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죄 많은 손자를

이은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9-06 11:38

이은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얼마 전 반세기 전 중학교 1학년때 돌아 가신 할머님이 깜박 졸다 설핐 꾼 꿈 속에 찾아오셨다.


중풍을 맞아 2년간 누워 계시다 85세에 돌아 가시기 전 수 십명이나 되던 친, 외손자들 중에 막내와 바로 위의 나를 끔찍이 아끼셨던 밝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캐나다까지 오셔서 꽃 도매상을 구경 시켜 달라고 재촉을 하셨다. 밖이 추우니 겨울 외투를 챙겨 입고 나오라고 하셔서 뒤에서 껴안고 나서다가 깨었다. 몸은 싸늘하게 식어 32도가 넘는 밖으로 서둘러 나와보니, 꿈의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겁이 더럭 났다. 기억에 돌아 가신 후 처음이지 싶어 고국의 본가와 형제들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 형제들 마다 전화를 돌려 보았다.


80이 넘은 누이와 두 형님도, 70대의 두 형님 모두 통화가 안 되고, 코로나 시국에 암투병까지 끝내고 다시 일을 하다가 락다운이라 집에서 쉬고 있다는 막내 동생과 겨우 통화가 되었다. 대외적으로 모두 건강하고 별고 없는 것 같다고 해서, 누님과 산소에 한 번 가서 장마에 무너지기라도 했나 점검해 보라고 했다. 추석이 얼마 안 남아 이미 본가를 지키는 셋째 형님이 잘 관리를 하고 계실 것이란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이 안 놓였다.


인천의 한 고을 주지인 종가 집으로 시집을 오셨지만, 일경의 핍박으로 네 형제 분 가족들이 지금의 부천, 시흥, 광명의 경계에 있는 구석 골이란 산골짜기로 많은 땅도 버린 채 야밤도주를 하셨다고 했다. 어렵게 다시 기반을 잡을 무렵 해방을 맞아 공포에서 벗어 났지만 곧바로 6.25가 터졌다. 세째 할아버님 댁은 인민군 포병들이 숨어 들어 폭격을 맞아 온 가족이 폭사를 했다. 두 집 건너의 우리는 그 폭격으로 집이 다 무너져 불타 없어지고 할아버님은 허리를 다쳐 평생 고생을 하셨다. 막내 고모는 파편이 이마를 깊이 파고 들어 다들 죽는다고 했지만 어느 스님의 조언을 듣고 할머님이 지극 정성으로 약초들을 뜯어 다 살려 내셨다고 했다.


막내 할아버님 댁 당숙은 인민군에게 끌려 가 생사를 모르고, 작은 당숙은 군대에 계셨다. 유복자인 다섯 살 위의 육촌 형 하나를 데리고 십리 밖에 사시는 당숙모 때문에 바쁜 대가족 살림에도 늘 제사며,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틈나는 대로 싸 들고 어린 우리를 앞 세워 찾아 가셨다.


십리 거리에 종친들이 100여가호씩 모여 사는 두 곳의 집성촌의 아이들부터 어른들이 늘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6촌, 8촌들은 방학이면 와서 살다가 가고... 지금도 동갑내기 고종사촌은 외갓집 옆에 살겠다고 본가 바로 옆집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시집 간 여자 조카네도 옆으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다.


종전 후 일제와 6.25 때 구해 주거나 도와준 분들도 명절과 할아버님 생신이면 각지에서 줄 지어 찾아와 술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밤이면 허리가 아프다고 밟아 달라고는 했어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감사할 일이라고 하셨다. 전에는 열 말도 더 들어 가는 독에 우리만의 전통 술을 직접 담가서 대접을 했지만 나라가 안정되며 밀주라고 단속을 했다. 그래서 산을 넘고 저수지를 지나 으스스한 상여 집 앞을 숨죽이고 달음질 쳐야 하는 술 도가까지 심부름을 다녀야 하는 것도 복이라며 우리에게 불평을 못하게 하셨다.


게다가 그 무렵엔 의족이나 갈고리 의수를 무시무시하게 달고 떼로 몰려 다니던 상이 용사들도, 전쟁 통에 미쳐버린 옆 마을 아버지 친구의 누이 분도 다른 집은 안 가도 늘 우리 툇마루에 와서 식사를 해결하고 가게 하셨다. 누추한 복장에 늘 알 수 없는 말을 흥얼거리며 찾아오면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였던 넓은 안 마당에 몰려온 아이들에게 절대로 놀리거나 해꼬지를 못하게 말리셨다.


집성촌 친척들의 애경사 등으로 외출하실 때면 따라다녀야 했던 할머님을 통해 가족과 친척, 이웃, 나라를 올바로 알게 한 내 인성이 성장 했음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운영진의 불평에도 방송아카데미 강좌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해 인성강의를 먼저 하게 했다. 건강 때문에 급히 이민을 안 왔으면 아마 지금쯤은 은퇴하고 고향 산골이나 강원도 산골에 스포츠 캠프촌을 차려 놓고 마라톤과 향토문화, 인성 교육 등을 하고 있지 싶다.


새벽녘까지 한국 가족들이 모두 안녕하시다고 확인을 하고 나니, 초가을 땡볕에 백야드의 꽃들에 물을 주고 뻘뻘 흘린 땀을 시킨다고 샤워를 하고 지하실 냉 골에 요가메트를 깔고 누웠다가 깜박 잠든 손자를 구하러 오셨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할머님은 돌아 가시기 전까지 세상에 캐나다라는 나라가 있는 줄도 모르셨을 텐데 도 찾아오신 걸 생각하니, 70 살이 다 되도록 여러 번 생사의 갈림 길에서 극적으로 구해 주신 분이 누구일까 궁금했던 의문이 풀렸다. 가슴이 미어지며 돌아 가실 때도 울지 않은 눈물이 솟구쳤다.


바쁘다고, 타국이라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도록 제사도 한 번 못 챙긴 죄 많은 손자가 뭐라고...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아빠, 뭐 보고 있어?”이른 아침, 아빠가 텃밭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 무더기 풀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잠이 덜 깬 눈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빠 등에 기대며 물었어요.“아고, 우리 호야 깼구나. 더 자지 않고?”“어? 텃밭 풀이 다 어디 갔어요?”내 키보다 훌쩍 자란 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어요.“우와! 텃밭에 풀이 다 없어져 보기 좋아요. 어젯밤에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봐?”“우렁각시? 하하 맞네. 착한 우렁각시.”아빠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정순
바람 2026.01.30 (금)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만나서 마음속으로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진다. 바람을 쐬러 산책길에 나선다. 머리카락, 피부에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가슴을 열고 하늘을 본다.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감촉을 느끼게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바깥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어야 생기가 날 듯하여, 오후가 되면 산책길에 나선다. ‘바람을 쐬는 일’은 무슨 일인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스스로 물어보기도 한다.운동장을 몇 바퀴 걸으면 마음속으로...
정목일
이민 삼십 년 2026.01.30 (금)
이민자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 할 때마다사람들은 내게 보이지 않는 눈금을 들이민다고향이라는 눈금, 학교라는 치수그들은 나의 과거를 재는 것이 아니라자신들이 밟고 올라설 사다리의 높이를 가늠하는 중이다골목마다 교회 숲을 이루는 도시절 향기는 댓돌처럼 차고 문지방처럼 높다교회의 찬송은 매끄러운 비단처럼 반짝인다사람들은 나를 그 화려한 그물 속으로 초대한다거절의 벽을 허물고 들어가 앉은 식탁 위에서나는 비로소 이방인의 허기를...
전재민
산에는산길에는해 오르고 달 오르는 길이 새롭다 산은철따라 외로움이 피고 지는꽃들의 터전 그리움이 울어넘는산새들의 고향이다 미움도 사랑으로 옷을 갈아 입는아라리 산길 산에 오르면제 마음 봄이되어발걸음이 가볍다 산은오를수록 제 안의 저를 알아가게 하는무언의 스승 그 산길에 오르며 배움이 깊다
유병옥
동쪽의 거리 2026.01.23 (금)
독도가 앞서 밝아올 때울릉도의 등줄기인왕산의 오래된 벽봉황산의 그림자남한산성의 돌땅끝마을의 끝내 닿지 않는 손성산일출봉새천년 해안 샛바람길의 비린 새벽정동진. 호미곶사람들은산과 바다도시의 모서리마다각자의 동쪽을 세운다나는이름 하나 들고서 있었다간절곶아주 오래전간절함이 먼저 와우리 사이에 서 있었고말은해보다 늦었다빛이 오기 전 오빠는부르지 않아도 이미동쪽에 있었다가장 얇은 그 새벽나에게 동쪽은한 사람...
김회자
한글은 계시였다 2026.01.23 (금)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Kpop의 박동, 드라마의 서사, 영화의 감정, 음식의 향기까지. 그러나 그 모든 ‘K’의 중심에는 조용히 빛나는 한글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 살고 나서야 비로소 깊이 깨닫는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도, 기술적 발명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정신이 글자의 옷을 입고 세상에 다시 나타난 계시였다.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의 건국 이념에서 시작된다. 홍익인간—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 이 네 글자는 한 나라의 뿌리가...
심정석
 제목은 거창하게 대화의 기술이라고 했지만, 필자는 언어학자도 아니고 대화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느낀 점들을 개인적으로 피력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고민도 털어놓고 싶고 이런저런 상담도 하고 싶지만, 잘 들어주지 않는 사람과는 말을 섞기도 꺼려진다. 남의 말을...
이현재
태풍 2026.01.23 (금)
난 바다 어디쯤외눈박이 눈을 하고달려오는 바람 하나거침없는 생이 부럽다 나 그렇게뜨겁게 산 적이 있었던가그렇게 겁 없이사랑한 적 있었던가 젖은 머리 풀고 질주하는구름기둥 끝에 매달려짧고 굵게 살다 죽는비결 한 수배워야 할까 보다
정금자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