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그라우스에서 버나비 마운틴으로

김진양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12-19 11:34

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줌으로 기도회를 마치고 등산 준비한다. 며칠 전 내린 첫눈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우리의 마음과 발걸음을 붙들어 놓는다. 시시각각 예보되는 날씨를 점검하면서 과연 이번 주말에 걸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에 메시지가 날아왔다. 날씨는 쨍하지만 나를 포함해 함께 걷는 회원의 연륜이 높아져서 그냥 카페에서 만나 커피 타임만 갖자는 마음이 쌩하다.

   이십 여 년 전에 여러 명의 교우와 건강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걷는 모임을 시작하자는 의견에 마음을 모아 그라우스(Grouse) 마운틴 등산로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 산정을 바라보는 위치에 살아서 곤돌라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지내던 때였다. 첫 번 모이던 날, 과연 그 힘들다는 길을 걸어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소지해야 할 것들과 가파른 등산로에 대한 주의 사항에 유의하며 아마도 십 여 명이 함께 출발했던 것 같다. 날씨가 좋았고 처음 시도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어렵게 도전했다.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참 올라가니 겨우 ¼ 지점 표지판이 보였다. 잠시 멈추어 땀을 닦고 호흡을 고른 뒤에 다시 오르기 시작해서 중간 지점에 다다르니 인제 그만 중단하고 싶어졌다. 다시 돌아서 내려가기는 더 힘들다는 사전 경고를 들은 지라 어쨌든 올라가야만 했다. 조금씩 목을 축이며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하며 꾸준하게 걷다 보니 ¾ 지점까지 다다랐다. 위로 한 번 아래로 한 번 바라다보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여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이란! 아마 1시간 40분 쯤 걸렸을까? 마지막 대원을 기다려 모두 카페에 모여 앉아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마시는 아침 커피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일품이었다.

   그 후에 두 번 더 올라갔으며 이것이 나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몇몇이 캐필라노(Capilano)강 물소리를 즐기며 계곡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점점 그 수가 늘면서 코스를 바꾸어 다 같이 린 밸리로 옮기자는 의견에 뜻을 모아, 흔들 다리를 건너 라이스 레이크 주변으로 한 바퀴 도는 산책로를 택했다. 때에 따라 곰 주의보를 보기도 하고, 잘 익은 열매를 따서 새콤달콤한 맛을 보기도 하고, 재잘거리는 새소리도 들어가며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즐겼다. 이때만 해도 눈과 비를 겁내지 않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때로는 어릴 적 부르던 동요의 가사를 되새기기도 했다. 마치는 대로 린 밸리 길에 있는 맥 카페에 모여 김이 오르는 커피를 홀짝이며 정겨운 이야기들로 시간 가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린 밸리는 이민 첫해에 직장을 가지고 1년 동안 살던 동네여서 그때 일하던 곳을 매주 지나치며 옛날을 회상했다. 정든 옛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반세기가 훌쩍 넘은 그때 그 동네의 모습은 이제 온 데 간 데 없다.

   삼 년 전에 갑자기 코비드(Covid) 19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모든 사람의 발과 마음을 묶어 놓았다. 참으로 무서운 현상들을 보면서 정부의 지침에 꼼짝 없이 따라야 했다. 그런 상황에 남편에게 척추 압박 골절이라는 어려움이 닥쳤다. 오랜 기간을 통증으로 시달리면서, 특별한 치료 방법 없이 자연 치유를 기다려야 하는 어려운 질환이다. 가정의나 전문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게다가 그 여름은 폭염으로 더더욱 끔찍한 시간이었다. 산악회의 일원으로 밴쿠버 근처의 힘든 산행을 많이 했었는데! 일 년 여의 시간을 힘겹게 보내고 전염병 예방 접종을 1, 2차 하고 난 어느 날, 우리 산행 팀 리더로부터 걷기를 다시 시작해 보자고 메시지가 왔다. 매우 반갑긴 한데 남편이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의문이나 오랜 시간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만남이 필요했다. 처음이라 아주 평평한 공원에서 모였고, 굽어진 남편의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대원들을 놀라게 했다. 거듭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에 힘을 얻고 이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두어 달 뒤에 좀 더 많은 참여를 위해 버나비 마운틴 등산로로 바꾸어 조금씩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지 어느새 한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 이 긴 세월 동안에 우리의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발걸음마다 조심해야 한다. 지금처럼 눈 때문에 못 가는 아침엔 하얀 지붕 넘어 버나비산 등성을 바라보며 맥 카페의 커피 향 대신 따끈한 생강 차 한잔을 즐긴다. 머지않은 새봄을 기다리며.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빠, 뭐 보고 있어?”이른 아침, 아빠가 텃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풀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잠이 덜 깬 눈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등에 기대며 물었어요.“아고, 우리 호야 깼구나. 더 자지 않고?”“어? 텃밭 풀이 다 어디 갔어요?”내 키보다 훌쩍 자란 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우와! 텃밭에 풀이 다 없어져 보기 좋아요. 어젯밤에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봐?”“우렁각시? 하하 맞네. 착한 우렁각시.”아빠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정순
바람 2026.01.30 (금)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만나서 마음속으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진다. 바람을 쐬러 산책길에 나선다. 머리카락, 피부에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본다.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감촉을 느끼게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바깥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야 생기가 날 듯하여, 오후가 되면 산책길에 나선다. ‘바람을 쐬는 일’은 무슨 일인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운동장을 몇 바퀴 걸으면 마음속으로...
정목일
이민 삼십 년 2026.01.30 (금)
이민자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 할 때마다사람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눈금을 들이민다고향이라는 눈금, 학교라는 치수그들은 나의 과거를 재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이 밟고 올라설 사다리의 높이를 가늠하는 중이다골목마다 교회 숲을 이루는 도시절 향기는 댓돌처럼 차고 문지방처럼 높다교회의 찬송은 매끄러운 비단처럼 반짝인다사람들은 나를 그 화려한 그물 속으로 초대한다거절의 벽을 허물고 들어가 앉은 식탁 위에서나는 비로소 이방인의 허기를...
전재민
산에는산길에는해 오르고 달 오르는 길이 새롭다 산은철따라 외로움이 피고 지는꽃들의 터전 그리움이 울어넘는산새들의 고향이다 미움도 사랑으로 옷을 갈아 입는아라리 산길 산에 오르면제 마음 봄이되어발걸음이 가볍다 산은오를수록 제 안의 저를 알아가게 하는무언의 스승 그 산길에 오르며 배움이 깊다
유병옥
동쪽의 거리 2026.01.23 (금)
독도가 앞서 밝아올 때울릉도의 등줄기인왕산의 오래된 벽봉황산의 그림자남한산성의 돌땅끝마을의 끝내 닿지 않는 손성산일출봉새천년 해안 샛바람길의 비린 새벽정동진. 호미곶사람들은산과 바다도시의 모서리마다각자의 동쪽을 세운다나는이름 하나 들고서 있었다간절곶아주 오래전간절함이 먼저 와우리 사이에 서 있었고말은해보다 늦었다빛이 오기 전 오빠는부르지 않아도 이미동쪽에 있었다가장 얇은 그 새벽나에게 동쪽은한 사람...
김회자
한글은 계시였다 2026.01.23 (금)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의 박동, 드라마의 서사, 영화의 감정, 음식의 향기까지. 그러나 그 모든 ‘K’의 중심에는 조용히 빛나는 한글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 살고 나서야 비로소 깊이 깨닫는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도, 기술적 발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정신이 글자의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타난 계시였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의 건국 이념에서 시작된다. 홍익인간—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 이 네 글자는 한 나라의 뿌리가...
심정석
 제목은 거창하게 대화의 기술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언어학자도 아니고 대화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느낀 점들을 개인적으로 피력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싶고 이런저런 상담도 하고 싶지만,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과는 말을 섞기도 꺼려진다. 남의 말을...
이현재
태풍 2026.01.23 (금)
난 바다 어디쯤외눈박이 눈을 하고달려오는 바람 하나거침없는 생이 부럽다 나 그렇게뜨겁게 산 적이 있었던가그렇게 겁 없이사랑한 적 있었던가 젖은 머리 풀고 질주하는구름기둥 끝에 매달려짧고 굵게 살다 죽는비결 한 수배워야 할까 보다
정금자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