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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04-24 11:50

해외에서 쓰는 고향 역사(5)
이술원은 황해도 연안이 본관인데 자는 선숙(善叔), 호가 화촌(和村)으로 성종대 좌리공신인 이숭원의 후손이다.그 중간에 몰락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대대로 거창에 살았다. 술원은 젊은시절부터  괄괄한 성격의 열혈파 기질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됨이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대범하고 통이큰 대장부의 기질이 있었고, 지혜와 생각이 참으로 깊으며 문과 무를 겸비한 재주가 비범했다. 그가 사는 수백리 안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모두 그의 명성을 흠모하고 있었다.

영조 4년 역적 이웅좌(이웅보), 정희량이 기호지방과 영남을 연결하는 군사를 일으켜 반란이 일어났다. 이들은 각자 수 천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희량이 안음을 공격하여 수령을 쫓아내고 고현 창고의 곡식을 강탈하여 그 부하 사졸들을 크게 먹였다. 그후 장차 거창으로 향하는데 거창 수령 신정모는 겁을 먹고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자기를 보좌할  무예와  지략을 갖춘 인재를 수소문 했다. 주위 사람들은 우리 현엔 사람이 없습니다만 이술원이면 대사를  한번 맡겨볼만하다 하였다.그래서 인망이 두터운 사람인 술원을 좌수로 임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술원이 "나는  선대에 국록을 먹은 신하의 집안이다. 지금 역적들이 들고 일어나 영남이 난리가 났는데 내가 어찌 말단 향임의 직책을 맡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고 온 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하고 곧 현청으로 들어가 신정모를 만나니 정모가 "희량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어찌 하면 좋겠소?" 하고 말하자 "희량은 문간공 동계 정온의 증손입니다.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어찌 감히 충신 문간공의 손자가 되어 반역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술원이 대답하며 다시 한번 사실여부를 살펴볼 것을 요구했다. 이윽고 이들을 정탐하는 말탄 스파이를 보내니 그가 돌아와 희량이 정말 반란을 일으킨 것이 맞다고 보고하였다.

이웅좌가 충청도에서 키가 큰 흰 노새를 타고 왔는데 자칭 대원수라했고, 희량은 부원수가 되어 반란군의 위세가 엄청나게 드세다는 것이다. 술원이 크게 놀라 정모에게 건의했다.
"일이 급합니다. 공은 빨리 군사를 모으고 적을 막고, 우리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
정 모는 이 말이 옳다고 여기고 명령을 내리자마자 적도들이 이미 거창 경계를 넘어왔다는  불길한 소식이 들어왔다. 거창의 이속이나 백성들은 모두 하나같이 희량이 의병을 일으킨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두렵고 겁이나 모두 서로 서로 이끌어  적도들에게 달려갔고, 나중에 가면 불이익을 도리어 받을까 두려워 하는 형편이었다.

술원은 동대청 대문에 우뚝 서서 " 희량은 역적이다! 그를 따르는 놈은 모두 목을 벤다!"하고 외쳐도 이속과 백성들은 하나같이 듣는 둥 마는 둥하여 목소리 큰 놈이 외치면 약한놈이 뒤따라가니, 거창읍이 유령의 도시로 변했다. 오직 향리인 신극종(愼克終) 한 사람만이 이술원을 따르고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경과하자, 희량이 거창수령 신정모에게 격문을 보내 '내일 거창에 내려가니 그대의 군사를 정비하여 나를 대기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도륙해 버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모는 벌벌떨고 꽁지를 내리고 감히 문밖에 나오려 하지도 않았다. 술원은 정모가 절대 일을 같이 도모할 위인은 못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당시 거창의 향리 좌수였던  이술원이 거창을 점령한 정희량에 단독으로 맞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고문을 받다  처참하게 난도질되어 죽었다는 대결의 현장 침류정 1930년대 수해로 완파되었으나 최근에 복원되었다함>


분개함을 이기지 못한 이술원이 자기 스스로 수령을 대리하여 군사를 독려했지만 . 군사들 중 한 놈도 따라 나서지 않는 고립무원의 일인 군대가 되었다. 그 다음날 새벽이 밝아 올 무렵 정모는 지 어미와 처자를 거느리고 산골짜기에 숨어들었다. 날이 밝아온 새벽늦게야 이 사실을 발견한 술원은 이십리를 뒤쫓아가 정모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나 이술원은  임금이 근심을 하면 신하의 치욕이되고,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들었습니다. 공은 대장부 남자인데 죽는 것이 그렇게 아까우십니까? 국은에 보답할 생각은 아니하고 고을 읍성을 버리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따라 도망하여 구차하게 살아서 무엇하겠다는 것입니까" 라고 나무라니, 정모가 울면서 말하길, "내가 여기에 숨어들은 것은 연로한 어머니 때문이요, 적을 막는 일은 그대에게 이제 모두 일임하오 "라고 하자. 술원이 "공은 백리의 땅을 맡아 다스리는 태수의 위엄이 있어야하는데 겁을 먹고 적을 막아낼 단 1명의 군졸도 동원하지 못하는 처지에 반적을 막는 일을 그대에게 모두 일임한다 하시니, 일개 좌수의 홀몸으로 어찌 적을 막아내란 말입니까? 나 이술원은 오직 죽을 따름입니다." 라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적도 오십여명이 창칼을 휘두르며 쳐들어와 "좌수는 어디 있는가"라고 크게 외쳤다.

술원이 몸을 앞으로 내어 튀어나와 "좌수는 찾아서 무엇할려고? 내가 좌수다 이놈들아! 너희들은 역적을 따르는 놈들 아니냐.니들은 목숨이 도데체 몇개나 되는 줄도 모르면서 도리어 나를 찾다니! 이놈들!"라고 외치자 적들이 달려들어 술원은 갑자기 적을 마주치게 되었다. 갑자기 나선길이라 무기도 휴대하지 않은 그는 맨손으로 적을 후려쳤다. 이윽고 힘이 다빠져 지친 그는  꽁꽁 포박당한채 희량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희량은 거창 관아의 동대청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좌우에는 무수한 창검과 울긋 불긋한 깃발이 빽빽히 세워 그 위세의 웅엄함이 그지 없었다.

술원이 끌려 들어오자, 희량이 고래 고래 고함치며 "내가 격문을 보낸 날 네 어찌 군사를 정돈하여 나를 대기하지 않고 도리어 도망을 쳤다지!" 말하자 술원이 눈을 크게 부라려 떠고 꾸짖어 말하길 "군사를 내는 것은 명분이 있어야 하거늘, 네가 동원한 이 군사는 무슨 명분이더란 말이냐! 네놈은 문간공의 손자가 되지 않느냐? 문간공이 할복 자살을 기도하는 뜨거운 충렬이 해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지 않더란 말이냐! 너는 대대로 국록을 먹고 있는 집안, 나라가 네게 무얼 잘못했기에  너는 현명한 조상을 배신하고 나라에 반역하는 역적이 될 수 있더란 말이냐! 나는 갈기 갈기 너를 찢어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되거늘, 뭐가 어쩌고 어째! 역적을 위해 출병하란 말이 어찌 가당하더란 말이냐! 네 이놈!" 이라고 대꾸했다.
이보다 앞서 희량은 술원이 문무를 겸전한 장수의 재목이 있음을 간파하고 그를 협박하여 자기 사람으로 쓰려고 했던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터에 욕지거리를 듣게 되자 크게 노하여 그 앞에 있는 책상을 칼로 후려치며 "내 칼이 보이지 않느냐. 이놈이! 네가 감히 나에게 불복한단 말이냐"라고 하자 술원이 "흥! 구천을 떠돌게 될 역적의 몸인 주제에 허세를 부리다니! 빌어먹을 놈! 내가 니 칼을 두려워 할 줄 아느냐? 내가 두려워하는 건 역적의 소굴을 내손으로 소탕하여 주상 전하의 근심을 덜어드리는 일 그 뿐이다. 칼 따윈 하나도 두렵지 않다. 빨리 나를 죽여라!" 라고 말했다.

희량의 같은 패거리인 나숭곤도 술원의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그 포승을 풀고 아첨하듯 "공의 재주와 지략으로  오늘 우리를 따른다면 내일은 부귀공명이 그대의 것이오. 어찌 지방 관아의 미관말직인 아전 직책은 아랑곳없이 이렇게 태연자약할 수 있더란 말이오. 공이 죽고 사는 건 내 칼에 달려 있으니 공께서는 잘 생각해 보시오"라고 말하자.술원이 웃으며 "무어라고! 내 나이 이제 오십이다. 부귀공명에 눈이 멀어 나라를 배반하고 네놈들을 따라 지저분하게 살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라고 하니 숭곤이 "네가 우리말을 듣지 않으면 칼이나 물이 펄펄끓는 가마솥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라고 말하니 술원이 노하여 꾸짖어 가로대 "내 머리는 잘라도 내 뜻은 자를 수 없다. 내 몸을 삶을 수는 있어도 나의 절개는 삶을 수 없다"라고 하고 북쪽을 향해 눈물을 함박눈내리듯 흘리며 "신이 이 세상에 나와 충성을 다하지 못하옵니다. 원하노니 죽어서 악귀나 되어 이 역적들을 죽여 나라에 보답할까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숭곤은 그가 끝내 굴복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아 희량에게 말하길 "이술원이 이렇게 강하게 나오니 마땅히 참수하여 군중에  효시하여 우리를 따르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본보기로 삼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라 하고 칼을 뽑아 이술원의 가슴을 찌르니 서너치 이상 칼날이 들어갔다. 술원이 다시 크게 꾸짖어 가로대 " 이 염소새끼 개새끼 같은 놈들아! 네놈들이 나를 죽일 수 있을진 몰라도 나의 충의지심(忠義之心)만은 죽일 수 없을 것이다."라 하니 숭곤이 그의 안구와 코를 칼로 도려내고 머리를 쳐 죽였다.

거의 죽어가면서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치않고 꾸짖음은 더 강해만 갔다. 머리털이 빳빳하게 고추서고 눈을 크게 뜬채 말이다. 시체가 땅에 누워지지 않았다. 이 때 갑자기 한 줄기 마른번개가 침류정에서 나왔는데 그 빛이 붉어 술원의 시체를 감싸고 돌았는데,(원문:時忽有一道飛電起沈流亭 其光赤繞述原屍;웅양의 포충사 현관문루는 자전루<紫電樓>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자색번개루의 뜻이니 자고로 자색은 신선의 색갈이라 그를 신격화 시킨 의미가 다분하다.) 시간이 지나도 이 빛이 흩어지지 않는지라 고을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이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적도의 무리였으나 혼이 나갈 지경으로 무서웠다. 사람들은 이것이 이 좌수가 진정한 천고의 열사임을 증명하는 증표로 여겼다.당시 안음좌수 신수헌, 함양좌수 최존세, 협천좌수 정상림, 삼가좌수 권만항 등이 모두 반란군을 따랐다. 절도사가 이들 현의 현기 깃대를 모두 잘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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