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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밥 한 줄 2024.03.04 (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김밥 한 줄은 말줄임표(……)간단명료하다. 설명이나 사족을 붙이지 않는다. 말의 울림이다. 침묵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 함부로 말할 수 없어 가슴 속에서만 숨 띄는 함축언어이다.김밥 한 줄은 가장 간소한 한 끼이다. 30초 만에 차려진다. 김 한 장을 펴고...
[기고] 구월 2023.09.25 (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구월은 뜨거운 땡볕이 물러가고 하늘이 창을 열고 얼굴을 내 보이는 계절…….  하늘은 맑은 표정을 보이고 비로소 마음을 연다. 어느새 선선 해진 바람도 들국화나 코스모스꽃향기를 실어 오고, 열린 하늘을 향해 피리를 불면 가장 멀리까지 퍼져 나갈 듯싶다....
[기고] 수양매화 2023.04.17 (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사월 중순, 경기도 축령산 자락에 둘러싸인 아침 고요 수목원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단번에 눈이 황홀해져 어쩔 줄 모르고 오랫동안 바라만 본다. 여인은 방문 밖으로 긴 주렴을 늘어뜨리고 그 안에서 홀로 가야금을 뜯고 있는가. 내 가슴에 덩기둥,...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국립신라박물관에 가면 관람자의 눈을 환히 밝혀주는 신라인의 미소가 있다. 얼굴무늬수막새(人面文圓瓦當)이다. 기왓장에 그려진 얼굴 한쪽이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초승달처럼 웃고 있다. 이 얼굴무늬수막새는 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고] 암각화 2022.12.19 (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영혼의 뼈 마디 하나 떼 내어만든 피리로불어보는 그리움눈물 있는 대로 빼내빈 적막오장육부썩을 대로 썩고뼈만 남아혼자 내는 인광燐光누군가등불 들고만 년 어둠 밟고 오는가
[기고] 나비의 힘 2021.08.03 (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나비는 타고난 천상의 예술가. 몸매 자체가 신의 예술품이다.가느다란 몸체는 연약하지만, 양 편으로 두 쌍 씩, 네 장의 날개는 색채 미학의 결정체이다.좌우의 날개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대칭 무늬로 황홀감을 준다.나비는 타고난...
[기고] 시간과 수레바퀴 2020.09.30 (수)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인생은흐르는 것이 아닌 데도생명이란 표를 타면시간의 여행자가 되고 만다내 수레바퀴는어디로 굴러갈까종착지는 어딜까망각 속으로 이대로 사라져도 좋을까나는 어디서 내려야 할까정처 없이 굴러가는 시간의 수레바퀴
[기고] 잎에게 2020.06.29 (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꽃들은 세상을 장식하지만잎들은 세상을 바꿔버린다꽃은 한순간의 영화잎은 세상의 빛깔꽃은 사랑이지만잎은 생명 그 자체꽃에 홀리곤 했지만그대는 언제나 나의 잎이었다
[기고] 무관심 2019.12.11 (수)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글을 한 편 쓰면 아내나 아이들에게 슬며시 한 번 읽길 청한다. 반응을 보고 싶어서이다. 영국의대시인 쉴러도 밤새워 한 편의 시를 쓰면 가정부에게 읽게 하고 소감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시를모르는 가정부가 비평가의 안목일 수는 없으나 가정부에게 만족감을...
[기고] 2019.08.26 (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심심하니 껌이나 씹어볼까. 여행하기 전에 가끔 껌을 사기도 했다. 입에 넣으면달콤해진다. 간편한 위안이다. 스트레스도 씹어본다. 딱딱, 쩍쩍, 그냥 심심풀이다. 사실심심풀이란 심오한 말이다. 잡다하고 혼탁한 마음을 풀어본다는 것이니, 그런 경지가...
[기고] 봄의 촉감 2019.04.04 (목)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1) 수양버들누가 가야금을 뜯고 있다.맑은 진양조(調) 가락이 흐른다. 섬섬옥수가 그리움의 농현(弄絃)으로 떨고 있나 보다.숨죽인 고요 속에 번져 나간 가락은 가지마다 움이 터서 파릇파릇 피어나고 있다.누군가 촛불을 켜고 있다.마음 한 가운데 촛불은 바람도...
[기고] 눈 오는 날의 피아노 2019.03.06 (수)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하늘이 잿빛으로 내려와 있다. 버스정류장에 벌써 몇 대의 버스가 서고 지나갔지만 마을 앞엔 한 사람도 내리지 않는다. 도로 위에 돌개바람이 불어 먼지와 티끌들을 공중으로 말아 올린다. 겨울의 황량한 바람이 스쳐가고 있다.'어쩌면 첫눈이...
[기고] 새해인사 2019.01.08 (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새해에는 평범함의 은덕을 알게 해 주소서 사소함의 기쁨을 알게 해 주소서 그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의 손을 잡게 해 주소서 보통의 즐거움을 갖게 해 주소서 풀꽃들과 대화하게 해 주소서일상의 발견과 이 순간의 깨달음을 얻게...
[기고] 한지방문 2018.11.02 (금)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우리 나라 아침은 한지 방문으로부터 온다.희끄무레한 여명이 물들어 있는 한지 방문을 보면서 아침이 온 것을 알게 된다. 한지 방문은정결하고 고요롭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밝아오는 아침의 서기와 명상이 어려 있다.유리창처럼 빛을 투과하지 않고 머물게 하는...
[기고] 달 항아리 2018.07.09 (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달 항아리를 보면 달빛의 맑은 도취 속에 빠진다. 달빛 속의 미인이나 꽃은 더 어여쁘고 향기롭다. 햇빛은 사물의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지만, 달빛은 마음까지 닿아 오는 여운(餘韻)을 준다.  달 항아리를 보면 불현듯 조선 중엽의 달밤 속에 있는 듯하다....
[기고] 신록의 계절 2018.03.20 (화)
정목일 /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우리나라 사월 중순부터 오월 중순까지 한 달쯤의 신록기(新綠期)엔 그 어떤 꽃들도 빛날 순 없다. 색채나 빛깔에 신비, 장엄, 경이라는 왕관을 씌운다면 꽃이 아닌 신록에만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장미, 모란, 국화, 튤립 등은 화려, 우아, 매혹, 황홀이란...
[기고] 마음 인사 2017.11.24 (금)
캐나다 한국문협 고문 / 수필
바람 쐴 겸 공원을 찾았다. 오랜 만에 산책하는 기분이 삽상하다. 공원은 도시의 폐와 같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을 베풀고, 젊은이들에겐 낭만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귓가를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결과 만나고, 녹음 사이로 속삭이는 새들과도 만난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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