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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충신 이술원과 만고 역적 정희량의 한판 승부 드라마

정봉석 phnx604@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4-17 14:10

해외에서 쓰는 고향 역사(4)
유네스코가 세계지정 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조선왕조실록은 정말 대단한 국가기록물로서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500년에 걸친 역사기록이자 자랑스런 우리 문화 유산이다.

이것은 당대에 그날 그날 작성된 것이 아니라 선대왕이 붕어하면 다음에 등극한 임금의 재위시절이나 그 이후에 승정원, 춘추관에 보관한 엄청난 분량의 모든 사초를 사관들이 추리고 추려서 정리한 객관적 공식 기록물이다 보니 우리가 사극 드라마에 보는 것 같은 현장감은 떨어진다.

주로 당대의 정치 현안에 대한 당사자들의 장계(狀啓), 차자(箚子),상소(上疎)의 내용, 이에 대한 신료들의 의견과 임금의 최종적 결정인 비답을 주로  담다 보니 정희량의 쿠데타가 거창에서 의외의 복병을 만난 이술원과의 대결은 미주알 고주알 다 그려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당시 거창이라는 일개 현의  좌수인 이술원은 요즘으로 치면 군청의 말단 고참 관리에 불과한 신분이고, 군대로 치면 보병 중대의 선임하사 쯤 된다.

정식 품계가 없다보니  지방의 몰락양반이라도 선뜻 나서길  꺼리는 말단 고참 아전에 불과하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그런 이술원이 정희량에게 반항하다 장렬하게 죽은 이후 그는 하루아침에 대사헌에 증직되고 정조때 다시 '충신증자헌대부 이조판서겸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시충강공연안이술원지려'(忠臣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管諡忠剛公延安李述原之閭)라는 한참 읽어내려가야 하는 장문의 임금 친필 홍살문이 세워졌다.

요즘으로 치면 행자부장관겸, 검찰총장겸,수 도군단장에 상당하는 벼슬이 영조때 이미 추서된 대사헌에 다시 덕지 덕지 더붙여 졌으니 정말 대박이라는 표현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술원은 단 하루아침에 만고 충절의 면류관을 이중 삼중으로 독차지 하고 만다.


<▲ 거창 웅양에 있는 이술원의 충의를 기린 포충사, 영조는 즉위초기 전국적 사대부들이 일으킨 무신란의 위기에서 정희량에 죽음으로 항거한 이술원을 국가적 영웅으로 대접하고 대사헌의 벼슬을 추증하고 정조때는 더 많은 벼슬을 추증하고 포충사를 성역화하는 작업을 마쳤다. >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이우방(李遇芳)은 떠꺼머리 총각신분으로  종군하여 아버지의 원수를 사사로이 불법으로 갚았는데도 처벌받지 않고 일약 종6품 현감의 벼슬이 하사되고 나중엔  정조임금이  만고충절 효자문까지 나라에서 세워주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으니 하는 말이다. 일개 거창의 촌무지렁이에서 부자(父子)간이 하루아침에 정승 판서 신분의 상류층 궤도로 진입했다면 당시 조선양반 사대부 사회의 최대 이변으로 봐도 틀림이 없다.

원래엔 거창에 세워진 이술원의 포충사가 영조 28년(1752)에 거창 웅양으로 옮겨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에 들어갔고,이것도 부족해 정조 18년(1793)엔 아들 이우방에게 나라에서 세워주는 효자문이 세워지는가 하면, 무신란의 회갑이되는 1788년엔 정조임금이 친히 제문을 짓고  안의현감을 지낸 박지원으로 하여금  정려음기(旌閭陰記)라는 비문을 짓고 이를 다시 홍살문으로 치장하는 이중 성역화 작업을 마무리함으로서 웅양의 포충사는 거창의 관광명소로 변하고 만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고종시  후손들이 다시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후손인 연재(淵齋) 송병준(宋秉濬: 을사오적 송병준이 아님)에게 부탁하여  신도비의 비문을 짓고 돌을 세웠으니 좀 씁쓸한 마음이 든다. 광풍루엔 노론의 송시열이 기문을 지어 현판을 걸고 거창땅 웅양에 그 후손이 또 비문을 지었으니 이것만 보더라도 서부경남은 노론들이 지방정서를 무시하고  너무 설치고 다녀, 그들의 세도를  해도 해도 너무 부리지 않았나  은근한 분노가 치민다. 생각해 보라! 정희량과 동시에 그 무대에 잠간 등장한  덕분에  이 모든 영광이 거창에서 번쩍 번쩍 빛나고 있을 때 인조때의 만고충절 동계정온 지문이라는 홍살문으로 빛나던 선비의 고장  안음땅이 반대로 쓰라린 역적의 고향으로 결단이 나고 주민들이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는 폐현의 아픔을 우리 선조들이 겪었으니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놓고 볼 때 1728년 정희량 쿠데타의 손에 땀을 지는  클라이막스 장면은 바로 거창현청에서 벌어진 이술원과 정희량의 대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치 서부극 게리 쿠퍼 주연의  "Do not sake me oh my darling "의 멜로디가 배경음악으로 깔린 흑백영화 "High Noon"의  한 장면이라 할만하다. 다만 주인공 두 사람다 죽고 만 영화가 "정희량 대 이술원"인 점만 다르다.

"아사다 마오"가 있다면 "김연아"가 있어야 하는 것 처럼 정희량과 이술원은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운명의 결투를 1728년 3월 23일 서부경남 거창땅에서 치른 것이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 되는 쿠데타 승부의 세계는 냉엄하고 잔인할 수 밖에 없다.

만약 박정희가 쿠데타에 실패했다면 벌써 국가반역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그는 역사책에 한 두 줄 반란군 두목으로 기록될 뿐이다. 만약에 정희량이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처럼 쿠데타에 성공했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만고충신 영의정이 되었을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 아닌가! 그렇게 되었다면, 위천 강동마을의 정온고택도 온갖 홍살문이 다시 더 세워져 성역화 되는   대한민국의 관광명소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고 안의는 거창을 잡아먹고 안의부(安義府)로 승격하는 영광을 얼마든지 안을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내다 볼 수 있는 역사의 반전이 아니랴! 이런 영웅이 죽고 나면 인물평전인 신도비, 정려비, 기념비같은 멋진 문장을 돌에 새기는 것이 이조사회의 전통이다. 좀 부풀려 기록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여기에 덧붙여 대중적 차원에서  미화하는 전기류도 나오게 되는것이 그 다음의 수순이다.   말하자면 옛날 시장바닥에 파는 육전 소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없이 다닥다닥 언문으로 인쇄한 "류충렬뎐"류 같은 것인데, "춘향전", "허생전", "장화홍련전"같은 것은 가공의 픽션(fiction)이지만 , 실제 인물을 그린 전기는 거의 90% 역사적 사실에 기초로 한점이 다르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술원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보니 아직 한글로 번역이 안된 동시대를 살다간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의 문집 잡록에서 초고로 남아있던 한문 이술원전(李述原傳)이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는 틀림없이 거창 현장을 방문하여 당시 현장을 목격한 촌로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여러 자료를 수집하여 기술했을 것이니 정확한 이술원대 반란군 정희량의 대결장면을 그린 것으로 봐도 틀림이 없을 것이니, 그 박진감에 나 자신이 전율을 느끼며 읽어내려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 드라마같은 장면을 그린  한문원전 이술원전기를  유한준을 통해 들어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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