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25-11-24 09:27

예종희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2016년 2월 12일, 나는 에어 캐나다의 서울행 비행기에 있었다. 어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급하게 자리를 하나 구해서 다음날 출발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급한 대로 나에게 벌을 내리고 싶었다. 밤을 헤치고 달려서 도착한 오랜만의 인천 공항은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한 한국어로 물어물어 공항을 빠져나왔다. 연락받고 공항까지 마중 나온 친구들의 도움으로 도착한 장례식장에서 생각과 달리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앞일을 가늠하며 우리는 시나리오를 짜고 계획을 세우지만, 세상은 내 예측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어디서 들었는지 속속 도착한 초등학교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며 함께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세상은 예측에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다음 날 오전 어머니 염을 하는 시간이라 누님들 매형들과 함께 염실로 내려갔다. 유리창 밖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육신을 보는 것이다. 가족 대표로 한 명의 도움을 요청받았다. 누군가 염실 안에서 염을 하는 동안 누워계시는 어머니 머리를 움직이지 않게 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아들과 딸 이라는 구분. 한국 문화의 곳곳에서 도도하게 살아있는 성리학의 그림자는 나를 다시 호출하였다. 그 순간이 그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삶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과 거기서 파생된 혼란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한다. 내가 내린 선택들이 지금 나의 현재이다. 결과가 뻔했던 선택들도 각자 살아온 맥락과 다른 상황을 고려해 비춰보면 그 선택의 무게는 제각각 다르기 마련이다. 인간도 생물학적인 면에서는 동물의 한 종류이니 무리에 짓고 사회를 만들고 함께 살기 위해서 합의된 기준으로 욕망을 통제해 왔다. 그래서 해야 할 일과 안 되는 일들의 경계가 나뉘고 도덕과 제도가 만들어져 이는 세대를 건너 미래세대의 욕망을 통제한다. 그 무리의 경계 안에서 도덕과 윤리의 문화는 정교해지며 문명을 쌓아 올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경계와 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어떤 화려했던 문명도 역사적인 흥망성쇠가 있다. 한 개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체면과 지금까지 쌓아온 평판과 성취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추락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그랬다. 2008년 아들 둘이 초등학생일 때 캐나다 이민을 오게 되었다. 2000년 초부터 2번 영문도 모른 채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다. 그것이 간질 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몰래 이민을 준비하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혼란했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한 친구가 퀴즈를 냈다. 아마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하고 이야기를 빗대어 나를 위로하고 싶었으리라.

  "야, 너희들 만약에 말이야 길을 걷다가 어머니와 아내가 동시에 강물에 빠졌어. 그 상황에서 여건상 딱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둘 중에서 누구를 구할래? 너희들 그거, 아니? 현명한 사람은 아내를 구한다더라. 마음 아픈 선택이지만 왜냐하면 엄마는 과거이고 아내는 미래를 상징하는 거니까. 현명한 사람은 미래를 선택하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하네."

  자신도 한 어머니로서 결심을 품은 이야기이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 들으라고 한 말인 것을. 본인도 한 아들의 엄마이기도 하면서 그런 마음을 품고 살고 있으리라. 하지만 현실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렇게 이거 아니면 저거로 명쾌하게 선택할 수 있다면 사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쉬울까? 그렇게 무 자르듯이 살기 힘든 것이 피부로 접하는 일상이고 현실이다. 그때 나는 이런 대답을 속으로 하였다. 나라면 강물로 뛰어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둘 중 누구 하나를 살려내도 그 미래는 어차피 고통스럽다는 것을 아니까. 그러니 그런 상황. 수영을 못하면 물가에 가까이 가지 말자. 그런 상황에 부닥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선택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과거나 미래는 어느 하나 택일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과거 미래는 현재를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상생한다. 미래는 현재의 활력과 결속되어 밝아 보이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한다. 지금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하여 미래가 밝다면 희망이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다. 미래가 어두워 보이면 지금이 어두운 것이다.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응원이 필요하고 처한 상황을 잘 견뎌야 할 시기인 것이다.

  삶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선택하려는 욕망으로 충만하다. 내가 할 수 없는 잘못된 선택들. 해서는 안 되는 선택들. 그리고 남들이 잘 못 선택한 책임을 수습해야 해야 하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지능보다는 욕망에 가까운 것이 선택이라는 행위이고 그 결과를 나의 기대에 맞추는 건 훨씬 더 복잡하다. 심사숙고한 이성이 감정에 휘둘리기 십상이고 세상은 헛똑똑이들로 넘쳐난다. 미래는 다른 많은 욕망과 그에 따라 파생된 선택들로 맞물려 있다. 그러니 타인들의 선택으로 처한 지금 나의 상황을 잘 깨닫는 게 오히려 더 현명한 처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나만의 인식인 강철 감옥을 벗어나는 계기가 타인의 방문. 만남이다. 타인은 나를 노크하고 졸린 나를 깨워주는 반가운 손님과 같다. 타인의 방문. 대화와 소통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혼란한 시대에 언어능력과 교양이란 시민의식의 성숙함이 기다려진다. 성장의 욕망이란 다른 이름인 평생의 공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마중 2026.06.19 (금)
해질녘철길 너머 논배미로엄마가 밀어 만든국수 꽁다리하나 들고마중을 나간다철길 너머 어디쯤있는 둥 마는 둥살아보지도 못한아기들이 묻힌얕은 봉분들머리가 쭈뼛 서고그 아이들울음이땅을 뚫고나올 것만 같아걸음아 나 살려라숨차도록 달려아버지에게다다른다돌아오는 길아버지 손을잡고흙냄새보다짙은아버지의 땀냄새밤하늘에별이열한 식구밥상 위의 밥처럼하얗게빛났다
김회자
호흡 2026.06.19 (금)
지금도 김영삼 대통령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독특한 억양과 엉뚱한 장면이 있다. 사건의 맥락과 배경은 모르지만 아마도 당 대표였던 시절 단식하는 의원을 방문해서 했던 말. "마 단식하면 마… 확실히 죽는다." 그때 김영삼의 단식장 방문으로 약간 안도하며 웃음까지 지었던 단식하는 국회의원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지던 TV 뉴스 장면이 나에게는 지금도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근데 사람이 학실히 죽는데, 단식하는 방법밖에 없을까? 스스로 광합성을...
예종희
로키는 누구나 일생에 한 번은 다녀오고 싶어 하는 명산이다. 가는 길에 만나는 호수들의 아름다운 빛깔에 빠져든다. 밴프나 재스퍼의 풍광은 달력이나 엽서 속 어딘가에 내가 서 있는 황홀감을 선사한다. ​남동생이 캐나다 내 집을 세 번 방문하고 여름과 겨울 두 차례 로키를 여행했다. 여름, 에메랄드빛 호수와 겨울, 눈 덮여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레이크 루이스까지. 멋진 사진과 동영상을 가득 담아 왔었다. 자연경관과 레트로한 감성에...
고희경
나의 여름 2026.06.18 (목)
오늘 아침문을 열고 나오니아, 여름 냄새!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네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분주히 너를 맞을 준비를 할거야 길어진 잔디를 깎았어새로 핀 노랑 꽃들이 이제야 보이네겨우내 덮어두었던 테이블과 의자를깨끗이 씻어 말리고예쁜 걸 좋아하는 너니까반짝이는 알전구도 달아놓을 게얼음은 넉넉히 준비해 두었어네가 오면 시원한 커피부터 타 주려고상큼한 과일도 냉장고 가득 채우고예쁜 접시도 사러가야겠어깊어 가는 여름 밤,우리...
윤성민
볕이 좋은 유월 야외 스케치를 나간다 긴 이젤 위 캔버스 그늘에 세워두고 연못의 수련을 그린다 합장하는 꽃들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 하나 모네는 자신의 정원에서 왜 그리 수많은 수련을 그렸을까* 암갈색 수면 위 빛의 시간들이 데려온 색들의 향연을 그린 걸까 긴 아픔 뒤에 위로 같은 아름다운 연못 충만한 적요(寂寥)를 풀어놓은 걸까 고요한 수련(睡蓮)이 시끄러운 나를 수련(修練)하는 오후 한낮의 햇살은 구름 나무 수련 금붕어로 한 폭의...
김계옥
오죽 못생겨 '뚱딴지'같다고 했을까. 돼지감자라 불리는 식물 이름도 조금 엉뚱스럽기도 하다. 별명조차도 '뚱단지' 라고 하니 어째서 이런 명칭을 얻었는지 알아보게 되었다. 가드닝에 익숙하고 부지런하신 이웃집 D 선생으로부터 이 식물을 처음 분양받았을 땐 별로 관심 없이 보통 자라는 식물로 알고 이름이 '돼지감자'라 하여 감자의 또 다른 식물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돼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엄청 돼지처럼 식성이 좋아...
양한석
사람들은 바다로 고기를 낚으러 간다지만, 나는 바다에 나를 버리러 간다. 세상의 잡다한 말과 생각들을 파도에 던져버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비움의 공간에서 자신을 마주 보는 것이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화가 나면 무조건 걸어서 충분히 왔다 생각되면 막대 하나를 꽂아 두고 돌아온다고 한다. 미움, 원망, 서러움, 얽히고설킨 감정들을 그곳에 남겨두고 온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날 밤에 가슴 설렘으로 잠 못...
손정규
김포 생태공원 가는 길흔들 다리를 건너며물 안개 피어오르는 강을 본다 전망대 오르는 길,소나무 몇 그루와 물 찬 제비꽃이애기봉 전설을 불러낸다  병자호란 때사랑하던 평양감사가 북으로 향하자기생 애기는 밤하늘에 수를 놓듯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다병이 깊어 세상을 떠났다  임진강과 한강은 지금도 서로를 바라보지만한번도 만나지 못한다 전망대에 서서희끗한 나이도 잊은 채,북녘 하늘을 무심히...
윤우영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