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살면서 줄일 것이 늘어만 간다.
많이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한 걸까 생각해보면 추려낼 것 투성이다.
책과 LP를 사 모으는 건 때마다의 즐거움이고
행복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렇게 쌓인 책더미를 보면 뿌듯했는데 그것도 지금은
짐스럽게 느껴져서 정리대상이 되고 있다.
전공어로 된 소설책을 이민오면서
왕창 처분했다.
남긴 책들도 한번씩 더 읽게 된 것 이외는
중고서점에 팔고 나눔도 했다.
그렇게 남은 책은 나름 내게 인생 책이고
내 마음의 벗이 되어 작은 공간만을 채운다.
일 없는 화요일 오전,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 놓았던 책을
책장에 꽂으려다가 한권을 빼 들었다.
내 겐 고향집처럼 마지막으로 귀결되는
박완서 작가의 책이다.
그 중 '호미'를 펼쳤다.
질 때 오래도록 갈변하고 누추해지는 모습 때문에
목련을 안 좋아하게 되었다 하셨다.
우리집 조그만 뒷마당에 유일하게
꽃피우는 나무 한 그루가 목련이라 그것에 공감했다.
솜털 보송보송하게 몽우리가 잡혀서
봄의 도래를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하얀 잎을 틔우지만 질 때의 그 모양은
추레하다.
그래도 매년 봄 알리미는 자신이라고 뽐내듯
여지없이 몽우리, 개화 그리고 꽃잎 떨구기가
반복된다.
돌보지 않아도 꿋꿋이 자라는 그 생명력에
지고 말았다는 작가님 말씀에 공감했다.
이제는 엄동설한에 봄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치레의 말도 건다고 쓰셨다.
다시 성장해서 꽃잎을 틔웠단다.
나 역시 그렇다.
식물 하나 변변히 키울 줄 모르는 내 집 마당에 와서
봄 마다 생명을 틔우는 목련에게 딴지는 웬 말인가 싶어 졌다.
지는 모습이 초라하다면
정직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먼저 돌아볼 일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들이
크림색 도톰한 외투를 선물해 주었다.
두벌 중 하나는 딸, 하나는 내 것이었다.
'같은 옷 다른 느낌'
모델 핏과 일반인 핏의 여실한 차이다.
지는 꽃의 누추함을 탓하기 전에
춥고 지리한 겨울을 뚫고 나온 생명력을
칭찬해주자.
소장해두고 몇 번씩 꺼내 읽는 작가님의
글 한편이 반면교사의 교훈이 되어주는
아침이다.
어제 눈이 부시도록 맑던 봄 날은
찰나였나 보다.
예보상으로 열흘가량 봄비가 이어진다.
이 비 그칠 즈음에는,
한껏 무르익어서
앞 다투어 꽃 피울 깊은 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봄은 성큼 내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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