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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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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7-26 09:25

김베로니카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기다린다는 것은 기대와 설렘이 동반된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를 떠오르게 하는 즐거운 유년의 소풍 가는 날, 설 날 추석날 새 옷 입고 세뱃돈 받는 날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 보고 싶은 친구의 소식,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을 보내면서 내일은 더 좋은 일만 생길 거라면서 또 희망을 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하고 상처도 크지만 기다림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사람을 설레게도 하고 무엇의 결과를 위해서 마음을 졸이면서 꿈을 꾸게도 한다. 대체로 그 끝은 실망으로 끝나기도 하고 바라던대로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것은 높으신 분의 섭리에 따르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인 것 같다. 기다리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건 희망과 동시에 절망도 동반한다.

몇 년 전 우리 부부는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에 갔다. 3월도 다 가려는 즈음 별로 유쾌한 여행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던 일도 다 정리한 다음이라 시간은 넉넉하고 마음도 그런대로 홀가분했다. 3월의 한국은 썰렁하고 쌀쌀하고 바람마저 서늘했다. 봄 꽃놀이도 여기저기서 한창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춥고 쓸쓸했다. 어머님은 상태가 안 좋으셔서 우리도 잘 몰라보셨다. 그렇게도 그리던 맏아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저 멍하니 쳐다보시곤 금방 눈을 감고 만다. 자식의 도리를 못 하고 다 늦게 이민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 서울을 떠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수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사이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병석에 누운 지 7년이나 되었다. 맏이의 도릴 못하고 지낸 세월이 가시방석이 되어 우리를 찔러댔다. 어머니 모시고 한국에서 살려고 했지만, 남편은 한국에 대한 배신감에 자신을 주체 못하고 고국을 떠나고 싶어 했다. 이민이란 선택을 하게 만든 서글픈 현실이 우리 앞에다가 서 있었다. 이국에서의 삶이 만만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리 얼마지 않아서 춥고 삭막한 알바타의 겨울을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자식, 부모에 대한 연민은 애써 힘든 육체노동으로 이겨내려고 했지만 어쩌지 못하는 자책감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해 좋지 못한 기억은 언제나 남편을 괴롭히고 가슴속 깊이 받은 상처는 아직도 뇌리에서 어제 일처럼 생생히 떠오르는지 가끔 술 한잔 마시면 그때의 얘길 하곤 했다.

어머닌 서울 좋은 집안에서 공부도 많이 하고 인물도 좋으시다. 그 시절엔 정신대에 안 가려고 어린 나이에 부모님들끼리 만나서 혼사를 정해놓고 본인들은 얼굴도 모른 채 혼인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의왕에 계신 아버님과 혼인 말이 오가서 그리로 시집을 게 되셨다. 벼가 어찌 생겼는지도 몰랐다고 하니 어머니의 시골 생활도 가히 상상이 간다. 그러다 어찌어찌 남편이 생겨나고 그 아래로 4남매를 낳고 살게 되었다고 하셨다. 시 아버진 말씀이 없으시고 점잖으신 편이고 어머닌 잔소리가 많으시다. 견디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면 아버님은 아프다는 핑계로 병원에 입원하시곤 하였다. 가장 편하게 심신을 쉴 방법이었다. 남편도 말 못하는 여자에게 장가들려고 생각할 정도로 어머니의 잔소리가 힘들었다고 했다. 어머닌 마음대로 되는 건 없고 아마도 견디기 어려운 생활에서 오는 나름의 표현의 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맏이로 태어난 것이 무슨 죄인지 어릴 때부터 어머님은 힘들고 고생스러우면 남편이 미덥고 만만해서인지 자주 듣기 싫은 소리로 상처를 주곤 하셨단다. 가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남편은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우울해한다. 엄만데 당신이 마음을 풀라고 수없이 말하지만 나도 그 상황이었다면 쉽지는 않을 것 같아 할 말을 잊곤 한다. 그런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하니 아들의 마음이 어떨지... 한국에 갈 땐 어머니에게 못다 한 효도도 하고 옆에서 임종하실 때까지 곁에서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갔건만 알아보지도 못하고 사경을 헤매는 어머님을 뵈니 마음이 황망하기만 하였다. 병원에서 모든 것 알아서 처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 마음이 이리도 가벼운지 자신도 놀라면서 며칠에 한 번씩 가서 경과만 보고 오는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병원에서도 힘들다는 말만 할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경과만 지켜볼 뿐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불안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어딜 가도 마음은 온통 어머님께 있으니 친구를 만나도 불안하고 꽃구경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는 심정이 묘했다. 이런 기다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찌 어머님의 임종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는지...

한국의 봄 날씨는 예전과 달라 바람도 심하고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도대체 종잡을 수 없었다. 쉽지 않은 상황이 우리를 애태우게 하고 자식들 보기도 민망한 입장에서 내 노년이 암담하게 다가온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친다면 내 자식들도 똑같은 마음이겠지 어쩌지 못하는 처지가 답답하기만 하다. 인간 살이가 마음먹은 데로 되는 일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현실은 정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어머님은 같은 상태로 아무런 차도도 보이지 않으신다. 3개월 후면 돌아가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마음만 급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왔다. 계속 기다리기엔 너무 지친 상태라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시 연락이 오면 그때 나가기로 하고 돌아오던 날은 여름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으로 맞이한 벤쿠버의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우리 부부는 서로의 속내를 내보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권이 만기 돼서 급하게 재발급을 신청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또 위독하다는 연락이었다. 남편은 급하게 다시 떠났고 난 여권이 없어서 갈 수가 없었다. 남편이 도착하기 전엔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기다렸지만, 공항에서 대전까지 가는 자동차 속에서 임종을 맞았다고 했다. 맏이로 태어나서 모시고 살지도 못 한 그 불효를 어찌 용서받을 수 있을지, 어머니와의 불편했던 마음을 가슴에 간직한 아들의 처지를 어머니는 다 용서하시고 떠났으리라 믿어본다.

인간이 마지막까지 귀는 열려있어서 들을 수 있다는데 남편이 애타게 전화기에 대고 불러 덴 "어머니"라는 소린 듣고 가셨는지, 서로의 속마음도 내보이지도 못하고 묵은 감정은 풀었는지... 부모와 자식 간인데 먹은 마음이야 금방 풀리겠지만 손이라도 잡으면서 그렇게 가시길 바랐는데 어머닌 그렇게 떠나셨다. 자식들고생 안 시키려고 날씨 좋은 날 죽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건만... 7 월 어느 날 무덥고 긴 여름이 한참일 때 92세를 사시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 영원한 시간을 향해 떠나셨다. 아무것도 변한 건 없고 세상은 그대로 변함없이 돌아가는데 어머니란 존재만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바람은 오늘도 불고 내일도 부는데, 꽃들도 올해도 피고 내년에도 피건만 오직 인간만은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존재가 사라진다. 고작 기억 해주는 건 주위에 몇 명의 지인들과 식구들 몇 명, 그것도 세월이 흘러가면 그마저 희미해지고 만다. 허무란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인간만이 가진 서글픈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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