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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10-28 08:54

박정은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얼마 전 지인이 병원일로 물어볼 게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간호사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문의를 자주 받곤 한다. 질문의 요지는 이거였다. “우리 직원 남편이 어제 911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대. 옆집 사람이 알려줘서 그걸 나중에야 안 거야. 그래서 급히 병원으로 가봤는데 간호사가 환자가 어디 있는지 상태는 어떤지 전혀 알려주질 않더래.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거 분명 병원에서 의료사고 같은 거 내놓고 뭔가 숨기려고 그러는 거지?”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살다가 중간에 이민을 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캐나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입을 다물 땐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환자가 누구한테도 자기 상태를 말하지 말라고한 거다. 의사나 간호사는 환자의 비밀을 절대 누설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하고 이 일을 시작을 한다. 그런데 그 비밀 누설의 범위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에선 환자 가족에게 상태를 말하는 건 비밀 누설에 해당되질 않는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아프면 가족 전체가 함께 그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하는 게 한국의 문화이다. 그런데 캐나다에선 직계가족 중 누구에게만 알리라고 할 때도 있고, 환자 본인만 알겠다고 할 때도 있다. 캐나다가 상당히 개인중심이라면 한국은 가족중심의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도 있다. 한국에서 이민 온 20대 청년이 코피가 자주 나 병원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검사결과가 얄궂게도 ‘급성백혈병’으로 나온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캐나다와 한국이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이런 경우면 한국에선 미혼인청년에게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한다. 그리고 닥터는 부모님에게 환자의 상태를 알린다. 그럼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들에겐 우리가 천천히 말 할 테니 당장은 알리지 말라고 한다. 그리곤 온 가족이 동원돼 사방팔방으로 치료방법을 찾으며 대처를 시작한다. 그런데 캐나다에선 18세 이상 환자에겐 단도직입적으로, “당신 급성백혈병입니다. 이런 저런 치료 방법이 있고, 이걸 안하면 2주밖에 못삽니다.”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해버린다. 처음 이 말을 듣고 그 한국청년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는가! 한국 의사들이 환자를 배려하느라 가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결과를 알리는 반면, 이쪽 의사들은 인정머리라곤 손톱만큼도 없이 대놓고 강펀치를 먹여버린다. 결국 이 청년은 그 냉정한 의사에게 처음부터 깊은 불신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 있던 부모님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안 받는 분들이라서 아들에게 일단 수혈을거부하며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급한데도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자 의사가 방으로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주 구체적으로 얼마나 상태가 나쁜지, 계속 치료를 거부하면 일주일도 안 남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나갔다고 한다. 이에 이 청년은 주위 사람들에게, “의사가 자기가 하라는 대로 안 하니까 이젠 뻥을 쳐가며 협박까지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가운데 우왕좌왕 치료시기를 놓쳐버린 청년은 의사 말대로 진짜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를 내게 전하던 지인도 환자가 얼마나 무서운데의사가 어떻게 그런 협박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캐나다에선 그건 협박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설명을 해준다는 차원이다. 혹시 환자가 잘 몰라서 그런 선택을 했다면 그 책임은 모두 의료진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추가설명을 했을 텐데, 그런 게 익숙지 않았던 청년은 그걸 협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불신과 오해가 없었다면 적어도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가진 않았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 캐나다 어느 쪽 접근법이 더 나은지 쉽게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은 가족을 완충재 삼아 환자에게 충격이 덜 가게 하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병원에서 일할 때, 쇼오피(show operation)라는 것을 보곤 했었다. 회생 불가능한 말기암인데도 가족들이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꼭 수술을 해달라고 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수술이다. 실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머리만 열었다가, 배만 열었다가 닫는 가짜로 하는 수술을 일컫는다. 환자 상태를 가족만 알지 본인이 정확히 몰라서 가능한 일이다. 이런 수술을 받고 나온 환자를 간호할 때면 일정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라는 주의가내려지니 혹시라도 말실수를 할까 싶어 가능하면 사무적인 태도로 가면을 쓴 채 환자를 대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진실을 가려 유지하는평화가 너무 아슬아슬해 보여 가능하면 그 사이에 끼지 말자는 심리도 있었을 것이다. 과연 이런 불필요한 수술과 고통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게 맞을까? 이게 진짜 환자를 위한 것일까? 물론 가족들 입장에선 뭐라도 해봐야지 손 놓고 지켜본다는 게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고통을 안겨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환자에게 진실을 직접 알리는 게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한없이 흔들리곤 했었다. 나라면 진실을 정확히 알고 싶을 것 같았다. 그렇게 눈앞에 닥친 끝을 감지하지 못한 채 주변정리도 못하고 황망하게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캐나다에선 말기암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하고 싶은 걸 다 하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자기 상태를 정확히 알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환자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주느냐 마느냐를 떠나, 결국 그 사람의 삶이니 모든 결정과 선택을 본인이 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이 아프면 외로울 수밖에 없다. 수술장에도 혼자 들어가야 하고, 치료도 고통도 죽음도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이 진실을 직시시키는 게 캐나다 방식이 아닌가싶다. 이런 다른 병원 문화로 인해 괜한 오해와 불신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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