은 광양자, photon)라는 알갱이(입자)같이 생겼으면서 동시에 소리와 같은 파동처럼 생겼다는 추정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빛은 물질과 물질 아닌 것의 경계에 있다. 물질처럼 보이지만 물질이 아니고 또 물질이 아닌 현상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어떤 것이다. 빛은 물질도 순수한 현상도 아닌 신비한 우주의 현상을 일부 종교에서는 창조물의 근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휴머니즘적 빛도 문명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여 인류를 진화하여 왔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성장시켜왔다. 희생과 헌신으로 빛이 되고자 했던 선각자들의 빛도 과학이 이뤄낸 그 어떤 공헌보다 결코 작지 않다. 같은 인간이면서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던 노예시대의 역사를 바꾼 흑인 민권운동가 루터 킹이 밝힌 그 빛도 300년의 아픈 역사를 바꿔 쓰게 했다. 세대, 성별, 인종, 지역,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든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미국은 몰론 전 인류의 민권운동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글 창제 후 400년 넘게 묻혀 있던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발견하고 이를 전 한국인들이 자국어로 사용하고 토착화 할 수 있도록 부흥의 역사를 시작한 것도 우리가 아닌 백인인 제임스 게일이었다. 토론토대학 재학 중 YMCA에서 선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1888년 선교사 자격으로 처음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서울 정동을 중심으로 선교사들이 모여 살던 그곳을 마다하고 소래포구로 내려가 한국인의 생활습관과 심정을 닮고 싶어 했다.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 유대인처럼 살았던 바울을 그대로 자신의 본보기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선교부에서는 왕실에 초점을 맞추고 양반층을 대상으로 위로부터 선교를 하는 방식이었지만 게일은 밑으로부터 조선화를 실행하였다. 조선 사람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입고 말하기를 배우면서 조선인들의 이중적 언어에 주목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찾아가는 선교를 지향한 반면 게일은 천민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 방 하나를 얻어 그들의 사랑방역할을 하며 스스로 조선인들이 사랑방에 찾아오도록 기다리는 선교를 했다. 천민들과 자연스레 게일이 나누었던 이야기는 고상한 신학적인 대화가 아니라 누구나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 속에 자연스럽게 복음의 씨앗을 심고, 문맹과 차별의 암흑에서 한줄기 빛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의 순수 언어가 있으면서도 한글은 서민들이나 쓰는 언어로 폄하되어 양반들로부터 외면당해온 한글의 우수성과 완벽한 언어적 과학성을 발견한 그는 한글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게일은 한국인 누구보다 한국말을 정확히 이해했고, 분석하여 한국 최초로 외국문학을 한글로 번역한 ‘천로역정’을 발간하였다. 그가 편찬한 한영사전이 1897년에 한국 영한사전의 시초였고, 2차 1911년, 3차 1931년에 한영사전을 완결했다. 이 때 나온 사전은 우리나라 모든 한영사전의 모체가 되었고, 그 틀을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명한 언어학자들 또한 100년 전 한국말의 역사를 알려면 게일의 사전을 봐야한다는 게 학계의 불문율이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 가신다”를 예를 들어 한글의 띄어쓰기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언론 등에 실행코자 했던 이도 한국인이 아닌 푸른 눈의 외국인 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였다. 1886년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이자 언어학자인 그는 평생을 한국을 위해 살았으며 서방언론에 한글의 뛰어남과 과학성에 매료돼 미국 언론과 영문 잡지에 기고와 논문을 통해 한글과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앞장서 한글띄어쓰기 도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띄어쓰기가 본격적으로 한글에 도입되도록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전통과 관습이 토착화하던 지배계층의 사회에서 자국민 누구도 나서지 않았던 일에 빛이 되어 인간의 평등을 간구했던 그 선각자들이 남긴 빛도 영원히 빛을 발하고 있다.

 빛은 그 크기가 아주 작을 뿐 아니라 움직이는 속도도 너무 빨라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흔적을 남기는가 싶으면 이내 그림자는 사라지고 만다. 그 빛은 강렬하고 자양분이 가득하여 그 빛을 받은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로 살아가고 윤회의 반복을 통해 세상은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만지고 보는 물질을 계속 쪼개다 보면 원자에 도달하고, 더 쪼개면 소립자, 그보다 더 쪼개어 나가면 물질과 물질 아닌 것의 경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빛이 바로 그런 존재다.
 어느 빛은 밝힘을 준비하다 결국은 별이 되어 다시 빛으로 태어나는 기다림의 빛도 있다. 빛으로 살다 별이 된 그들은 지금도 밤하늘에 빛이 되어 영혼을 살찌우고 감성의 충만을 채워 주고 있다. 꽃 그 자체에서는 어떤 색도 나올 수 없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물질에는 색이 없고 모든 색의 근원은 빛에서 나온다. 빛이 없으면 아름다운 색깔도 없어 색은 빛에 의해 생기는 실체가 없는 현상에 불과하다. 어쩜 빛은 영혼의 파장에서 나오는 색일지 모른다. 하여 휴머니즘적 빛은 보이지 않는 헌신과 사랑 속에 깊이 숨겨져 있고, 빛으로 살다가 별이 된 그 흔적들이 늘 빛나는 색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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