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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권숙정의 역사의 이삭줍기(2)

권숙정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2-28 10:20

朴대통령 통치관련 비밀자료 보일러 속으로
■ “우리는 곡(哭) 할 때만 들어오느냐”

10월 27일 새벽 4시20분이 지나면서 김종필등 20여명의 친인척과 대통령 특별보좌관, 장관들이 청와대 본관에 도착했다.

대접견실의 빈소 마련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대통령의 시신은 소접견실에 그대로 모셔져 있었다.

모두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망연자실할 뿐 말문을 열지 못했다.

김종필은 관 뚜껑을 열고 고인의 존안을 한참 들여다 본 뒤 “표정이 편안하시다. 그렇게도 크신 분이었는데....”라고 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김종필은 비서실장실에서 김실장과 30분쯤 요담했다. 사건의 진상을 추궁하면서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잘못된 보좌를 준열히 질타했다.

한편 청와대 전속 사진기사인 국립영화 제작소 김기사와 KBS 카메라맨 정기사가 대통령시신의 사진 촬영을 요구하고 나섰다.

나는 촬영을 못하게 했다. 두 기사는 ‘역사의 기록‘을 내세우며 거듭 촬영요청을 했는데 나는 잠시 망설이면서 생각했다.

‘역사의 기록이냐’ 아니면 ‘믿었던 심복의 반역으로 가신 불행한 모습을 남기도록 해야 하는 것인가’ 과연 바람직한 역사의 기록이 될 것인가.

시대 변화에 따라 악용될 소지는 없을 것인가 등 등.

끝내 사진 촬영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대통령 주검의 모습이 한 장면도 남아있지 않음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었다.

27일 오전 6시30분경, 이른 아침식사로 해장국이 나왔다.

식사 중 친척 누군가가 “우리는 곡(哭)하는 부내냐 평소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더니..... 육여사 때도 그랬고 ...이럴 때만 불러들이고...” 하면서 서운한 속내를 터트리기도 했다.

박대통령의 철저한 친인척 관리 때문에 불편을 겪었던 불만이리라.

김종필은 해장국밥을 먹으면서 “영웅답게 돌아가셨다. 혁명가답게 가셨다. 내 손발이 다 잘리고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이렇게 돌아가시면 나더러 어떻거란 말인가...” 등 등 착잡한 심정과 독백을 토로했다.

육군 참모총장 출신인 徐鐘喆 안보 특별보좌관은 김재규가 차지철만을 처치하고 그 자리에 꿇어앉아 잘못을 빌 일이지 어떻게 형님 같은 대통령께 총구를 겨눌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개탄했다.

앞으로의 정국혼란과 안보문제에 대한 걱정들이 많았다.

앞으로의 정국추이를 주시하면서 박대통령의 민족중흥과 근대화의 이념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성급한 애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흘러간 물은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법‘이라고 말한 대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전 정보부장 申稙秀의 말이었다.

불안 초조 비통 허망의 시간이 지나고 27일 아침이 되었다.

오전 9시경 구자춘내무장관이 다른 장관과 수석비서관 몇이 모여 있는 비서실장실에 들렸다. 구자춘내무장관은 간밤에 김재규를 취조 수사한 상황을 긴급뉴스로 전했다.

얼음 욕조 목욕을 시켰다느니 “8군 쪽에서 무슨 연락이 없었느냐”는 김재규의 반문이 있었다느니 등의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 金桂元 비서실장의 연금

 
27일 오전 11시경 나는 김실장과 단독 면담했다.

국가 안보와 향후 정국대책 차기 정권 문제 등에 대해 국무총리 안보관계장관 공화당 수뇌(J.P)들과 협의하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김실장은 “내가 뭐 지금... 그런거 할 수 있나...” 맥 빠진 중얼거림이었다.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누구와도 대화를 않은 채 사무실만 지키고 있었다.

낮12시 30분경 전두환 보안 사령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짧은 통화를 끝낸 김실장은 집에 가 있겠다면서 논현동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李경호실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비서실장이 귀가 했는데 그의 신변보호를 위해 경호 요원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보안사에서 경비하고 있으니 경호실 요원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가택연금이 된 것이다. 외부 인사의 출입금지는 물론 부인과 가족들의 출입도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김실장이 대통령 시해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실 김실장은 대통령 시해 사건에 연루, 가담할 만큼 대담하거나 모험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무모하고 저돌적인 성품의 소유자가 아니다.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으로 천성이 온화하고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가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대인 관계가 모나지 않으며 친화력이 뛰어났다.

군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여러 요소를 간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야전군 사령관, 참모총장을 거쳐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했다.

중앙정보부장 단명퇴임 후 주 대만대사 9년만에 김재규의 주선으로 귀국, 비서실장에 피명된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로 미루어 보아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서로 상의하고 위로와 협조를 나누는 우호적인 사이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차경호실장의 정보부장에 대한 월권, 대통령의 차실장 편애 등으로 인한 갈등과 긴장, 김재규의 내면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분노의 강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김실장이리라.

그리고 그 분노의 폭발가능성과 폭발의 강도에 대해서도 김실장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간과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권의 핵심 두 권력기관장의 불화와 반목 갈등 그 폭발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가 정권 안보와 국가 안위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보다 신중한  검토와 대응을 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두 기관장의 업무 영역과 역할 분담 교통정리를 1차 조정 건의 한 것으로 족한 것인가.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 2차 3차 건의를 해야 하는 것이 비서실장의 책무요 사명일 진데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통한의 비극을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방됐어야 만 했다.

역사에 대한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너무나 아쉽기 때문이다.

 

■ 대통령 통치관련 비밀자료 보일러 속으로 영원히 묻히다.

 
김실장이 가택연금된 27일 오후 1시 30분경 보안사 합동 수사본부에서 비서실장실을 조사하겠다고 禹대령 등 수사관 3명이 나왔다. 실장방과 보좌관방 부속실 등을 조사했다. 그러나 별로 조사할 것이 없었다.

원래 비서실장실에는 서류 같은 조사 대상물이 없다. 대통령의 재가 또는 보고 서류는 모두 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 보관 관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시는 전화로 처리했다.

수사관들은 전화통화 기록부를 요구했다. 그러나 비서실장실에서는 하루 수십 통 내지 백여 통의 전화를 하기 때문에 통화기록부를 만들 수 없었다.

나는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고 굳이 필요하다면 청와대 전화 교환실에 연락하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서실장실과 붙어있는 내 방도 조사했다.

내 책상 옆에 있는 대형금고를 조사하겠다며 금고문을 열 것을 요구했다.

금고 안에는 대통령의 통치와 관련된 기밀문건. 자료, 군사외교에 관한 비밀문건, 대미 의회비밀 로비와 관련된 문건, 대통령의 비자금 등 최고기밀 사항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수사관들이 이것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대통령의 통치기밀임을 들어 단호히 거절했다. 합수부에서 끝내 조사하겠다면 전두환 보안 사령관 겸 합수부 본부장에게 내가 직접 설명하겠다고 버텼다.

그들은 금고에 봉합 딱지를 붙이고 돌아갔다.

금고조사는 이후에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5시경 나는 참고인 진술차 삼각지 국방부 옆에 있는 합동 수사 본부로 연행 구금되었다. 경호실장과 정보부장의 갈등관계, 10.26 당일의 시간대별 상황 등을 진술조서로 작성해 달라고 해서 그 작업을 몇 번씩 되풀이 했다. 이틀 밤을 묵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죄를 짓고 이렇게 들어와 있다면 얼마나 불안할 것인가.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굳게 굳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를 담당했던 수사관 소령이 김실장 가택 수색을 나가야 한다면서 논현동 자택 약도를 그려 달라고 하여 그려 주었다.

다음날 참고인 조서를 다시 쓰라고 해서 같은 내용을 옮겨 쓰고 있는데 그 수사관이 지금 곧 보안사령관실로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모든 것을 중지하고 그와 함께 청와대 옆 보안사령부로 갔다.

전두환 사령관과는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있을 때 안면이 있었던 터라 수인사를 나누고 위로의 말과 차 대접을 받고 청와대로 돌아왔다.

다음날 금고 안에 보관 중이던 9억 5천만원을 박근혜 큰 영애에게 전달하였다.

남은 문제는 금고 안에 있는 기밀서류의 처리였다.

비서실장이 연금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누구와도 상의하지 못한 채 내 책임아래 처리 할 수밖에 없었다.

내용물 중 관계기관에 이관할 것은 이관하고 영원히 비밀로 해야 할 것들만 따로 골라 보자기에 쌌다.

대통령의 장조카 박재홍(대통령 가족 대표자격)과 합수부 徐모중령이 입회한 가운데 이보자기를 내손으로 청와대 보일러실에 던져 모두 불태우고 말았다.

이로써 정치적으로 민감한 대통령의 통치기밀 자료는 영원한 비밀에 묻힌 것이다.

29일 오후 6시 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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