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피는 물이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비닐봉지를
건네받아 구피들을 조심스레 어항 속으로 쏟아부었다. 구피의 형형색색을 따라 빛을 내던
비닐봉지가 이내 쪼그라들었다. 손에 묻은 물을 추리닝 바지에 대충 닦고 있는데 아버지가
먹이통을 들고 와 나를 옆으로 밀쳤다. 아버지가 먹이를 뿌리자 구피들은 작은 입으로
먹이를 받아먹었다. 구피가 입을 벌렸다 오므릴 때마다 물방울이 피어올랐다. 이 순간,
아버지는 어항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댄다.
아버지는 구피를 기른다. 아버지에게 구피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순간은 물방울을 만들어낼
때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구피에게 하루에 여러 번 먹이를 주었고 녀석들은 가득 먹고 가득
죽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둥둥 떠오른 몇 마리를 뜰채로 건져낸 후 아버지는 또 먹이를
뿌렸다. 그런데 신기한 건 죽음의 속도와 걸맞지 않게 어항이 텅텅 비는 날은 없었다. 죽은
구피의 수만큼 어항은 적절하게 채워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항 속 구피의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는 구피를 때에 맞춰 비닐봉지에 담아 오셨다.
“구피는 번식력이 뛰어나.”
구피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아버지는 덧붙여서 아파트 단지에 구피를 기르는 집이 많다고
했다. 뛰어난 번식력으로 어항이 가득 찬 집에서 나눔을 한다는 게시글을 올리면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가 무료로 구피를 받아온다는 것이다. 구피를 향한 사랑과 상부상조의
미덕으로 뭉친 이들로 말하자면,<구피 클럽>
아버지는 가입 후 나눔이 가능할 만큼 구피를 잘 기르지 못했다. 계속해서 배불려 죽일
뿐이었다. 나는 우리 집 어항 속 구피가 가엾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구피를 죽이는 건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어항 청소는 나의 몫이었다. 어항의 물때를 제거하려면 구피들을 작은
플라스틱 통에 잠시 옮기고 물을 비워야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실수가 잦았다. 어항의 구피들을 플라스틱 통으로 옮기는 작업은 물이 튀기 때문에
싱크대에서 했는데, 번번이 한 마리 정도는 하수구로 빠졌다. 구피는 미끌미끌해서 손에
잡혔다 싶으면 놓치기 일쑤였고 하수구로 금세 사라졌다. 그런 순간마다 얼른 고개를 돌려
아버지가 이 장면을 보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사라진 몇 마리까지 알아챌 정도로
섬세하진 않았다. 나는 싱크대에서 작업을 마치면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뜨거운 물을 끓여
싱크대에 부었다. 그리고 하수구 가까이에 코를 대고 비린내가 사라졌는지 늘 꼼꼼하게
살폈다. 어머니는 내가 싱크대에서 어항 청소하는 걸 볼 때마다 그릇 닦는 데서 뭐하냐는
구박과 함께 등을 매섭게 때렸다. 그때마다 몸이 출렁이면서 구피를 담은 통이 흔들렸고 또
다시 몇 마리가 하수구로 미끄러졌다. 그럼에도 싱크대에서 어항 청소하는 간편함을 포기할
수 없었다.
변명을 하자면 투박한 청소 솜씨로 잃는 구피의 수보다 배가 불러 죽는 구피의 수가 상당히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먹이는 조금씩, 하루에 많아야 세 번 정도만 주셔도 돼요. 그래야 구피가 죽지 않아요.”라고
나는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다. 벌써 몇 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하염없이 지내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모님의 잔소리도 잦아들고 나를 마치 그림자 대하듯 하신다.
그럼에도 아버지와의 연대는 아버지가 ‘구피 클럽’에서 얻어오는 비닐봉지를 건네받아
어항에 붓거나 어항 청소를 하는 것으로 묘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여러 날 중 하루였을
것이다. 늘 그렇듯 나는 아버지가 가져온 구피들을 어항으로 흘려보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닥에 깔아둔 요 위에 드러누워 그날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 몇
군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잠이 든 것 같다.
눈을 떠보니 나는 물에 있었다. 물속에 완전히 들어와 있었다. 주변을 살피며 온 몸을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을 때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곧 내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고 그 냄새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하나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동그란 모양이 둥실둥실 물 아래로 내려왔다. 고개를 위로
쳐들고 바라보니 물 너머에 아버지가 있었다. 물방울이 여기저기서 연달아 피어나는 게
보였다. 아버지가 물방울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는다. 그 모습은 물에 굴절되어
거대해보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어쩌다 구피가 되어서 곧 배가 터져 죽게 생겼다.
어찌됐든 나는 용기를 내서 구피가 자꾸 죽어나가는 이유에 대해 아버지에게 말했어야만
했다.
어머니는 늦은 밤이 되어도 내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방문을 두드렸다.
“저녁 먹어! 뭐하는데 여태 밥도 안 먹고 그래!”
당연하게도 나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나올 기미가 안 보이자 어머니는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요 위에 누워 있는 나를 확인하고 어머니는 식탁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무슨 저녁을 먹니. 누워 있느라 배고플 새도 없겠다.”
열려 있는 방문 너머를 보니, 내 몸은 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모님은 구피가 된 나를
알아볼 리 없었고 누워있는 내 몸을 깨우지도 않았다. 집안에는 부모님이 저녁 식사하는
소리만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수조 속에서 구피들은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밥을 먹는 중에도 어항을
살폈다. 한 숟갈을 입에 넣고 나면 어머니 뒤에 있는 어항을 한 번 바라봤다. 어머니는 다
먹은 밥그릇을 싱크대에 놓았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일어나자 밥을 다 먹지도 않은 채
뒤따라 일어나 구피가 있는 어항 앞으로 왔다. 구피들의 움직임을 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밝았지만 오늘도 역시나 배불러 죽은 구피 몇 마리가 떠올라 있었다. 아버지는 뜰채로 죽은
구피들을 건져내고 어항에 남은 구피의 수를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무어라고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특이한 말이었지만 수를 세는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수 세기를 한다는 건
한 마리 한 마리 짚어내는 손가락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는 거니까.
“그 말은 대체 어디에서 배운 거야? 이상하니까 하지 좀 마.”
어머니는 아버지를 향해 쏘아댔다.
“구피 클럽에선 구피 수를 이렇게 세어.”
“거기 나가지 말라고 했지? 집구석에서 할 일 없이 구피나 키우는 사람들이랑 뭐 하러
시간을 보내? 쟤도 집에서만 있는 거 꼴 보기 싫은데 당신까지 그럴 거야? 정신 좀 차려!”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전혀 동조하지 않는 듯 어항 옆에 놓인 먹이통을 집어 들었다.
“당신은 화가 너무 많아. 그리고 조급하지. 여기 와서 구피가 헤엄치는 걸 봐봐. 잔잔하게
움직이는 모양을 좀 봐봐. 마음을 조금 차분하게 가져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아버지 곁으로 어머니가 빠르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에 들린 구피 먹이통을 집어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통에서 작은 알갱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 우리 사는 모양을 좀 봐봐. 그런 한가한 소리가 나오나. 나 식당 나가봐야 돼. 당신도
정신 차리고 나가서 돈 벌 생각을 해.”
어머니는 진절머리가 나는지 고개를 휘저으며 외투를 챙겨 입었다. 현관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아버지는 닫힌 현관문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방바닥에 떨어진 알갱이들을 손으로
쓸어 모았다. 아버지는 손바닥에 모은 먹이 알갱이를 어항 위로 한번 던지고, 한번은 자신의
입 속으로 넣어 깨물었다. 어항 속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은 원래의 색을 잃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이 굴절되었다. 온전한 사고가 기능할 수 없는 기이한 공간이었다.
의사는 내가 구피가 된 다음날 저녁이 되서야 찾아왔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삶에 내가 생각
이상으로 큰 장애물이 된 것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의사는 누워 있는 내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 곁에 앉은 세 사람이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나는 어항
속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합니다. 몸의 기능은 정상인데 수면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니까요. 아, 잠시만요.”
의사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어머니가 방바닥을
손으로 툭툭 치며 의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런 사례가 요즘 심심치 않게 생겨나서요. 학회에서도 큰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아드님의 상태를 적느라고…. 진단을 하자면 일단은 ‘수면증’이라고
해야겠지요. 뭔가 더 그럴싸한 병명을 붙여야 하는데 이게 이제 막 생겨나는 병이라서요.
저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하하.”
의사의 멋쩍은 웃음에 어머니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의사는 이내 웃음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몸을 옆으로 눕혀 주시고요, 저녁마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시면 더
좋습니다. 저는 매일 오전에 방문해서 상태를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의사의 말을 요약하자면 요즘 들어 내 나이또래의 젊은이들에게서 기묘한 수면증이
생겨나는 중이라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데다가 아직 병명도 생기지 않은 신생 병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고가 왕왕 들어오기에 집으로 찾아와 수면증 환자들을 살피는 의사를
정부에서 고용하고 있다고 했다.
내 몸은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의사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세차게 이동하는 것을
멈출 수도 없었다. 구피들이 수조 속을 헤집으며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나도 힘차게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구피의 속성은 인간의
속성들을 무너뜨리고 나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돌아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탓하며
한바탕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에도 내 몸은 깨어날 기미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저녁이 되면 식당 일을 하러 나갔고, 집에 홀로 남은 아버지는 늘 그렇듯 어항
앞으로 다가온다. 전날에도 뜰채에 실려나간 녀석들이 몇이었던가. 먹이통을 집어 드는
아버지를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어항 바닥으로 내려가 돌 사이에 몸을 우겨넣었다.
배가 터져 죽지 않기 위해 본능의 움직임을 억누를 생존의 방법을 고안하다 찾아낸
장소였다. 어항에 놓인 두 개의 돌 틈이었는데 몸을 한번 우겨넣고 나면 나오려고 애를 쓰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안전지대였다. 돌 틈에서 빠져나올 땐 살점이 조금 뜯겨나가는 아픔이
있지만 무자비한 먹이 폭탄을 향해 돌진하는 본능을 억누르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먹이가 어항 속으로 떨어졌다. 그 광경을 돌 사이에 끼어 올려봤다. 눈처럼 천천히
내려앉는 먹이. 그 눈을 맞으러 구피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그들은 먹이를 먹으며 물방울을
만들어냈다. 아버지는 그 기쁨을 놓칠 새라 먹이를 연달아 뿌렸다. 구피들은 먹이가 어항
바닥에 내려앉기도 전에 모조리 먹어치웠다. 나는 먹이 냄새에 안달이 나서 돌 틈에서 온
몸을 비틀며 먹이를 향해 입을 뻐끔거렸다. 이런 구피의 본능에 넌더리가 나서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작된 꿈.
‘어머니, 이력서를 쓰던 것이 그만 시가 되어 죄송합니다.’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참회의 문장이 튀어나오곤 했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는
사랑으로부터 시작됐다. 대학교 시절, 좋아하던 여자 아이가 시 쓰는 모임에 나간다고 하니
나도 따라 무작정 입회신청서를 냈다. 매 모임마다 그녀가 보이는 방향에 앉았다. 우리는
무명으로 시를 내고 돌아가며 시를 낭독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내 시를 읽었다.
살아있는 것을 뒤집어 반사하는 물결
그 움직임을 따라 흘러가는 몸들이 있다
첨벙 소리를 들어봐
여기저기 별똥별처럼
쏟아 내리는 까만 춤을 봐
물 밖에선 떼 지어 나는 새들이
불쌍한 소리를 낸다
무리 끝에 뒤처진 한 마리도
따뜻한 나라의 방향을 안다
늦어져도 갈 수 있는
저 새가 내려앉을
나라를 떠올리며
오래오래
물이 되어 흐른다
그녀의 목소리로 흘러나온 내 시는 형편없다는 자책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이날 이후로 그녀가 더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엉뚱하게도 시에 빠지게 되었다. 시는 평범한
내 인생에 누군가 찾아와서 선물한 잘 빚은 도자기 같았다. 하얀 방에 놓아두면 혼자서
소리를 낼 것만 같은 아름답고 신비한 도자기.
꾸준히 모임에 나오는 나에게 선배들이 투고를 권유했지만 번번이 떨어지면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등단이 목적이 아니라 꾸준히 쓰는 걸 목표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쉽지
않았다. 주변에서 하나, 둘 등단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내게 없는 실력을 탓했다.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열등감까지 있으니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꿈에서 로또 번호를
보기 원한다지만 나는 꿈에서 글자들을 찾아 헤맸다. 이따금 꿈속에서 글자들이 내려왔는데
그것들을 조합하면 이 세상의 언어로 표현할 길 없는 아름다운 문장이 만들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떨어지는 글자들을 가득 모아도 조합되는 문장은 없었다. 나는 물살을
견디며 차분히 노력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시모임으로 끌어들였던 그녀는 어학연수를 다녀오더니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그 사이 군대를 다녀왔다. 복학 후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과방에서 시를
썼다. 그러면서 나의 쓸모없음에 몸서리치는 시간들이 속절없이 지나고 졸업을 맞았다.
졸업식 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을 하다 손을 다쳐 병원에 있었다. 아버지가 홀로 뒤늦게
오셨는데 온통 땀투성이였다. 구피 클럽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어 들렀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땀을 흘리세요?”
“그래, 모르겠다. 왜 이렇게 땀이 나고 목이 타는지.”
아버지는 마른 침을 계속 삼켰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아버지는 애타게 물을 찾았다.
우리는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밥을 먹었고, 아버지는 연달아 물을 마셨다.
“아버지, 구피 클럽이 뭐예요?”
“뭐긴. 구피가 좋아서 기르는 사람들이지. 그보다 넌 이제 졸업하면 뭐할 거니?”
“일해야죠. 이력서는 계속 넣고 있어요.”
“요즘 취업이 어렵다는데, 걱정이다. 네가 지치지 않으면 좋겠구나.”
“고마워요. 아버지도 지치지 마요.”
“내가 지칠 일이 뭐가 있겠니. 나에겐 구피가 있으니 괜찮다.”
나는 아버지를 변호할 만한 입지가 되지 못해서 이후로도 어머니에게 구피 클럽을 옹호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환멸을 느끼기라도 한 듯 구피의 세상에 푹 빠져 지냈다.
구피에게 먹이를 주고 죽은 것들을 뜰채로 골라내고 나면 비닐봉지에 새로운 구피들을 담아
어항에 붓는 반복적인 아버지의 취미. 연거푸 물을 마시던 아버지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얼굴이 물고기 머리로 변해 있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식당 문을 열고 뛰쳐나가려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내 식당 안이
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참고 식당 안을 헤엄쳐 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구피가 되어 꾼 꿈은 몸을 부딪친 충격으로부터 깨어났다. 나를 친 건 수면 위로 올라가는
구피였다. 배가 불러 죽은 구피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집안은 조용했다.
아버지도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항 너머로 보이는 내 몸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는
구피에 몰두한 아버지만큼 시에 몰두하지 않았기에 시인이 되지 못했고, 구피를 향한
아버지의 염원은 무척이나 커서 내가 구피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물속에서 배가 불러 죽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평소엔
떠오르지 않던 싯구가 물방울이 생기듯 쉽게 생겨났다. 그러나 문장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구피들과 함께 어항 속을 헤엄치고 나면 생각이라는 건 부질없었다.
아버지는 보통 어머니가 식당 일을 나간 저녁 시간이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구피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다 어머니가 돌아오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아버지도 집에 없었다. 돌 사이에 꽉 끼어 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했다. 그때 복도 끝에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말도 아닌, 내가 알고
있는 외국어 중에 무엇도 아닌, 언어로 왁자지껄한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투명한 비닐봉지를 든 사람 여럿과 함께 들어섰다.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구피 클럽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 간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멤버들이 들고 있는 투명 비닐봉투에는 구피가 들려 있었다. 다만
특이한 색깔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아버지는 회원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어항
가까이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손가락을 들어 어항 속 구피들을 하나씩 짚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 둘, 셋, 수를 세는 소리 같았다. 알 수 없는 언어를 서로 따라 말했다. 아버지는
뒤를 돌아 멤버들을 바라보며 소리 내 웃었다.
멤버들은 한 사람씩 각자 가져온 구피들을 어항 속으로 집어넣었다. 한 마리씩 풍덩풍덩,
빠질 때마다 나는 기존에 함께 있던 구피들과 무리지어 움직였다. 방금 전 구피 클럽이 했던
수 세기를 속으로 말하며 들어온 구피들을 살폈다. 마지막 비닐봉지에서 구피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물과 컵 여러 개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건넸다. 집은 구피 클럽 멤버들이 물 마시는 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돌 사이에 몸을 끼워 넣었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되어 뜯겨나간 살갗이 틈에 끼이자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멤버들과 아버지는 어항을 보며 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라
저들의 갈망을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은 물을 마시고 후련해진 얼굴로 어항 주위에 몸을
수그렸다. 한 사람에게 다들 무언가 말을 했고 그는 돌 틈의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항에 비친 내 모습 위로 그가 동그란 모양을 그렸다. 모두는 아버지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만의 언어로 시작된 이야기는 갑작스레 끝을 맺었고
우르르 밖으로 사라졌다.
그날이었다. 어머니는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와 누워 있는 나를 한번 들여다보고 곧장 잠에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온 시간보다 더 늦은 밤 시간이 되서야 돌아왔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와서 먹이를 줄 걸 대비해 돌 틈에서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새로 들어온 구피 몇 마리는
어항 유리에 찰싹 붙어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예상대로 먹이통을 들고 와
어항에 부었다. 구피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먹이를 향해 입을 벌렸다. 아버지는 물방울을
넋을 놓고 바라보며 웃었다.
아버지는 나의 졸업식 날 그랬던 것처럼 땀투성이의 얼굴을 하고 어항 가까이에서 침을
삼켰다. 이윽고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아버지의 머리가 어항 속으로 쑥 들어온
것이다. 어항의 물이 방바닥으로 흘러넘쳤다. 나는 돌 사이에 끼어 살이 뜯기는 아픔에
시달리면서도 아버지의 커다란 머리를 보며 안전지대를 찾아낸 스스로의 지혜에 안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볼이 부풀만큼 숨을 참다가 머리를 밖으로 빼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어항으로 들어오는 아버지의 머리. 아버지는 물속 구석구석 살피는 듯 어항
속에서 눈을 굴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정확하게 나를 노려봤다.
어항에서 빠져나온 아버지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머리카락이 너저분하게 얼굴에 붙어
있었다. 아버지는 물을 뚝뚝 흘리며 웃었다. 돌 틈에 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여기 있었구나.”
아버지는 방에 누워 있는 내게로 걸어갔다. 누워있는 내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뺨을
때렸다. 나는 요동하지 않고 잠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가 젖은 머리를 돌려 어항을 쳐다봤다.
구피가 된 나와 어항 밖의 아버지가 망연한 표정으로 그저 서로를 바라봤다.
두 계절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어항에 있다. 청소를 정성들여 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항은 더러워지고 있었다. 그 사이 내 몸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던 남자가 구피 클럽
멤버들과 찾아와 아빠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남자는 ‘약속대로 그때 내가 표시했던
구피를 가지러 온 건데 이런 경우가 어딨냐’며 소리쳤다. 구피 클럽의 분양 방식은 가끔
이렇게 집의 어항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구피를 가져가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나를 대신해 어항에 있던 구피 몇 마리를 뜰채로 떠서 비닐봉지에 담아 쥐어주며
돌려보냈다.
어머니는 누워 있는 내 몸이 짓무를까 싶어 매일 뒤집어줬다. 어머니의 보살핌에는
미안했지만 이제 나에겐 구피에 가까운 본성만 남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구피가 된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먹이를 받아먹고,
세차게 수조를 헤집고 다니거나 돌 틈으로 숨다보면 구피의 하루는 금세 갔다. 그러다 보니
점차 구피에게 구피가 된 이유는 유별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항에서 헤엄치다 누워
있는 나를 보면 인간의 육체가 탐이 나서 괴로웠다. 특히 눈처럼 내리는 먹이를 피해 돌 틈에
끼어서 나를 보는 고역이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거실에서 어머니와 소모적인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 무렵엔 구피 클럽의
언어로 수를 세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든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이런저런 말들을 어항
밖에서 건네 왔다. 그렇지만 먹이는 여전히 아낌없이 주어서 나를 아프게 했다. 도저히 배가
불러서 죽겠구나 싶은 밤이었다. 아버지가 어항 속 불빛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나에게
말했다.
“나도 거기에 들어가고 싶구나.”
의사는 아침마다 찾아왔다.
“이런 증상의 환자들 중에 아직 깨어난 사람들이 없어서 말입니다. 이제는 그 환자들을
모아서 한 병원에 입원 시키고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아버님?”
아버지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뒤로 돌려 어항을 바라봤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결국 어머니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어항을 볼 정신이 있어? 단단히 미쳤구나. 이 상황에서도 물고기를 봐야겠어?”
“아니. 입원을 해야 한다니까. 얘 생각은 어떤가 하고 본 거야.”
“당신 나랑 장난하는 거야?”
아버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어머니를 바라봤다.
“지금 병원에 입원시킨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어서 그렇지.”
아버지는 들리지 않을 것처럼 조용한 말로 어물거렸다.
“뭐라고? 당신이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 아니야. 정말 왜 이래!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애가 의식도 없이 계속 누워만 있는데 아빠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걱정을 안
하냐고!”
아버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방에서 어항까지의 네 발자국을 쿵쿵대며 걸어갔다.
어머니와 의사가 어항 곁에 우뚝 선 아버지를 바라봤다. 나는 미처 돌 틈에 숨어들 생각도
못하고 이 상황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아버지는 어항에 얼굴을 대고 나를 찾았다.
그리고 내가 있는 어항 벽면에 손가락을 대고 동그란 모양을 수없이 그렸다. 아버지의
손가락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낄 때 어항이 앞으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진
어항은 산산조각 났고,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구피들은 바닥에 배를 대고 꼬리를 파닥였다.
“당신 미쳤어!”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어항에서 쏟아진 물은
방까지 흘러 들어갔고,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적셨다. 의사는 물을 피해 일어나 나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구피의 몸을 한 나는 바닥에 엎드려 처절하게 꼬리를 파닥였다. 물속에서 편히 쉬어지던
숨이 밖으로 나오자 꽉 막혀 답답했다. 숨을 쉴 수 없자 눈앞이 뿌옇게 되고 눈, 코, 입이 점
하나로 모이는 것 같은 압력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서로를 움켜쥐고 싸우는 동안 의사는
물이 없는 곳만 밟아가며 두 사람을 말렸다. 이불이 점차 물에 젖어가면서 내 몸이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이불은 곧 물에 완전히 젖었다. 세 사람이 이상하게 뒤엉켜 있는
동안 누워 있던 내 육체는 물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어항에서 쏟아진 구피들의
파닥거리는 모양새도 잦아들었다. 방을 바라보니 더 이상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찰랑이는 물이 문지방을 살짝살짝 넘고 있었다. 구피가 되어 맞이하는 무가치한 죽음 앞에서
그저 꼬리를 파닥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움직임에 불과했다.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되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사고(思考)를 넘어서는
새하얀 방이 펼쳐졌다. 그곳에는 맑은 유백색의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나는 비로소
사람의 몸을 되찾고 항아리를 향해 걸어갔다. 항아리의 좁은 입구에서 낮은 음역대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항아리 입구에 귀를 대고 눈을 감았다. 항아리 입구에 귀를 대고 눈을
감으니 또렷이 들려온 건 살아 있을 때 완성한 적 없던 불안하지만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 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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