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노매드에게 희망을

조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8-30 08:36

조정 ()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대자연의 땅에 사는 가난한 유목민들, 그들은 헤어질 때 언제나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

“길 위에서 다시 만나자.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서로의 다짐이 실린 말이다.

서리 덮인 황량한 평야와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 벼랑 밑으로 넘실대는 파도---, 고립된 외로움을 안고 목적지를 향하는 유목민들은 그 말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영화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올해 93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 주연상 등 6개 부문과 베니스 국제 영화제, 골든 글로브 영화제 등에서 트로피를 휩쓴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는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Jessica Bruder) 3년간 노매드들을 밀착 취재하며 쓴 원작을 바탕으로 클로이 자오(Chloe Zhao) 감독이 완성한 이 영화는, 한 곳에 정주할 수 없는 노매드들의 삶을 밀도 있게 담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주택 시장 붕괴로 인한 불황은 많은 미국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불러왔다. 트레일러와 밴이 집이고 캠핑이 곧 일상이 된 수많은 길 위의 여행자들은 ‘현대의 유목민(Nomad)’으로 불린다. 한때 사회 규범을 따르며 중산층으로 살던 그들 대부분은, 외부의 충격으로 계절노동을 찾아 이동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주택 대출금 체납으로 집이 압류되고 투자한 저축과 퇴직 연금을 잃은 사람들, 소액의 사회보장연금과 저 임금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사람들, 공장의 폐업과 자동화로 고용과 의료 혜택에서 밀려난 사람들, 사랑하던 남편과 아들을 잃고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내가 ‘소유한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던 그들은, 이제 예측 가능하던 미래가 신기루임을 받아들이고 변화에 적응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주인공 펀(Fern, Frances McDormand )은 사랑하던 남편과 직장을 잃고 ‘선구자’(vanguard)라고 이름 지은 밴에서 노매드의 삶을 시작한다. 아마존  물류창고, 국립공원 캠프장, 사탕무 농장, 식당 등에서 단기 노동자로 일하는 그녀는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 고통을 나누며 자신을 치유해 간. 펀이 길에서 만난 청년에게 들려주는 셰익스피어의 짧은 사랑의 시는,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여름날에 비유하며 그의 영혼을 노을빛으로 물들인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아니, 그대는 여름보다 더 사랑스럽고 부드러워라/거친 바람이 오월의 꽃봉오리를 흔들고/우리가 빌려온 여름날은 짧기만 하네---/그댄 영원한 운율 속에 시간의 일부가 되리니---

펀은 이 시를 음미하며 혼자이지만 함께 있는,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남편을 떠올린다

‘누군가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기억해 준다면,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남을 것이다.

 

 예순네 살의 린다 메이(Linda May)는 오늘도 지프에 트레일러를 달고 계절노동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로서, 우리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 희망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재활용품으로 만드는 태양열 주택 (Earthship)과 자급자족의 농사법에 관련된 자료를 찾고 있다. 공동체의 다양한 소셜 미디어에서 생존 전략을 공유하는 그녀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미래를 계획해 나간다

 

 영화는 전통적 의미의 집이 없는 노매드(Houseless)들이 아픔을 나누며, 삶을 긍정하는 모습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자연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며 찾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노매드 공동체에서 새로운 목표를 위해 연대하는 그들은, 이제 트레일러는 이동성을 갖춘 집이며, 최소한의 공간에 생활을 압축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실제 노매드들의 섬세하고 진솔한 연기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피아노곡을 배경으로 그들의 절제된 감정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냉혹한 현실과 그들 내면의 충만함을 모두 담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균형감각은, 너무도 익숙해진 우리의 정형화 된 삶을 돌아보게 한다.

미 중부(South Dakota, Nebraska)와 서부(Nevada, Arizona)의 광활한 자연은, 삶의 의지를 다지는 길 위의 사람들을 품어 안는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유목민들은 몸과 마음을 열어 다시 모험 길에 나선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섬'이라고 굳게 믿으며.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프랙탈 2024.06.07 (금)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입니다. 어제 오후, 속칭 <버뮤다 연쇄살인>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다섯 번째 희생자 이후 불과 7주만에 발견되면서 사회를 다시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오늘 경찰은…” 고준호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양손으로 뼈채 들고서 발라 먹던 고기를 잠시 내려놓고,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TV 리모컨을 집어올려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고기를 먹으면서 연쇄살인 어쩌구 하는 얘기를 듣기에 고준호 씨의...
곽선영
이민자의 특징 2024.06.07 (금)
  ‘동양의 도학은 약육강식을 부도덕이라고 하지만 서양의 철학은 이기는 자만이 생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을 인용한 것은 과거엔 이민을 운명, 팔자, 역마라 치부했다면 현재는 용기 있고 강한 자의 결단과 도전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의 방법은 초기엔 간호사나 재봉사 등의 기술이민이 주였다면 지금은 독립이민, 기술이민. 투자이민, 초대 이민 등 다양한 통로가 있다. 초기엔 전문직이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이민의...
이명희
나물 캐는 아낙의 시선 피하여길섶 풀숲 속숨어 핀 샛노란 민들레해를 사랑하여환한 꽃 피우고임 온기 느끼며 길가에 서 있다가흰 나비 애무하고 떠나간 뒤날개 단 홀씨 한 다발 들고초원 지나갈 바람 기다린다오! 바람이여저 멀리 하늘 끝에 계신 내 임에게로Please! send seeds beyond the cloudsto the end of the sky
김철훈
강물을 보네깊어지며 흐르는 거역 없는 몸짓을 보네하루를 다 날아온 고단한 태양을 눕히고어느 산기슭 떠나온 나뭇등걸도 함께 눕히고강물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나를 보네팔랑이는 잔물결들 사이로 얼핏 설핏 보네정(精) 때 묻은 부모 형제 다 두고태평양 큰물 건너오던 반세기 전 그날비단결 검은 머리 스물여섯 살 새아씨여!세월을 보네꿈, 좌절, 인내들이 들락거린 한 세월을 보네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 일어서면서고향 떠나 멀리 또...
안봉자
세 번의 외과수술 2024.06.03 (월)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여 새롭게 나날이 달라지는 세상을 산다고 했더니 어느 날 주위를 살펴보니 100세 이상 사시는 노인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60세 환갑잔치를 요란하게 치르던 때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환갑잔치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100세 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도 아니다. 수명이 늘어난 것은 의료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덕분이다. 이런저런 수술로 죽을 사람이 죽지 않고...
심현섭
감자 꽃 향기 2024.06.03 (월)
“할무니, 왜 이쁜 감자 꽃을 다 따분당께라우?” “꽃을 따내 줘야 밑이 쑥쑥 든다고 안 그러냐?”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까. 할머니를 따라 밭에 나갔다. 할머니는 밭을 한 바퀴 휘 둘러보시더니 감자 밭으로 가 감자 꽃을 따기 시작했다. 꽃은 꽃이고 밑은 밑일 텐데 어린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니 어미가 감자 꽃을 참 이뻐했느니라.” 하시더니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가? 순간 흐린 기억으로 어머니가 감자 꽃을 바라보고...
최원현
오 월 찬가 2024.06.03 (월)
상큼한 산들바람 손등 스치고 지나가면나무를 건너뛰던 다람쥐 나도 보아 달라하고 작은 무도회를 연캐나다 구스 공연 햇살도 왜 나는 안 봐주냐며무릎에 앉았다 눈으로 보아도 들리는 님의 소리처럼
전재민
엄마의 빨랫줄 2024.05.27 (월)
그 시절 엄마는아침 설거지 마치고이불 홑청 빨래를 하곤 했다커다란 솥단지에 폭폭 삶아돌판 위에 얹어 놓고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고된 시집살이에마음의 얼룩 지워지라고부아난 심정 풀어보려고눈물 대신 그렇게 두드렸을까구정물 맑아진 빨래를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말뚝 박은 빨랫줄에 널어놓으면철부지는 그 사이로 신나서 나풀댔다부끄러운 옷까지 대롱대롱 매달린울 엄마 늘어진 빨랫줄은 마음의 쉼터옹이 지고 구겨진 마음이훈풍에...
임현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