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영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벌써 ‘블랙 베어 출몰’ 사인이 섰다. 1월 중순에, 것도 하이웨이 진입로라 번잡한 시모어 파크웨이에 곰이 나타났다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쿠거라면 모를까. 첫눈이 오기 전 굴로 들어가 동면하는 곰이 한겨울에 출몰한다는 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먹이를 찾아 인가를 내려왔다는 얘긴데... . 이전까지 그네에게 곰은 오동통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은 짧은 다리로 궁둥이 흔들며 가는, 판다나 테디 베어 같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였다. 그러나 사인을 본 순간 두 발로 번쩍 서서 앞발로 어퍼컷을 치며 크르릉거리는 포악한 불곰이 떠올랐다. 그네 머릿속에 왱왱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한다.
하필 쓰레기 수거일이다. 몇 달을 굶은 곰에게는 콤콤한 냄새가 나고 유독 음식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한식이 최고의 미식일 터. 이사 오던 날 밴댕이젓에 홀린 곰이 차고에 들어와 젓갈통을 계곡까지 끌고 내려간 적도 있었지. 나는 듯이 달려가 곰 설거지를 해야 한다. 오렌지 담긴 비닐봉지와 한 칫수 큰 운동화가 그네 걸음을 지척이게 한다. 영감이 딸의 해진 운동화를 끌고 가는 그네를 보았다면 “에고, 이 미련퉁아.” 하고 또 퉁을 주었을 것이다. 절약이 부끄러워지는 자본주의 세태를 탓하며 꿋꿋이 검약을 실천하는 그네지만 오늘만큼은 궁상 떠는 자신이 정말 싫다.
지름길인 까페 뒷골목을 간다. 두 집 건너 하나씩 녹색 컨테이너가 쓰러져 있다. 바닥에 질펀하게 쏟아져 나온 음식 쓰레기가 마치 야생동물 사체에서 흘러나온 내장 같다. 역한 냄새가 그네의 불안지수를 최고조로 돋운다. 평생을 냄새 분석가로 살아온 그네에게 악취는 화생방 경보격이다. 세살박이 손주와 아홉살 노견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네의 발뒤꿈치에 통먼지가 부옇게 인다.
그네가 사는 바이올렛 가(街)의 쓰레기통들이 삐뚤빼뚤하지만 곳추 서있다. 곰의 순례 노선에서 빗긴 모양이다. 숲에 둘러싸인 집 주변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혹시 영감이 아기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간 것 아니야?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TV에선 폭폭 증기기관차가 증기를 뿜으며 달리고, 손자는 레고 장난감 기차를 굴리며 놀고 있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조는 영감 발치 아래 강아지가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다가 그네를 보고 다시 잠든다. 햐, 영감도 강아지도 똑같이 무신경하구나. 사람이 드는지 나는지, 밖에서 무슨 난리가 나는지도 모르고... . 섭섭함 한편으로 그들의 둔함이 부럽다.
후각뿐만 아니라 오감이 다 예민한 그네는 작은 변화에 쉬 적응을 하지 못한다. 사람 대하는 처세술도 능하지 못하다.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군중이 모여 소란할 만한 곳은 무조건 피한다. 그런 그네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가 남편이다. 그의 손을 잡은 탓에 팔자에 없는 대가족 시집살이와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기, 이역만리 외롭게 살기 등 도전의 연속인 삶을 살아왔다. 그를 만나 예각이 많이 문드러졌다고 여겼는데, 작은 일에 섬찟 놀라는 새가슴 증세는 여전하다.
“할미, 요거 봐.” 손자가 레고 인형 둘을 장난감 기차에 올린다. “웰컴 온 보드. 시애를, 로스앤젤러스, 샌프란치스코. 뿌앙뿌앙.” “아이구, 할미 멀미 나요. 요래 빨리 달리믄. 사목사목 가자.응?” “알았쪄. 뿌~앙 뿌~앙. 오케이?” 손자의 재롱에 화산재처럼 솟구치던 흑구름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영감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까치발은 든 채 그네의 숨터, 발코니로 나간다. 하늘을 덮을 만큼 키큰 나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있다. 산정에 고깔처럼 얹혀있던 눈이 녹아 흐르는 도랑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코끝을 스쳐가는, 알싸한 냄새 냄새들... . 그 숲을 향해 큰 숨을 부려놓는다. 심해에서 삶의 잔해를 건져 올리는 해녀가 수면에 올라 터뜨리는 숨비처럼. 가쁘던 숨이 가지런해진다. 평생 그네를 짓누르는 궁상과 남루함, 이민 오면서 생긴 끝없는 불안과 노파심이 솔솔 빠져 나간다. 청설모 한 쌍이 아름드리 참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며 사랑놀이를 하고, 새들이 꽃처럼 붉은 열매를 매단 나뭇가지 사이를 그네 타듯 넘나들고 있다.
뻐꾸기 시계가 3시를 알린다. “엉감, 누나 누나.” 손자가 제 누나 하교 시간을 기막히게 알고 시계를 가리키며 영감의 어깨를 흔든다. 그네 하는 짓과 말투 그대로다. “어어, 네 할미하고 가거라.” 다시 돌아눕는 영감에게 “당신이 가요. 오늘 곰 나왔대요.” “곰 나온 게 하루 이틀인가. 여기서는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요. 만물평등.” 게으르게 일어나 손자 손을 잡고 나서는 영감 등에 “애는 두고 가지.” 뒤늦은 잔소리를 얹는다.
손녀가 돌아올 시간이 훨씬 지났다. 손녀 먹이려고 삶아둔 고구마가 다 식고, 갓 짜둔 오렌지 주스가 뜨뜻해질 무렵 현관벨이 울린다. 유리문으로 내다보니 경찰관이다. 웬 경찰? 영어, 영어가 짧은데... .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을 한다. “헬로우, 하 아 유? 아임 ~ 노스밴쿠버~~ “ 아는 단어 몇 개가 귓바퀴에 걸린다. 경찰관의 느긋한 품새로 보아 큰일은 아닌 성싶다. 그네 입에서 “아임 파인, 앤드 유?” 60년 대 교과서식 대답이 자판기 누른 듯 톡 튀어나온다. 경찰관 뒤에서 쿡 웃음소리가 날아온다. “에이, ‘아임 파인 앤드 유’가 뭐냐? 당신 지금 ‘파인’ 아니잖아? 새파랗게 질려서는... .” 영감이 윙크를 하며 손자와 손녀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무렴해진 그네 얼굴이 벌그레진다. “할머니, 노 워리. 베어가 나타나서 폴리스가 우리 라이드 해줬어.” 손녀가 벌벌 떨고있는 그네 손을 꼭 잡아준다. 철없는 손자는 “할미, 나 삐뽀삐뽀 차 탔다.” 방방 뛰며 신나한다. 영감이 돌아서서 전라도 억양이 밴 영어로 경찰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런 하찮은 영어로 그네를 무시하는 영감에게 눈을 흘겨주고 단풍잎 같은 손자, 손녀 손에 오렌지 주스 잔을 쥐어준다.
오늘 하루 살짝 뒤뚱거렸지만 그렇게 ‘평온’으로 마침표를 찍는 줄 알았다.
그런데... . 아이들을 딸 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다. 영감이 “고생했네.” 하며 그네 어깨를 지긋이 당겨 안아준다. 숨 가쁜 하루 끝에 오는 나른함 때문이었을까. 하늘가에 걸린 보랏빛 숄이 그네 눈에 들어왔다. “노을이 다 사위어 가네. 붉게 타는 노을은 놓쳤지만 저 보랏빛 노을 같은 노년도 괜찮네요.” “어쭈, 시인 나셨네.” 그네 목소리가 간지러웠던지 짓궂은 영감이 또 핀잔을 준다. 칫, 자기 만나 쪼그랑 박 신세가 되었지. 나도 말랑말랑하던 소녀시절이 있었다우. 평생 입안에 담아둔 속말을 삼키며 그네가 팽 달아났다. “아이고, 그리 달리다 넘어져.” 영감이 쫓아온다. 집이 빤히 보인다. 무서울 것 없다. “곰 나타나면 어쩌려고.” 영감의 웅얼거림을 무시한 채 잰걸음을 놓는다.
집 앞 100미터 전, 어둠을 포대기처럼 두른 숲이 출렁거린다. 얼른 강아지를 안아올린다. 얼룽얼룽한 그림자가 옆집 드라이브 웨이에 어슬렁거린다. 뒷머리가 바짝 선다.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손으로 막았다. 숨소리도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위협을 느끼면 왈왈 짖을 강아지마저 그네 가슴에 머리를 파묻는다. 그것이 그네과 개의 존재를 알아챈 모양이다. 콜드 섹을 사이에 두고 그것과 그네가 대치하고 있다. 곰인가? 곰치고는 몸피가 날렵하다. 아기 곰인가. 아기 곰치고는 키가 크다. 근데 색깔이 까맣질 않네. 막 젖 뗀 그리즐리곰?. 그네 머릿속에 동물도감 페이지가 휙휙 넘어간다.
인간은 너무 공포스러우면 현실감을 잃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말뚝처럼 서서 떨었는지 모른다. “왜 스컹크라도 나타났어? “ 영감이 그네 어깨를 툭 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형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옆집 울을 넘어 숲으로 잠적했는지, 집 뒤뜰로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지, 달달봉사 같은 그네 앞을 유유히 통과해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지... .아니, 저 장난기 가득한 영감이 그네를 놀래키려고 짐승탈을 쓰고 너울너울 춤을 추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밤새 어둑시니가 휙휙 날아다니는 악몽에 시달리다 동이 번하게 터올 무렵 겨우 선잠에 들었다.
“굿모닝.” 저승꽃 군데군데 핀 얼굴이 그네를 내려다 본다. 고소한 버터 맛 나는 토스트와 헤이즐럿 향 은은한 커피를 앉은 쟁반을 들고 웨이터처럼 대령하고 서있다. “아이고, 눈 뜨자마자 어찌 먹는다우.” 신혼 때를 흉내내는 남편의 애살에 칭찬 대신 앙탈을 부린다. “모란 같던 우리 각시, 할미꽃이 다 됐네.” 진실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때로는 날선 진실이 상대의 마음을 예리하게 벨 수도 있다. 그럼 그렇지. 웬일로 안 하던 모닝 뽀뽀를 하고. 아침부터 장난샘이 터졌네, 터졌어. 그러는 자긴 뭐 아직도 푸른 청년인가. 그네가 발딱 일어났다. 그네의 앙칼진 눈초리를 눈치 챈 영감이 “발코니에 가서 먹을까? 볕도 따숩던데.” 하며 후다닥 달아난다.
화장실에 들어가 선머슴 같은 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 본다. 그 속에 노년의 어머니가 들어있다. 영감의 말이 맞다. 하지만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부부가 서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건 반칙이다. 함께 오른 고산과 함께 타고 넘은 파도를 감안해서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기나긴 투쟁의 시간들을 어찌 견딘단 말인가. 얄짤없이 할 말 다하고 공격에 즉각적인 반격을 가하는 부부 사이엔 틈이 생기기 마련이고, 틈을 메꾸지 못하면 끝내 균열하고 만다. 저 주름 골골이 연민의 꽃이, 저 검버섯 곳곳에 인내의 이끼가 핀 것을... . 속 얕은 영감이 뭘 알겠어. 당당한 속생각과는 다르게 비비 크림을 짜서 이끼 흔적을 덮는다.
풋화장을 한 그네가 풋풋해진 마음으로 발코니에 나간다. 눈이 부시다. 어둠을 건너온 햇살이 촘촘한 나무 틈새를 비집고 빛살기둥이 되어 발코니를 비춘다. 새들이 영역 싸움 하느라 지르는 비명과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다. 어젯밤의 기괴한 형체는 기가 허해져 헛것을 본 거라고 애써 무마한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네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영감이 데워온 토스트와 갓 내린 커피를 말없이 테이블에 놓는다. 영감이 은퇴한 후 유일하게 그네를 위해 하는 이쁜 짓이다. 영감은 그네에게 시킨 고생에 대한 속죄라 하지만 속죄까지는 어림없고, 아무튼 이 브런치 한 상이 그네의 한평생 쌓인 불평의 녹을 한 풀 한 풀 벗겨주고 있기는 하다. 그네가 우아하게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먹자 그제야 영감이 옆자리에 앉아 신문을 집어든다. 아침 산책길에 들고온 모양이다. 노스 쇼어 뉴스 헤드 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들어온다. “Who’s The KING? Cougar or Bear.” 대문짝만한 활자가 에밀레 종이 되어 그네 머릿속에 울린다.
숲이 품어주는 건 그네만이 아닌 모양이다. 최상위 포식자인 쿠거와 곰도 품어주고, 검은 색안경쓴 너구리 가족과 멋진 흑백 제독 모자를 쓴 스컹크도 품어준다. 연녹 새 순만 똑 따먹는 토끼, 유기농 흙 깔아주면 먼저 달겨드는 개미 군단과 꿀을 찾아드는 벌나비, 아침마다 싸움박질하는 까마귀와 참새, 파랑관 쓴 스텔라 제이, 날개가 부서져라 흔드는 벌새들도 숲에 깃든다. 숲은 힘이 강하고 약한 자를 가리지 않고, 이롭고 해로움도 따지지 않는다. 쓸모가 있고 없음을 가늠하지 않고 종(種)이 같고 다름도 차별을 두지 않는다. 모두를 아울러 품는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 기력을 다 쓰고 방전된 밧데리 같은 그네 부부까지 안아 충전시켜 준, 품 넉넉한 숲이다.
과연 이런 숲에 누가 왕일까? 누군가는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 있는 쿠거나 곰을 손꼽을지 모른다. 다른 누군가는 숲을 쓸어내고 사람이 살 벌집들을 짓는 인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또는 인류 이전부터 존재하며 숱한 탈바꿈을 통해 적응해 온 곤충이 영원히 생존할 유일한 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 살아남는 자, 더불어 살아내는 자가 숲이라는 제국의 왕이 아닐까? 나름 현명한 해답에 이른 그네가 눈앞의 또 다른 왕에게 커피잔을 높이 들어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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