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석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영국의 심리학자 브롬디는 인생의 4분의 1은 성장하며, 나머지 4분의 3은 늙어가며 산다고 했다. 지금 내 나이 87세니 65년을 늙어가며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람은 직장의 규정에 따라 정해진 나이가 되면 생업인 일터를 떠나야 한다. 이를
정년퇴직이라고 한다. 나는 두 번이나 정년퇴직을 치렀다. 첫 번째는 내 나이 65세가 되던 해, 31년간 몸담았던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두 번째는 만 80세 되던 해 선교지에서 돌아왔을 때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좀 편히 쉬시지요" 라는 말로 퇴직을 했다. 파송 단체의 규정이 80세였다. 감사하면서도 한편 섭섭함이 밀려왔다. 쓸모가 없는지 오라는 곳도 없다. 정말 늙었구나! 서글퍼진다. 계속 이대로 늙어 가며 일하면 될 터인데 “왜 그만 쉬라고 하지? 내 나이가 어때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던데. 혼자 중얼대 본다. 섭섭한 모양이다.
“늙음은 삶의 축제요, 죽음은 삶의 완성이다.” 스위스 철학자 칼 융(Carl Jung) 의 말이다. 내 마음에 꽉 와닿는다. 나도 내 인생의 삶을 멋있게 완성하고 싶다. 그때까지 삶의 축제 속에 춤추며 즐겨보고 싶다. 너나없이 우리 모두의 염원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하지? 늙음에도 기술이 필요하겠다. 내가 닮고 싶은 김형석 교수님을 찾아 여쭈어 보고 싶구나. 김형석 교수님의 삶의 일상이야말로 “축제”인 듯싶다. 근래 내가 친하게 지내는 AI ChatGPT에게 부탁을 해본다. 김형석 교수님의 “늙음의 기술”을 찾아오라 지시했다. 즉시 답이 영상에 뜬다. 3가지만 잘 하란다.
첫째, 열심히 운동을 해서 건강을 챙겨라.
둘째, 쉬지 말고 배워서 지혜로워지라, 그리고
셋째, 일을 만들어 늙을 틈이 없도록 하라,
운동할 때, 배울 때 그리고 일할 때가 청춘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멋있단 다. 김형석 교수님은 언제 보아도 멋있다.
몸은 내가 사는 집이다. 몸이 아프거나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운동을 하란다. 사람은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몸과 생각만큼 늙는다.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아직 늙지 않았다며 꿋꿋하면 아직 젊은이다. 그렇지! 운동으로 건강을 챙기자.
나는 어려서부터 잘하는 운동이 없다. 젊은 학생들 따라 배드민턴이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운동 종목이다. 그것도 80이 넘으니 팔목과 어깨가 말을 안 들어 포기했다. 이웃에 사는 자전거 타는 부부가 부러워 나도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거의 매일 열심히 탔다. 집 주변만 조심조심 돌며 즐겼다. 그러다 자전거 전용 길에 익숙해지니 욕심이 생기더라. 장거리 (UBC, Stanley Park ---) 여행도 했다. 그러고 돌아오면 한참은 젊어진 기분이다. 자랑삼아 무용담도 나눈다.
그런데 주변의 여론이 과히 좋지 않다. “아직도 자전거 타세요? 조심하세요, 큰일 나요, 누구는 낙상을 했대요, 병원에 입원했대요.” 등등,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사랑을 담은 염려다. 왠지 잔소리(?) 같아 서운했다. 그러다 아니나 다를까 사달이 났다. 낙상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자전거 낙상이 아닌 돌부리 낙상이었다. 늙은이들 낙상사고는 절대 금물이다. 필사적으로 피해야 한다. 늙어가는 얼굴에 여섯 바늘이나 더 보태니---더 늙어 보인다. 자전거 타기도 포기했다. 그 후부터 하루 매일 한 시간씩 꼭 ”Power Walk” 하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래도 “돌부리는 조심, 조심” --- 대뇌이며 매일 걷는다. "나는 아직 운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삶의 활력을 가져온다.
몸을 돌보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마음을 살찌우고 정신을 젊게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배움이 필수다. 속담에 “노인의 말을 들으면 자다 가도 떡이 생긴다.” 고 했다. 쉬지 말고 배워 지혜로워야 한다.
“안 코라 임파로! (Ancora imparo!),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라는 이탈리아 말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스케치북 한쪽에 적은 글이라고 한다. 그의 나이 87세 때 일이다. 지금 내 나이에도 늦지 않았구나. 그렇지, Ancora imparo! 하자. 배우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배울 때 지식을 쌓고,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한다. 두뇌를 끊임없이 괴롭히자. 알츠하이머도 발 못 붙이게 하리라. 배우면 배울수록 정신도 몸도 더 건 강해진다.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배움의 문이 열리고 더 겸손해 지는 것 같아 좋다...
사람은 열정 (Passion)을 다해 하는 일이 있을 때 그 삶이 멋이 있다다. 그 멋을 누릴 때가 바로 청춘이다. 늙고 젊음에 상관이 없다. 일이 늙는 것을 막아 준다. “일이 곧 내 삶이다”. “나는 일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은 절대 권태롭지 않고 늙지 않는다”. “일과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늙음을 막는 가장 훌륭한 처방이다.” 104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체험담이다. 배울만하다.
일거리는 내가 가진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해야 한다. 나는 43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했다.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교수” 일이다. 교수의 임무를 “HYFP” 네 글자에 담아 평생 내 일의 “Key Word”로 지켜왔다. 풀어 쓰면 교육은 젊은이가 타고난 재능을 성취하도록 돕는 (Help Youths Fulfill Potential) 일이다. 교수는 그 결과를 보고 기쁘고 행복해하고 보람으로 사는 천직이다. 그 보람이 쌓이는 만큼 젊어진다.
내가 80되던 해, 마지막 임지였던 평양과기대(PUST)를 떠나오며 이루지 못한 숙원 하나가 있다. 2012년 내가 맡은 학생 20명 중 한 학생이 있다. 그는 내가 맡은 식품영양학 반에서 수석을 했다. 여러모로 욕심나는 수재 학생이다.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싶어 두어 번 장학금을 마련해 놓고 추천했으나 이루지 못해 무거운 마음으로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일로 고뇌하고 있던 차, 친분있는 영국 교수님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외국 유학생들을 돕는 “EU Fellowship Fund” 가 있다니 탐구해 보라 조언을 한다. 정신이 번쩍 든다. 눈 딱 감고 PUST 제자 두 명을 Oxford 대학 박사과정 장학금 신청을 했다. 캐나다 대학 명예 교수 자격으로 정성을 들여 추천서를 썼다. 될 것 같지 않아 몇 번 주저도 했다. 그래도 혹시나? 그리고 열심히 기도했다. 한 달 반이 지났다. “EU-PUST Fellowship” 과 Oxford 박사과정 Admission 통지서가 날아 왔다.
그 후 3년 반이 지났다. 북한에 옥스퍼드 박사님이 탄생했다. 평양과기대에서 만난 두 학생을 위해 노력했던 순간은 나의 늙음 속에서도 가장 큰 보람을 안겨준 일이었다. 그들이 옥스퍼드 박사가 되어 모교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니, 내 인생이 새로이 빛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왜 이리도 기쁠까?! 마음이 뿌듯하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은 것처럼 기쁘고 행복하다. 바로 이것이 일의 보람이다. 이런 보람의 조각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찌 사람이 늙겠는가!
늙음은 삶의 축제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배우며, 일을 통해 삶의 보람을 쌓아가다 보면, 늙음이 주는 모든 선물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축제의 마지막 날, 나의 삶을 보람으로 완성하고 웃으며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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