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겨울 부츠 이야기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2-10 16:41

김춘희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 지부 회원


                                                   

   한기가 발끝에서부터 몸 위로 차오르면 나는 겨울 부츠를 꺼내 신는다. 지난 1월에는 예상치 못했던 북극의 한파와 폭설로 학교와 공공기관들은 문을 닫았다. 뜻하지 않은 휴교 덕분에 아이들은 미끄럼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며 한껏 휴가를 즐겼다. 부츠를 발에 껴 신으며 나는 12년 전의 몬트리올로 돌아가 추억을 반추한다.

 

   그는 2008년 2월 8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 긴 여행을 떠났다. 그의 생애 마지막 약 한 달, 병실에서 그가 떠날 날을 카운트다운하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을 때였다. 낮에 아이들이 병실을 지키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여러 가지 일 처리를 했다. 은행 잔고, 회사 보험, 장지 확인, 등 정말 바쁘게 며칠을 보냈다. 그의 소지품도 대충 정리 하고 이제는 차분히 병실을 지키고 있던 어느 날, 딸과 아들이 내게 살짝 물어왔다. 아빠가 왜 지갑을 침대 머리 책상에 두고 있는지 호기심에 열어 보았는데 거금 300불이 들어 있다고 의아 해 하는 것이다. 궁금하면 여쭈어 보라 했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어느 날 궁금증을 못이긴 아들이 아빠가 조금 안정 된 시간을 틈타 물었다. 아빠 지갑 속에 있는 돈으로 뭘 할 것이냐고. 그는 잠시 싱글 미소를 지으며 쉰 소리로 ‘엄마 부츠 사주려고’ 우리는 모두 놀랐다. 그는 방사선 치료 때 성대를 상해서 목소리는 꺼져 버렸고 다만 목쉰 소리로 말을 했다. 호흡도 거동도 힘들어 하면서 아내의 부츠 걱정을 하다니! 그 때 딸아이가 간단명료하게 ‘아빠 걱정하지 마, 엄마 부츠 그 돈으로 우리가 사 드릴거야’ 했다. 그는 또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맘대로 해’. 그렇게 하여 아이들은 아빠 지갑 속에서 잠자던 300 불을 꺼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암에 걸리기 전 몇 년 동안은 여러 가지 건강 문제로 병원을 들락거렸다. 바로 그 전해 1월이었다. 그 때도 지금 밴쿠버처럼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나는 병원 침대에 잠시 그를 남겨 두고 그의 치료에 꼭 필요 했던 물건을 챙기기 위해 급히 집으로 돌아 왔다. 급한 마음에 눈이 아직 묻어있는 부츠를 신고 집안으로 들어 가 8개나 되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아래로 드르륵 미끄러지듯 넘어졌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었으나 엉덩이와 허벅지에 심하게 멍이 들어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멍 자국은 오래 갔고, 그러다 봄이 왔고 또 그의 병치레를 하느라 새 부츠를 사러 다닐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새 부츠를 사야한다고 노래를 했고 나는 산지 일 년도 안 되는 새 신이고 내 부주의로 넘어진 거라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나서는 부츠 챙길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부츠가 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가 떠난 후 그 해 봄, 집 정리를 모두 끝내고 그가 남겨 준 300불로 외출용과 막 신는 부츠 두 개를 샀다. 올 들어 12년차 신고 있다. 아이들은 새것으로 바꾸라 하지만 아직도 말짱한데 새 부츠를 산다는 것은 불필요한 사치라 생각한다. 나는 옷, 신발 그 외 어떤 것도 한번 내 맘에 들면 잘 버리지 못하고 오래 쓴다. 더욱이 이 부츠엔 특별한 기억이 묻어 있기에 선뜻 버리지 못한다.

 


   우리는 그가 마지막 가는 길을 더 따듯하게 보내 드리려고 많은 애를 썼다. 병실이 독방이라 그런대로 우리 식구끼리의 시간이 많이 허락 되었다. 회사를 다니던 아들은 돈은 나중에 벌어도 된다며 12월서부터 집에 와 있었고 보스톤에서 선생을 하던 딸도 휴가 아닌 휴가를 받아 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료 선생들이 자기들이 쓸 병가 휴일을 모두 친구 선생에게 도네이션 해 준 덕분에 맘 놓고 와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가 떠나기 전 거의 두 달을 함께 지냈다. 병실에서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냉면 파티는 두 번, 애주가였던그를 위해 위스키 파티까지, 그 외에도 성가대원들의 작은 위문 음악회... 영원한 이별을 슬퍼하는 방문객들에게 그는 오히려 위로와 용기를 주면서 자기의 죽음을 준비했다.

 


   숨이 꺼져 가면서도 그는 한 번도 아프다 괴롭다 불평 하지 않고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드렸다. 한마디로 그는 낙천가였다. 마누라와 아이들만 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 사람이었다. 그 외의 것에 정신을 팔지 않은 가정을 위한 사람이었다.

 


   고대 로마에 호라스라는 서정 시인의 momento mori, carpe diem 라는 유명한 싯구가 있다. 그 뜻은 ‘네가 죽을 인간인 것을 알아라, 그러니 오늘을 잡아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혹자는 잡아라 대신 즐기라 로 해석하지만 잡아라 가 더 맞을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죽게 되어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랴. 그러나 그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드리면서 내 앞에 남아 있는 오늘 이라는 시간을 최대한 후회 없이 살라는 뜻이리라.

 

   2008년 2월 8일 새벽 5시 그가 떠나기 전 몇 시간까지 우리를 웃기고 장난치다가 드디어 그는 긴 여행의 잠으로 빠져 들어 갔다.



   오늘도 나는 하느님이 허락하셨고 지금도 계속되는 시간들이 감사해서 어린아이처럼 ‘까르페 디엠’ 을 외우며 부츠를 신는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홍익인간의 개념 2026.10.09 (금)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마음둘 곳이 없을 때는부모님을 생각하세요.  헤어짐과 만남이 서로 갈등을 쌓아 놓을 때는설렜던 기억만 생각하세요.  기분이 우울하거나 감정이 내려앉을 때는깊은 계곡 맑은 물을 찾아보세요.  우리가 지금 세계의 어느 곳에서터를 잡고 생활하고 있다면  또 그곳의 생활에 충실해하루의 일상이 바쁘게 회전하다가언뜻 어린 시절의 고귀하게 남아있는추억을 생각하고  더할 나위 없이...
송요상
에버그린 하우스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오래된 요양 병동이다.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은 노란 벽돌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오십 년이 넘은 낡은 건물은 새로 들어선 병동 맞은 편에 낮게 웅크리고 있다.    요양원이나 장기 요양시설에는 에버그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 많다. 상록수는 사철 내내 잎이 푸른 나무를 이르는 말이다. 맑은 공기와 생명력이 가득한 상록수 숲의 인상과 달리 요양 병동은 잿빛 하늘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이주령
아파트 9층인 우리 집 거실에서 베란다 쪽 소파에 앉으면 사거리가 보인다. 건너편 아파트와 시내로 나가는 길이 교차되는 길이다. 그 사거리를 바라보며 가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신호에 따라 밀려왔다 밀려가고 달리다 멈추고 하는, 하등 신기할 것 없는 차량의 행렬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저렇게 많은 차들은 대관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새벽부터 밤중까지 끊임없이 굴러가는 지친 바퀴들은 언제 어디쯤에서 쉬게 될 것인가. '나는 바퀴를...
최민자
호모 사피엔스 2026.10.08 (목)
우쭐대는 글 들과 퍼즐처럼 늘어놓은 낱말들로 인간이 지성이라 쌓아놓은 성벽 위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을 뒤적이며 짐작으로 떠들고 떠들며 이름 부쳐놓고 이름 부쳐놓고 킬킬대는 호모 사피엔스  먼 길 돌고 돌아 여기 인공지능의 지성을 빌어 태초에 생명이 탄생하고 태초의 생명이 헤어진 길 그 헤어진 출발 선에서 다시 만나 모인다면 모든 생명들 한 동아리로 돌아가 그 최초의 언어로 말문의 장벽은 허물리고 그때 굶주린...
조규남
해외에 살면서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지 않게 되면, 한국에 갈 일이 점차 줄어든다.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겨들었는데, 작년에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니 서글픈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당장 한국에 가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형제자매가 있어도 며칠은 괜찮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서로 불편하다. 그래서 묵을 곳을 인터넷을 통해 구했다.    예전에 엄마 집에 머물 때는 모든 것이 익숙해서 몇 년 만에...
박혜정
탈피 2026.10.02 (금)
검은 물속 바위 아래 웅크린가재 한 마리가 몸을 비틀고 있다살아남으려 껴입은 갑옷은 어느새숨을 옥죄는 감옥이 되었다터져 버릴 것 같은 몸을좁은 문틈으로 밀어낸다죽음의 동굴을 빠져나온다무방비하고 말랑한 새 몸가재는 벗어낸 뿌연 몸뚱이와 마주한다나를 지키던 세계를조각조각 씹어 삼켜새로운 갑옷을 만든다다음 죽음까지 또 한 번의 영원을 준비한다유명한 그림 속 붉은 가재를 떠올리다고개를 내젓고는청록의 꼬리를 접었다 펴물살을...
이인숙
꽃의 체온 2026.10.01 (목)
     인사동에 가면 '볼가'라는 찻집이 있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실내에 들어서면 창가에 풀꽃들이 도열해서 길손들을 반겨준다. 깜찍하게 예쁜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살며시 꽃잎을 만져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꺾고 싶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왜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소유욕이 발동을 하는 것일까. 꽃 앞에서 해 보는 생각이지만 내가 꽃잎을 만져보는 더 큰 이유는 생화인가 조화인가 알아보기 위해서다....
반숙자
감 2026.10.01 (목)
          1. 감 꽃 샛결바람 따스히 감 꽃이 떨어져요 장독대 물들이고 담장아래 소복소복 눈처럼 쌓여가요   밭일 나간 엄마에게 막내소식 들려주려 바삐 바삐 떠나가다 가지 끝에 결린 바람   맴을 돌다 사분사분 감 꽃만 흩날려요   샛결바람 따스히 떨어진 감 꽃이 내 마음 물들이고 발치 아래 소복소복 눈처럼 쌓여가요   2. 목걸이 실에 꿰어 만든 목걸이 엄마 기다리다 길어진 모가지에 드리우고...
김호정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