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무지개 실은 배

霓舟 민완기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5-09 09:19

霓舟 민완기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아호’를 하나 갖기로 하였다. 오래전부터 큰 숙제처럼 여겨지던 일이었는데, 유독 금년 들어 그 욕망이 간절해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옥편을 들여다보거나, 좋은 호를 가지신 분들, 특별히 문인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곤 하였다.
 
  사실, 십대 홍안 시절 고교 문예반의 단짝 친구 셋이서 장난 삼아 호를 지어 나누어 가진 일이 있다. 글’翰’자 앞에 아침 ’朝’, 지혜 ’智’, 사랑할 ’慈’를 붙여서 각자가 아침 같은 글과, 지혜로운 글과 사랑이 가득한 글을 써보자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사실 속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집합을 걸어서 빳다를 쳐대는 못난 1년 선배들을 글로 ‘조지자’는 치기 어린 울분의 발로이기도 하였다.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이가 가족이외에는 더 있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모처럼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아호’ 공모의 의사를 한번 타진해보았다. 아빠는 볼수록 매력이 있으니까 ‘볼매’는 어떠한지 라는 작은 아들의 상당히 달달한 외교적인 제안에 급 마음이 흐믓하였지만, 아빠는 한번 했던 이야기를 언제나 마치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하고, 또 하고, 매번 새롭게 시작하시니까 ‘사골’선생은 어떠한가 라는 큰 아들의 멘트에는 급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장 하이라이트는 아내의 제안이었다. 당신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도 알게하기를 좋아하니까 아호로 ‘생색’은 어때요하는 통에 가족 모두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이대로 질 수는 없기에 아내에게는 ‘정색’여사 라는 아호를 반사해서 돌려주었지만…
 
  결국은 자연 현상 중에서 평소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느끼고 좋아하는 무지개를 가지고 호를 한번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살아온 날들 가운데 내게 가장 무지개와 같은 순간들은 언제였는지를 한번 돌아보았다.
 
  캐나다 이민을 선택한 후, 제일 먼저 써서 제출했던 레쥬메가 당시 막 개교한 한 한글학교 교사 응모원서를 위함이었다. 그 학교와의 인연은 사사건건 학사운영을 간섭하는 학교 이사진과의 갈등으로 학교장이 조기 퇴진하는 통에 함께 접게 되었지만, 그 후 프레이저밸리 지역의 한글학교 교사로, 이어서 학교장으로 인생의 황금기인 40대와 50대 초반을 보내면서 생업과 주말 학교 봉사로 그야말로 동분서주했던 시기가 떠올랐다. 당시 학교홈페이지를 제작하면서 대문을 클릭하면 첫 페이지에 어떤 문구를 넣어야 할까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어디서나 당당한 리더로 서기를 원했고, 그러기 위해 자기 색깔이 분명한 가운데, 주변과도 잘 어울리며 화합하는 마치 하늘의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함께 무지개를 만들어 나가요’라는 캣치프레이즈를 만든 기억이 새롭다.       
 
  사전을 검색해보니, 밝고도 선명한 안쪽의 무지개는 숫무지개 ‘虹’(홍)으로 쓰고, 바깥쪽을 싸고있는 눈에 잘 안 띄는 은은한 무지개를 암무지개 ‘霓’(예)로 사용함을 알게 되었다. 이미 耳順을 훌쩍 넘긴 나이에 ‘虹’을 꿈꾸기는 과욕이다. 그리하여 암무지개 ‘霓’를 골랐다. 그리고 남은 과제는 짝을 맞추어 배필이 되어 줄 글자를 고르는 일이었다. 압축을 하고, 엄선을 해서 어린 아이 ‘兒’, 강 ‘江’, 연못 ‘潭’, 글월 ‘文’ 등을 놓고 몇 달을 고심하던 끝에 마침내 배 ‘舟’자를 선택하게 되었다.
 
  문득,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는 ‘무지개와 기왓장’이라는 동화가 떠오른다. 일생을 무지개를 손에 쥐고 오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던 한 사나이가 노년에 늙고 병들어, 깨진 기왓장 두 장을 들고 고향으로 쓸쓸히 돌아온다는 스토리이다. ‘예주’라는 아호를 가지면서 남은 나의 삶의 여정과 항해에는 ‘무지개 언약’이 끝까지 그 배 안에 담겼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엄마의 빨랫줄 2024.05.27 (월)
그 시절 엄마는아침 설거지 마치고이불 홑청 빨래를 하곤 했다커다란 솥단지에 폭폭 삶아돌판 위에 얹어 놓고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고된 시집살이에마음의 얼룩 지워지라고부아난 심정 풀어보려고눈물 대신 그렇게 두드렸을까구정물 맑아진 빨래를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말뚝 박은 빨랫줄에 널어놓으면철부지는 그 사이로 신나서 나풀댔다부끄러운 옷까지 대롱대롱 매달린울 엄마 늘어진 빨랫줄은 마음의 쉼터옹이 지고 구겨진 마음이훈풍에...
임현숙
천국의 삶 2024.05.27 (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시간은 오전 6시경이다. 일어나자마자 수영가방을 챙겨 들고 가까운 스포츠센터인 짐(Gym)으로 운동과 수영을 하러 간다.   봄이 무르익어 어느덧 가로수들이 짙은 연녹색이며 꽃나무들이 한창이다. 1시간 30분 정도 체력운동과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데, 주차장 한켠에 인도인으로 보이는 가족들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중 한 명이 30~40대로 보이는데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은 좀 예리하게...
이종구
  오월 화창한 봄날에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고택秋史古宅을 찾아갔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주택일 뿐 아니라, 조선 말의 문신으로 실학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를 마음으로 만나고 싶었다. 옛 주택은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 앞으로 펼쳐진 넓은 평야에 낮게 솟은 740m의 용산이 배산背山이 되고, 삼교천을 임수臨水로 삼은 추사 고택은 충남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돼 있다. 이 집은 추사의 증조부...
정목일
풍경 소리도 기도 2024.05.27 (월)
절 집 처마 끝물고기 한 마리느릿느릿 헤엄치고대웅전에 든 나의 벗엎드려 드리는 기도그 염원 깊고 깊은데앞 산 푸른 허공에걸렸다흩어지고흔적도 없다다시 밀려오는 구름에자맥질하는 물고기허공이 물속인 듯물속이 허공인 듯달강달강 기도하는달강달강 풍경소리
정금자
보리누름 2024.05.22 (수)
감꽃 피는 긴 해에새털구름 깔리고봄 가뭄 길어지니냇물허리 잘록한데찔레꽃향기 퍼지는하얀 봄날 어신 때아지랑이 현기증을풋보리로 넘은 고개풀칠 힘든 살림에해는 어찌 더디던고애틋한 배고픈 설움서로 기대 씻은 봄
문현주
어느날 갑자기 2024.05.22 (수)
2024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이다. 캐나다 생활 32년만에 정말 꿈같은 일이 이루어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이 한국 생활 9년만에 캐나다로 돌아와서 당분간 지내보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후 나와 아내는 그분들에게 “금방 거주할 곳이 없으면 호텔 대신 우리집으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였더니 서로 좋겠다고 하여 우리 두 가정은 7개월 동안 서로 집을 바꾸어 살기로 하였다.  이렇게 이야기가 된 지 보름만에 그들 부부는...
김유훈
주문 2024.05.22 (수)
토요일 오후 퇴근 길에 스타벅스 커피점을 지나면서 음료를 주문하려고 들렀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보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각자 원하는 음료를 시켰는데, 아내와 큰 아들의 간단한 메뉴 선정과는 달리 딸아이의 기다란 메시지 답장이 왔다.‘그란데 사이즈로 차가운 차이 라떼 한 잔.추가 선택 사항으로는 얼음은 약간, 차이 펌프는 2번만, 블론드샷으로 에스프레소 추가, 그리고, 귀리 우유’메시지를 다 읽고도 한...
정재욱
할머니의 우산 2024.05.22 (수)
얼룩진 우산 만큼 제각기 사연을 가지고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무거운 짐도 마음의 짐도 잠시 내려 놓는다낯선 할머니 한 분버스를 타려는 한 아주머니 우산을 챙겨주고비 옷 입고 서 있는 내게도 자꾸만 기우려 주신다하나 둘 씩 버스는 떠나가고할머니는 누군 가를 기다리는지내리는 사람들 눈치를 살핀다부슬 부슬 내리던 비는 그치고저녁 햇살이 정류장을 비추자불그레진 할머니는 갑자기 환하게 웃으신다구부정한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우산을...
유우영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