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차 한잔의 그리움

김베로니카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6-22 11:33

김베로니카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잠을 깨운다. 시계를 보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이 시간에 눈을 뜨면 더는 잠들기가 힘들다.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하기 일쑤다.  그런날은 머리도 개운치 않고 몸이 찌뿌드드한 게 기분도 별로 안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그랬듯이 똑같이 시작하는 일상이 딱히 변한 건 없는데 왜 이리 감옥에 갇힌 듯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까?  요즈음은 생각이 더 많아져서인지 자주 잠을 설친다. 앞날의 불안감이랄까,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하나 등등, 생각이 꼬리를 문다. 사실 그 전의 삶도 특별히 별다른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왠지  코로나 때문이라는 핑곗거리로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를 이어간다. 이 나이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더 복잡하고 앞날이 암담할까, 그들이 살아낼 긴 인생의 여정이 참 안쓰럽다.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관도 없이 그저 제 짝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래부르고  목청껏 울어댄다.  도도한 관을 쓰고 청색의 고운 자태를 지닌 불루제이 두 마리는 무엇 때문인지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까마귀 한 마리를 결사적으로 쫓아다닌다.  맹공격을 하는 모양이 아마 품고 있던 새끼에게 해코지를 한 것 같다. 벌새 두 마리도 매일 꿀을 먹으려고 테라스에 매단 먹이통을 방문한다. 가끔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듯 예쁜 잠자리 날개를 퍼덕이면서 귀여운 몸짓으로 화답한다.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면서 날갯짓을 하는 그 모습을 보면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은 창조주께서 서로 도우면서 즐기고 사랑하라고 인간을 위해 만드신 작품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모든 것을 파괴한 인간의 한 없는 이기심과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받는 이 세상은 모두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임엔 틀림없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인간의 삶만 조금 불편해졌다. 그것도 얼마 지나면 익숙해져서 그런 데로 살아갈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시간만 무의미하게 보낸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 같은, 어딘지 모르게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 바닷가 산책로도 다시 개방하고 조금씩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이전처럼 하고 싶은 데로의 생활을 누리지는 못한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아무런 구속도 없이 살아온 많은 나날이 축복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참 편하게 잘 살아온, 아름다운 잊지 못할  나날이었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서 동병상련의 서글픔을 느낀다.  무엇이든 내일로 미루지말고  하루의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상황이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암흑의 세상은 아니지만, 깜깜한 밤이 지나고 내일의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새벽 여명의 순간인 것 같다. 여명이란 아침의 찬란한 해를 맞이할 준비의 시간이 아닌가? 우리에겐 여명이 보여주듯 희망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위기는 참 많았지만, 요즈음의 이 사태도 온 인류에게 닥친 위기임엔 틀림없다.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현실 앞에 사람들의 마음은 더 각박해지고, 이웃을 돌아보기가 힘들어지고  감정은 더 메말라 갈 것 같다. 인간이 서로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힘들게 한다. 서로 만나면 반기면서 보듬어주던 때가 있기는 했던가,  먼 옛날인 듯  아득하다.
 
     아마도 예전처럼 식구들이 모이고 친구들도 모여서 먹고 마시며 노는 시절은 쉽게 올 것 같지가 않다. 이 상황을 함께 껴안고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라는 반갑지 않은 이웃이 하나 더 생겨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세상으로 바뀐다면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동안 우리가 겪은 어려움과 비참함에서 느꼈던 반성과 자성의 시간마저 잊어버리고 더 이기주의로 빠질까 두려워진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서 나를 움츠리게 만든다. 요즈음은 하루를 집에서 보내는 게 익숙해지려고 한다.  오히려 외출하려고 준비하고 나간다는 자체를 잊어버렸다고나 할까,  옷 장에 걸린 외출복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도 못 느끼고, 오늘이 며칠  인지 인식도 잘 못 하는 날이 많아졌다. 벌써 이 생활이 편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친구 만나러 가는 날은 왠지 설레고 예쁘게 차려입고 들뜬 마음으로 나서던 게 이젠 먼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온 지난날들이 어쩌면 이토록 그립고 아쉬운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정이 솟아오른다. 차 한잔 앞에 놓고 즐겁게 나누던 그 많은 얘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만나지 않은 시간 속에 싸인 추억거리도 없고 생활의 변화도 없으니 당연히 주고받을 대화의 폭도 그만큼 줄어든 게 사실이다. 서로 주고받던 아무 의미 없는 한마디의 즐거운 얘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사랑과 연민을 안고 서로를 아껴주지 않았던가?  일상으로 누리던 차 한 잔의 소중함이 우리에게 준  많은 의미가 소소한 행복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그 차 한 잔 속의 낭만을 그리면서 오늘도 하루속히 여명이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길 기대한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봄밤 2024.04.22 (월)
언제 와 닿았을까벚꽃잎 살랑이는 듯한 손짓어리여린 초록빛 말 한마디깡깡 얼었던 맘을 동그랗게 녹여내고눈 녹아 흐르는 개울물처럼속살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마음이 간질거린다사랑이 왔구나
이인숙
곁에서 2024.04.22 (월)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김한나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시와 종교 2024.04.22 (월)
고통과 시련으로 가슴에 든 멍을 씻어주는시는 훌륭한 마음의 의사무언가 될 듯 안 될 듯할 때의 괴로움이無 자의 깊은 화두가 되어참회의 순간으로 깨달음을 구하네꽃잎이 지고 말라도 봄 날봄바람은 다시 찾아와꽃을 다시 피우고나비로 다가와 시의 향기를 풍기네때론, 울긋 불긋 가을 바람에귀뚜리 소리가 눈물 짓게 하고하얀 눈 발이 날리는 겨울에는외로움에 시를 쓴다네보고 읽고 듣는 시마다시구는 생겨났다 사라져도생의 길잡이로깨달음이...
강애나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