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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5-14 09:32

권은경/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학교에 간 막내가 SNS로 짧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화면 속 낯선 목소리는 나를 향해 You are

a really good MOM(당신은 정말 좋은 엄마예요)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말수가

부쩍 줄어든 딸아이는 이제 혼자만의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철학자 같은 눈빛으로 세상을

관조한다. 간섭을 거부하는 아이의 단호한 한마디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증명하듯 툭툭 던져질

때마다, 나는 설명하기 힘든 서먹함을 느낀다. 한때 나의 표정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을

발사하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고등학생이 되었고, 방문을 굳게 닫아걸고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변화는 아이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는 몸은 나의 일상을 경직

시켰고, 굳어버린 근육만큼이나 삶은 유연성을 잃고 비틀거리기 일쑤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호르몬 전쟁’ 중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 온몸으로 호르몬을 받아내며 팽창하는 아이와, 인생의 한

페이지를 정리하며 호르몬의 썰물을 견뎌내는 나. 시도 때도 없이 오르는 열기 때문에 나는 창문을

열어젖혀 캐나다의 찬 공기를 껴안고, 계단 끝 딸아이의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본다. 네 세계가

안으로 밖으로 확장되어 나갈 때, 엄마는 오히려 생의 부피를 줄이며 내면의 빈방을 정리한다.

네가 인생의 화려한 1막을 위해 무대 장치를 올리고 있다면, 나는 소란했던 막을 내리고 고요

속에서 삶을 음미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우리는 각자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전장을 치열하게 지나는 중이다. 함께 나누던 시간과 에너지를

오롯이 자신에게만 쏟아부어도 부족한 시기이기에, 서로를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며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소한 언행에도 날을 세워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상대방을 비난하곤 한다.

 


어른답게 굴었어야 했는데, 호르몬 전쟁 중인 아이를 더 품어 줘야 했는데. 감정 조절이 마음

같지 않을 때면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게 있곤 한다. 나의

예민함이 아이에게 공격으로 비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몸속의

폭풍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네가

너의 전쟁을 훌륭하게 치러내고 마음의 성에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선물’이라는 폴더에서 아이의 이름이 적힌 파일을 연다. 영상 속 작은 너는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엄마를 웃게 해 주려고 그랬노라 말한다. 나의 전쟁이 아무리

고단한 전투라 해도, 너의 순수한 사랑이 가득했던 그 시간이 있기에 나의 마음은

몽글몽글 해지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우리 서로 이 호르몬 전쟁을 잘 견디고 이겨내서, 머지않은 날 더 멋진 모습으로 마주 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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