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3-09-25 12:28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구월은 뜨거운 땡볕이 물러가고 하늘이 창을 열고 얼굴을 내 보이는 계절…….
  하늘은 맑은 표정을 보이고 비로소 마음을 연다. 어느새 선선 해진 바람도 들국화나 코스모스
꽃향기를 실어 오고, 열린 하늘을 향해 피리를 불면 가장 멀리까지 퍼져 나갈 듯싶다.
  구월은 그리움의 심연에 조약돌이 풍덩 날아들어 잔잔히 물이랑을 이루며 마음 언저리에
밀려오는 듯하다. 맑은 하늘을 보고, 햇볕을 편안하게 맞아들이며 가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계절이다.
  구월은 야단스럽지 않다. 맑음과 그리움을 안고 다가온다. 초록으로 덮인 산과 들판이 조금씩
가을 색감으로 채색돼 간다. 하늘이 열려서 무한 공간과 만날 수 있는 달이다. 가슴을 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 마음이 넓어진다. 영혼은 점점 깊어지고 사색에 잠겨 보기도 한다.
고독과 사색은 교감과 소통을 위한 다리가 아닐까. 구월이면 초목들도 성숙과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오곡백과가 제 모양 제 빛깔로 튼실하게 여물어가는 계절이다. 가을의 초입, 가을의 문이 열리고
이제 한해살이를 성찰하고 남은 기간에 결실을 어떻게 이뤄야 할지,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시간
앞에 선다.
  자신이 서 있는 삶의 좌표는 어디이며, 일 년의 주제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순간이다. 9월은 아쉬움과 미숙으로 남는 인생길에서 하늘을 우러러 영원을 바라보며 기도를
바치고 싶은 달이다.
  길가에 가을맞이 코스모스 꽃이 가냘픈 얼굴로 미소 짓고, 매미는 판소리 마지막 대목의 절창을
뽑아 댄다. 십 수 년간 땅속의 어둠 속에 굼벵이로 살다가 십 일도 못 된 삶을 마쳐야 하는 매미의
열창이 짜르르 가슴을 파고든다. 낮게 뜨는 붉은 고추잠자리는 맑은 하늘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구월이면 산, 들판이나 강가에 나가보고 싶다. 구절초 꽃, 쑥부쟁이 꽃 등 온갖 풀꽃들이 피어
햇살 속에 향기를 내는 모습을 본다. 구월이 되면 이제는 무엇이든 익어가고 성숙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무언지 그리워지고 눈물겹고 마음이 깊어지고 있다.
  구월은 하늘과 함께 마음도 열리는 계절이다. 마음 거울에 자신의 영혼을 비춰볼 수 있는 달이다.
들판 길을 걸어보라. 아직 추수 때가 되진 않았지만, 농작물들은 농부들의 땀과 정성에 고개
숙이며 마지막 결실기를 맞아 기도를 올리고 있다. 구만리 먼 하늘을 날아서 겨울 철새들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구월이면 저절로 그리움의 가슴과 귀가 열린다. 들리지 않던 풀벌레소리가 베개맡에 들려오고
달빛이 창문을 물들이고 있다. 불현듯 벗님의 안부를 묻고 싶고 육 필 편지를 보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구월쯤이면 일 년의 한해살이를 뒤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짚어보아야 할 때이다. 마음이 왠지
경건하고 겸허 해진다. 푸르던 들녘이 차차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나무들은 일 년의 삶을
압축하여 한 줄 씩 아름다운 목리문(木理紋)을 아로새기는데, 나는 어떤 의미의 연보(年譜)를
작성할 것인가.
  구월이면 깨닫곤 한다. 모든 식물들의 삶은 열정과 충일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떠오르는 해처럼
경건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지는 해처럼 장엄하게 하루를 장식한다. 해를 바라보고 하늘과
대화하면서 일생을 꽃피우고 결실을 맺는다.
  구월이면 무명의 풀이되어 온전히 맺은 풀 씨를 대지에 뿌리고 싶다. 구월은 날마다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계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원의 시 공간에서 그리움의 선율이 들려올 듯한 달이다.
묵혀 둔 만년필에 잉크를 넣어 편지를 써 보내고 싶은 달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침 이슬이여, 너는 어둠의 울타리에 걸어 놓은  내밀(內密)의 창(窓) 지순한 그리움의 초상이구나    춥고 습한 긴밤들을 눈물로 견디며 모든 고통의 순간들은 결국 숭고한 환희로 통하는 길이라는 지혜를 터득한 너의 맑은 이마여!                                           ...
안봉자
작은 아씨 2025.06.27 (금)
  어머니는 젖이 풍부하신 분이셨다. 우리 형제들을 키우면서도 일부러 젖을 떼려고 애쓰지 않고 아이가 먹겠다면 언제까지고 먹이려고 하셨다. 나도 거의 세 네 살까지 젖을 먹었다고 들었다. 내 밑에 막내 동생은 여섯 살이 넘도록 젖을 먹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다가도 들어와서는 어머니 품을 파고들어 젖을 먹었다. 주위 사람들이 젖을 떼지 다 큰 애를 무슨 젖을 먹이냐고 하면 어머니는 이제 더 먹일 아이도 없는데 나오는 젖을, 먹겠다는...
심현섭
그리움 2025.06.27 (금)
사그라져 가는 물안개 아침 햇살에 부서지고   파도가 뿜어낸 당신 닮은 은빛 숨결 물 비늘이 허공 위로 흩어지네   그대 향한 서성임이 아픔의 태산 되어 울고   요란한 살여울 지쳐 밀려온 그 자리 차디찬 빙산 이어라   볕 뉘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당신 목소리에 오늘도 목이 메이네
김정임
바람이 전해준 말 2025.06.27 (금)
  캐나다 웨이에서 오클랜드 스트리트로 우회전 핸들을 틀자마자, 눈부신 초록의 나라가 시야에 확 펼쳐졌다.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시원해진다. 문득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로 시작되는 설국(雪國)의 첫 페이지가 떠올랐다. 하얀 눈의 나라로 들어가는 대신, 나는 온 세상이 초록으로 물든 별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길은 조금 지나면, 디어 레이크 파크 숲을 우측으로 끼고 돌면서 계속...
지연옥
The Rose of Sharon Blooms in Vancouver                                                   Poem by Lotus Chung Mother, brother, we’ve crossed the seaUnder Vancouver’s sky, the Rose of Sharon blooms in fullOn sunny days, let bursts of laughter bloomLet’s dress in hanbok and dance with grace In the immigrant’s suitcase, dreams and hopesAnd tucked inside, a single word in our mother tongueChildren, friends, be proud Embracing two cultures in our...
로터스 정병연
양상군자 시리즈 2025.06.20 (금)
30년 전 빅토리아에서 편의점을 운영할 때였다. 한 번은 내 가게에서 일하는 모하메드 (아프가니스탄인)가 어떤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보고 혼내 주었다고 한다. 그 아이 인상착의를 들으니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담배나 우유를 사러 오는 테미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잔돈 남은 것으로 사탕을 사 먹는 순해 보이는 4-5학년쯤 되는 남자아이였다. 며칠 뒤 저녁때쯤 그 아이와 친구가 사탕을 사러 들어왔다. 검은 큰 잠바를 입고 사탕과 초콜릿이 진열된...
이종구
   거센 물살을 이기며 본향으로 역류하는 연어의 몸짓을 본 적이 있는가? 영어의 바다에서 한글로 문학작품을 쓰는 이들이 연어의 몸짓을 닮고 있다. 금년 한카문학상 응모작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 보면 언젠가부터 영어도 잘 늘지 않고, 한글은 잘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을 살리고, 우리 글을 익히려는 한국문학 지망생들의 도전은 처연하게 아름답다. 이제 수상자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원배(심사위원장)
은사시나무 2025.06.13 (금)
유월의 숲나풀거리던 녹두 빛은  어느새 농록한 푸름으로 가득하다해질녘 노을 꽃피면붉은 비로도 옷 두른 나무들 사이늙은 은사시나무흰 버짐 가득 핀 맨살 드러낸 체 고단한 시간의 허물을 벗겨내고 있다영겁의 세월 지나는 동안이웃한 바람, 꽃, 새들에게힘껏 다정하였다고 정성다해 사랑하였다고구름으로 하늘편지를 띄운다고요한 유월의 숲겹겹이 까만 커튼이 드리우면슴벅거리는 황혼의 노을 데리고은사시나무 레테의 강가*에...
김계옥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   
광고문의
ad@vanchosun.com
Tel. 604-877-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