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석 / (사)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나태주 선생의 “행복” 이란 시에 “외로울 때 홀로 부를 노래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했다. 나도 외로울 때 홀로 부를 노래 한 곡을 찾아 불러 보기로 했다. 손경민 목사님의 자작, 작곡해 부른 “은혜”라는 노래다.
●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부지런히 따라 불러 연습하다 보니 익숙해진다. 외로울 때 혼자 흥얼거려 본다. 내가 걸어왔던 과거 시간으로 되 돌아가 본다.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본다. 가장 어려웠던 때가 생각나면 한 소절이 끝 “다 은혜였소” 한 옥타브 올려 부른다. 행복을 느낀다. 행복이 은혜다. 나태주 시인이 옳았다.
나는 UBC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에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밴쿠버에서 4년을 살았다(1970-1974). 다섯 살 난 딸, 두 살 된 아들, 그리고 아내, 이렇게 네 식구 가정을 이끄는 학생 가장이었다. 대학에서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연구보조 장학금(Research Assistantship)과 대학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아내의 수입으로 네 식구는 넉넉히 살만했다. 그러다가, 공부를 마치니, 고향 같은 밴쿠버를 떠나야만 했다. 미국 북가주 대학(UC Berkeley) 로 옮겨야 했다. 1974년 박사후(PDF) 연구생으로 2년 계약으로 질병영양학 연구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콩코드(Concord)라는 작은 도시에 아파트를 얻어 정착했다. 아파트 건너편에 한 삼사십 명 쯤 모이는 작은 교회가 있다. “Park Heaven 남침례교회” 간판이 우리가 사는 아파트창으로 크게 보인다. 1975년 8월말 어느 날이다. 한 이 십대 후반 쫌으로 보이는 전도사님이 집집마다 문을 뚜드리며 부흥집회에 꼭 나오라고 권한다. 그날 저녁 나와 아내는 이상하게도 아무 저항 없이 참석을 했다. 부흥집회 3 일째 되든 날 저녁 집회때다. 경험해 보지 못한 성령님의 강권 적 역사가 우리 부부에게 임하셨다. 그 날 우리 부부는 한 날 한 시 같은 장소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됐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다. 내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었음을 처음 알았다.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흘린 그 보혈로 씻겨 용서 받았음을 믿게 됐다. 그리고, 내가 어디서 와서 이생에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지 확실히 알게 됐다.
박사 학위를 소유했다고 다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더라. 교수직을 구하느라 보낸 이력서만해도 100통이 훨씬 넘게 보내 봤다.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나 같이 안 된다는 답장만 받아 보기를 역시 100통이 넘었다. '이제 3개월 후면 PDF 연구생 자리도 끝이 나는데 어쩐 담.' 걱정이 태산 같다. 홀로 초조함과 염려 속에 살아오다가, 예수님께 한 번 매달려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한복음 14장 14절 말씀)하신 말씀이 떠 오른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에게 “교수직을 주세요.” “제게 알맞는 직장을 주세요.” “하나님께 영광 드릴 수 있는 직장을 주세요.” 참으로 철없는 어린애 같은 기도다. 매일 열심히 기도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꼭 응답해 주실 것만 같은 생각이 짙어 간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렇게 예수님께 직장을 위해 기도를 시작한지도 6개월이 지났다. 이젠 더 기다릴 곳도 없다.
1976년 7월 말쯤 어느 날 오후였다. 캐나다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가 도서실에 있는 사이라 받지 못했다. 오후 4 시 다시 걸테니 기다리란 메시지를 남겼다. 전화벨이 울린다. 내가 학생으로 있던 UBC 농학부의 학과장님의 전화다. 안면만 있을 뿐 잘 모르는 분이다.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도 모른다. 전화의 요지는 9 월부터 교수 자리가 났으니 캐나다로 9월 학기부터 올 수 있겠냐고 묻는다. 현기증이 나도록 어리둥절했다. 내 홀로 100통을 넘게 쓴 신청서류는 모두 허사였건만 무릎 꿇고 그것도 어린애 떼같이 향방 없이 올린 우리 부부 함께 무릎 꿇은 기도가 응답되다니 놀라왔다. 기도가 하나님 보좌를 움직여 응답을 받아낼 수 있다는 귀한 진리를 체험했다.
그해 9월 학기부터 나를 키워준 모교 UBC 교수가 됐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恩惠)다. 그 후로는 다른 직장을 구하는 신청서를 써 본 일이 없다. 하나님이 필요한 곳에 보낼 때 순종만 하면 됐다. UBC 교수로 재직한 지 10년이 되든 해, 알버타 대학으로 부터 석좌교수로 초빙되어 21년간 근무했다. 2006년 정년을 채우고 31년 긴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연이어 연변 과학기술대학에서 6년, 그리고 평양과기대에서 6년, 도합 12년을 더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내 나이 80이 되던 해 2018년에야 총 43년의 예수님이 정해 주신 교수라는 천직에서 물러났다. 할렐루야. “이것이 다 은혜, 은혜요, 하나님의 은혜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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