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따로 또 같이

조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2-13 08:39

조정 / (사)한국문인협회 캐나다 밴쿠버지부 회원
 오늘은 집에 손님이 오는 날이다. 저녁 준비로 동동대는 내 옆에서 남편은 어느 때보다 협조적인 자세로 하명을 기다리고 있다. 청소기를 돌리고 거실 유리창을 닦고 바베큐 그릴도 달구고… . 바쁜 가운데 손발이 맞는 손님맞이는 수월하게 마무리가 되어 간다. 오늘 손님은 같은 해 밴쿠버에 정착해 한동네에 살던 유고인 프레드락과 수잔나 부부이다. 연배가 비슷한 우리는 긴 세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일상의 애환을 나누고 살아온 귀한 인연이다. 샴페인 잔을 들어 이민 30년에 대한 각자의 뜻깊은 소회를 말하고 음식과 밀린 정담을 나누는 시간이 밤늦도록 이어진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공자님께선 멀리서 내 집에  찾아오는 친구에 대한 반가움을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이라고 설파하셨다.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서로 교류하며 우의를 나누는 풍속에 일찍이 삶의 방점을 찍으셨다. 그 옛날 3대 대가족이 모여 살던 우리 집엔 손님들이 자주 찾아오셨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대문을 밀고 불현듯 안마당으로 나타나시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곤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어른들은 손님이 언제 가실지 묻지 않았다. 고기반찬을 상 위에 올리는 부산스러움도 없었지만, 빨리 가기를 바라는 소홀함도 없던 인정 넘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밤 멍석 옆에 모깃불을 피우고 손님 곁에  둘러앉은 식구들이 얘기꽃을 피울 때면 달빛보다 환한 박꽃들이 잿간 지붕을 덮고 있었다.
 
 이제 시대가 변해 주거 형태가 바뀌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의식 구조는 손님이 온다고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실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와 개인주의, 결혼과 출산율 저조, 고령화 등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방문 때 공유주택인 청년층을 위한 기업형 코-리빙 하우스(Cooperative Living House)와 지자체 지원 노인 복지주택이 텔레비전 뉴스에 소개되었다. 한 지붕 아래 1인 가구들이 모여 사는 공유 주택은 경제적 부담이 적고 안전과 편리가 보장되며, 생활 문화를 바꾸어 나가는 새로운 주거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도시 지역에 따라 세대수가 다른 코 리빙 하우스는 크기가 다른 개인 방과 공유공간인 주방, 세탁실은 물론 소규모 회의실, 헬스장, 도서관, 영화 감상실, 카페 그리고 파티를 할 수 있는 개방형 옥상까지 획기적인 설계로 지어진 건물이다. 150명이 거주하는 한 지자체 지원 노인 복지 아파트 역시 위급한 상황에 대비한 동작 감지 센서가 달린 개인 방과  건강 관리실, 다목적 문화 강당, 영화관, 찜질방, 경로식당 등 맞춤 설계의 넓고 쾌적한 공유공간이 돋보인다.
 전문적인 건축가에 의해 설계, 시공된 공유주택의 다양한 공간은 이웃끼리 서로 어울리며 관계를 넓힐 수 있도록 잦은 만남을 유도한다. 건강하게 혼자 살기 위해선 더불어 사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며, 적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성장하는 이웃이 이제 의식주 다음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 그늘과 같은 공유 공간은 생활 정보와 건강 관리법, 조리법과 여행담 등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다가가는 대화의 장이다. 나와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반응하며 마음을 열다 보면 이웃들은 어느새 일상의 밀도를 높이는 조력자가 되어간다. 물론 개개인의 공동체 의식과 책임감은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며, 규칙을 위반한 입주자에게는 거주 후 평가를 통해 벌금과 퇴출이 적용되기도 한다. 미래를 향한 1인 가구의 대안인 공유 주택은 삭막한 도시에서 개인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휴식 공간이며, 불안과 두려움이 불러오는 위기의식을 더는 사회 안전망이다. 
 
 날이 저물어 새들도 포근한 둥지로 돌아가는 시간,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오른 듯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낯익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창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환하다. 그 안온한 불빛은 언 몸을 녹이고  매듭진 가슴 속에 박힌 응어리를 어느틈에 사라지게 한다.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처럼 익숙해진 이웃들은 오늘도 사소한 화제에 귀 기울이며, 평범한 일상에 삶의 진실이 숨어 있음을 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돌들이 모여 든든한 돌담을 쌓듯, 저마다 자기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모여 따로 또 같이 빈틈을 채워가며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곳. 먼 곳에서 날아온 씨를 품어 싹을 틔우는 흙처럼, 부드럽고 따스한 이곳에서 그들은 슬프고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는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발길을 재촉해 가는 그곳이 이제 우리 집이다. 허기진 마음에 지지를 보내는 그들이 있어 나는 자주 행복하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다시 만나는 길 2026.05.01 (금)
길을 가다 길이 나누어지는 곳에 꽃을 심는다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던 길가다 보면 곧은 길은 휘어지고가는 이도 길 따라 굽어지고저버렸던 것들이 휘돌아 다시 올지 모를 기로에하얀 물망초 잠잠히 피어 서성인다
자명
뉴욕 일기 2026.05.01 (금)
금발의 미녀가 귀여운 개를 이끌고 허드슨 강변을 거닐고, 노부부가 산책하는 센트럴 파크의 한가로움, 월스트리트를 숨 가쁘게 오가는 화이트칼라들의 모습은 절묘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TV 화면을 통해 비추어지는 이곳 맨해튼은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하게 되는 도시다. 그러나 처음 발을 내디딘 이들은 한결같이 실망과 당혹감을 경험하곤 한다. 지독한 교통체증, 좁고 불결한 거리, 곳곳에 늘어선 부랑자들과 끊이지 않는 사이렌 소리. 비라도...
자명
다시 피어나는 꽃 2026.05.01 (금)
나는밴쿠버의 봄 한가운데다시 선다고요히 숨을 고른다흐드러진 꽃들 사이아직 피지 않은 하나보이지 않는 곳에서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긴 겨울은나를 꺾지 못하고도리어 나를 묻어더 단단히 길러냈다이제는 안다피어남이란우연이 아닌의지의 시간임을한 번 더스스로를 일으켜나의 자리에서새벽 머금은 불빛으로            A Flower Blooming...
로터스 정
AI와 망설임 2026.04.30 (목)
“와! 이걸 정말 직접 작곡을 하고, 노래도 하신 거예요?” 노래를 듣고 놀라서 물어본 질문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직접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이고, 보컬(음성)까지 넣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예전 ‘시리’와 ‘알렉사’처럼 단순히 사람이 시키는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처럼 예술 창작분야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나도 AI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궁금한 점이 있거나, 문제가...
정재욱
미움보다 외로움이 낫지 않겠는가아픔보다는 그리움이 낫겠지마주하여 괴로움이 끓는다면돌아서서 우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내 혀에서 독이 날름거리고눈에서 불똥 갈퀴가 할퀴기 전 그래길게 바람 한 번 들이켜고뜨거운 서러움 꿀꺽 삼키고돌아서서 홀로 걷는 거야 가는 길에 품은 악은 날려 버리고가득 찬 혀의 독을 묻어 버리면아린 마음 그나마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그래!믿음을 저버린 배신의 어둠 앞에서까짓 것 눈 한 번 질끈...
한부연
헉, 헉, 심장이 터질 듯 다리가 마비될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뇌는 달리고 있는 다리, 정확히 말하면 허벅지 뒤쪽 근육, 햄스트링에 계속 더 힘을 내 달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십여 분간 뇌와 다리가 사투를 벌인 끝에 나는 마침내 목표선을 통과 했다. 완주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만족스러운 기록에 나 자신을 조용히 칭찬했다.   나는 사십 년 넘게 달리기와 함께 살아왔다. 처음에는 체력...
정효봉
Hole 2026.04.24 (금)
전혀 다른 우리의 시작에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감싸안았다 지금도 사진처럼반짝이는 특별했던 순간들서서히 희미하게 사라지겠지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는다모든 별들의 죽음이 이미 예고되었듯이 안으로 침잠하며 검게 타오른 불길은끝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평선을 그려내었다 남은 마음이라고는후 불어 날릴 재뿐이라도아주 잃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디에든어떻게든무엇으로든 존재할...
이인숙
프레이밍 효과 2026.04.23 (목)
“프레이밍 효과 ( Framing Effect )” 라는 이론이 있다. 이 프레이밍 효과란 “어떤 사실을 전달할 때 그 사실을 어떤 틀 안에 넣어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라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액자 효과” 또는 “틀 짜기 효과” 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면 물이 절반가량 들어 있는 컵을 보고 A는 “물이 절반 밖에 없네. 다 없어지기 전에 빨리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반면 B는 “물이 아직 절반이나...
정관일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