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1월, 해오름달

강은소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2-10 16:37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하늘을 나는 새의 꿈은 무엇일까. 흰머리수리(Bald Eagle) 한 마리 길 위 전깃줄에 앉아 꼼짝 않더니, 순간 발을 뒤로 차면서 활짝 편 날개로 높이 올라 빙글빙글 맴돌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커다란 저 날개는 새를 더 높이 더 멀리 날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새는 들판을 지나 산을 넘고 호수를 건너 바다를 만나고 어느 날엔 미지의 섬에 닿는다. 사철 때때 꽃이 피고 밤마다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청정무구한 그 섬. 새는 그곳에 꿈의 둥지를 틀고 아름다운 노래를 영원한 전설로 남긴다.

 

해오름달, 한 해의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아침이다.

새 해가 뜨고 멀리서 다가오는 시간을 위해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닫힌 마음의 창문을 연다. 창밖 멀리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새벽에 만난 흰머리수리를 다시 떠올려 본다. 머리와 꼬리는 흰색의 깃털로 덮여 있고 기역으로 꼬부라진 노란색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맹금류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샛노란 홍채가 주는 묘한 기운에 범접할 수 없는 그를 오랫동안 신성시하며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다. 언제부턴가 흰머리수리 한 마리가 빙빙 주변을 돌며 말을 걸어온다.

호수 둘레 길을 돌 때마다 그를 만난다. 출발지점으로 돌아올 때 즈음 지친 발걸음이 지루하다고 느낄 때쯤 기슭의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아래를 살피는 그를 발견한다. 어떨 땐 새끼들과 물놀이하던 어미 오리의 모성본능 때문에 물속 먹잇감을 포기하고 물러서는 그를 만나기도 한다. 섣부른 오해로 야단법석을 떠는 오리에게 베푸는 큰 새의 깊은 너그러움을 배운다. 흰머리수리는 절대 새끼 오리를 탐낸 것이 아니라 수면에 어른거리는 물고기를 노린 것이라 믿는다.


호수공원 잔디밭에서 맞닥뜨린 또 하나 진풍경이다. 내장이 다 드러나 생피를 흘리는 몸통이 어른 팔뚝만 한 물고기를 뜯고 있는 흰머리수리. 그 부리 앞에서 까마귀 수십 마리가 넌지시 지켜보고 있다. 한 점이라도 뜯어보겠다는 간절한 조바심을 숨긴 채 옆 눈짓을 하며 때를 기다린다. 아랑곳없이 물고기를 뜯는 듯하던 그는 어느 정도 배가 부른지 훌쩍 허공으로 오른다. 틈새를 놓칠세라. 혹여 그가 다시 자기들의 득템 먹이에 내려앉을까 경계를 하는 와중 서로 뒤엉켜 겨우 한 점 얻은 살점을 어딘가 숨겨놓고 다시 달려드는, 잔머리 지수가 높은 까마귀들의 난장이 열린다. 볼썽 없는 까마귀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일까. 흰머리수리는 날개를 넓게 펴고 난장판 위를 천천히 여러 번 돌더니 먼 하늘로 유유히 사라진다.


썰물 때다. 후미진 만의 갯벌과 자갈밭을 두리번거리며 갈매기들과 어울려 산책을 즐기는 흰머리수리를 본다. 그의 걸음걸이는 웃음이 절로 나게 한다. 덩치 큰 새가 발을 한쪽 씩 덤벅 더엄벅 떼는데 양쪽 어깨가 번갈아 기우는 모습이 사나운 날짐승이라는 생각을 잊게 한다. 작은 새들 또한 크게 개의치 않고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러다 먹거리를 먼저 발견한 새가 한입 맛을 보고 자리를 뜨면 지나는 다른 새가 맛을 본다. 각기 여기저기 널려 있을 먹을거리를 찾으려 할 뿐 먹거리로 싸우려 드는 새는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자연이 소리 없이 보여주는 공생의 멋이다.   


우연히 또 한 마리의 독수리 블로도론을 만났다. 블로도론은 북유럽의 고대 시가에 언급되는 종교적인 처형 의식이며 영어로 피의 독수리(Blood Eagle)’라 일컫는 아주 잔인한 처형 법이다. 명예와 수치심을 중요한 근거로 법을 다스리던 바이킹에게는 가장 극형의 처벌이며 왕이나 귀족에게도 예외는 없다. 이 처벌이 정말로 이루어졌던 것인지 아니면 고대 문헌 속 은유적인 묘사였는지의 논쟁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블로도론은 바이킹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로 다가온다


  TV드라마 바이킹스(VIKINGS)’는 적나라한 피의 독수리를 보여준다. 카테카트 출신의 전설적인 영웅 라그나르는 배신을 조장하며 자기에게 도전한 고타랜드의 우두머리, 얄 보그를 피의 독수리로 처형해 그들의 신, 오딘의 제물로 바친다. 라그나르는 자신이 집행자가 되어 얄 보그의 양팔을 벌려 묶은 채로 무릎을 꿇어앉게 한 뒤, 날카로운 도구로 등을 가르고 척추에서 갈비뼈를 떼어내 양방향으로 벌린 다음 날개 모양을 만들고 그 칼날로 허파까지 끄집어낸다. 벗겨진 등가죽과 벌어진 갈비뼈는 한 쌍의 날개를 이루어 뼈와 허파가 늘어진 독수리의 형상, 마침내 피의 독수리가 된다


북유럽 신화는 전한다. 피의 독수리가 침묵으로 고통을 이겨낸다면 전사자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신의 전당, 발할라(Valhalla)로 들어갈 수 있으나, 고통을 못 이겨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를 낸다면 결코 그 통로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명예와 수치심을 다스리는 바이킹의 용감무쌍함을 강조한 이야기다.


얄 보그는 피를 철철 흘리며 완전히 숨이 멎을 때까지 비명 한번 지르지 않는다. 그는 강인한 바이킹 전사로 죽음을 마주한다. 결국, 죽음에 이르러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 이치를 간과했던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을 깨닫지만, 라그나르 앞에서 솔직히 시인하는 용기 있는 전사의 모습으로 고통과 피의 강을 조용히 건너간다. 이제 그의 영혼은 전사자들의 낙원, 신의 전당에 들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오늘은 두 마리 새가 어깨를 맞대고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떠오르는 해는 어두운 시간의 티끌조차 흔적 없이 걷어내고,

비익裨益의 날갯짓은 우리가 꿈꾸는 참 세상 그 문을 향한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장례 사전 준비 세미나를 찾았다.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이 보인다. 오랫동안 그를 만나고 싶었다. 한 생(生)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실을 경험한 이, 그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이다. 죽음은 인생이 피할 수 없는 필연이지만, 종잡을 수 없고 순서가 바뀐 죽음은 한(恨)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 슬픔에 매몰되지 않기를 선택한 사람, 나는 그런 삶을 만나면 다가가 말을 걸고 싶다.    매일이 지옥 같아 꿈이길 간절히 바랐던, 살아갈...
김한나
소왕국의 기쁨 2026.07.10 (금)
모난 돌 갈아내고주저앉는다발 틈새로 스며드는호박꽃만 한 기쁨좌절이 깊을수록곱절로 커진다 꽃잎에 새겨진 은빛 부채살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텅 비워진 마음,볕드는 텃밭을 보니수많은 생물이 모여 산다혼란한 마음에커다란 파문이 번진다세상을 아랑곳하지 않는이름없는 소왕국쏟아지는 햇살이면 족하다
반현향
홀로서기 한지 어느새 오 개월이다. Burnaby Hospice Society로부터 연락받고 몇 주 전부터 Grief Coffee(위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모임이다. 8주에 걸쳐 매주 한 번씩 만나서 인도자 따라 이야기를 나눈다. 15명 정도 둘러앉아 자신을 소개하고 떠나간 사람에 대하여 회상하며 마음에 쌓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이다. 어떻게 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느냐는 인도자의 물음에, 어떤 이는 지금이...
김진양
寺門이 먹을 갈다 2026.07.09 (목)
사람들이 드나드는 방 입구에 붓끝에 물을 묻혀 쓱-쓱- 길게 세로 종縱 일자로 화선지를 깔아 놓고 스님은 저 뒷방에 가 앉아 먹을 가신다 온갖 사람들은 화선지를 밟고 지나가고 나는 조바심으로 문진文鎭을 이리저리 옮겨 놓는데 스님은 먹 갈던 손을 멈추고, 누군가, 알 듯 모를 듯한 누군가가 그림자처럼 끼어들어 창문을 뛰어내리려는 한 여인을 커튼 자락으로 확 묶어놓고 있는데 스님은 긴 화선지를 다시 펼쳐 *‘수거재오지...
이영춘
닻별 동산 2026.07.03 (금)
영원한 어둠은 없다.  북극성도 움직인다. 우주에 고정되어 있는 자리는 없다.  오래 고정된 자리는 빛을 잃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지구의 반쪽은 검은 바다처럼 깜깜했고, 행복도시 닻별 동산은 푸른 소나무들 속에 붉은 기도는 보라색 미선나무가 하얀 꽃망울을 머금고 희미한 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빛과 어둠이 톱니처럼 맞물려 도는 동산에서 수목장 수목들은 바람에 이름표를 흩날리며 빛이 어둠을 삼키기를 기다렸고,...
박병호
5월은 꽃의 계절이다. 장미가 피고, 백합이 향기를 내고, 거리마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 그러나 나에게 5월은 아름다움만으로 기억되는 달이 아니다. 오래전 아내를 떠나보낸 달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5월이 오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사진첩을 들춰 보기도 하고, 오래전에 써 두었던 글들을 다시 읽어 보기도 한다. 세월은 많은 것을...
우제용
조금만 더 가 보자며걷던 길에서어느새 우리 부모 돼 있었고 조금만 더 참자며견딘 시간은어느새 우리 이렇게 늙어 있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평범 한 일오르내리는 산길을 걷듯... 오르막 산길은 발 끝에 채이는돌뿌리만 보이는데내리막 산길은죽자고 허둥대는사람들을 보여 주네. 풍경은 말없이 서서우리가 걷는 길이언제나 힘든 오르막 길 만은아니었다고말없이 쌓이는 먼지 같은먼지 같은 위로를 주네바람 불면...
조규남
한 알의 씨앗이 흙으로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누군가에게는 추락처럼 보일그순간을씨앗은 조용히 받아 들이고 있었다.스며드는 어둠은그에게 처음 머무를 자리였다.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씨앗은 묵묵히 숨을 고른다.누구의 설명도, 어떤 손길도 없이그 고요 속에서 제 얼굴을잃지 않는다.나는 그 침묵의 단단함 앞에서오래 멈춰 섰다.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틈에서작은 떨림이 흙을 밀어올린다.선언도 , 장면도 없다.잃지...
이봉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