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죽는다는 말

윤의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10-07 11:24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만, 지난해 나는 예상치 못한 일들로 학교에 불려갔던 일이 있다. 캐나다에서 지낸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던 터라,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조금은 방심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놓고 있다가 불쑥 학교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크게 당황했던 일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학교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먹거리들을 사러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둘러보고 필요한 물품들을 카트에 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진동했다. 발신인을 보니 학교 오피스다. 대체로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이 아니기 때문에 덜컥 걱정도 되고, 궁금함도 일었다. 무슨 일일까? 아이가 무엇을 놓고 갔는가? 다쳤는가? 걱정을 담아 전화를 받았다.

 놀랍게도 사무실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심각한 목소리로 간단한 상황과 입장을 이야기하더라. 내용인 즉 우리 아이 둘이 학교 내에서 형제 다툼을 벌이다가 ‘죽인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고, 이 사항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기 때문에 나와 직접 대화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조금 놀랍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겨우 대화 중에 일어난 작은 일로 전화를 하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던 것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서 찬찬히 대화를 나눠보니, 아이 둘이 대화를 하며 격앙된 소리로 ‘죽을 줄 알아!’라고 했고, 그것을 궁금해하는 교장 선생님께 번역을 해서 알려주며 ‘킬(kill)’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했나 보더라. 아이가 좀 어려서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캐나다식으로 순화해서 설명하는 것도 잘하지 못했던 듯했다. 어쩌면 본뜻을 전달하지 못한 채 왜곡된 말을 했던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알았으니 이걸 전달해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더라. 영어 실력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문화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것부터 해야 했으니 말이다. 최대한 설명을 하다가 결국 그 다음 날 통역까지 와서야 일이 해결되었다. 정확히 한국 문화를 설명해주시고, 이해를 시켰고 나도 여기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처리 과정에 물론 감정적으로 짜증도 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헤매기도 했지만 잘 일단락되었다는 것이 안도했던 경험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이 쉽게 ‘죽인다’는 말을 하게 된 배경엔 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도 이런 언어사용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 자신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더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참으로 ‘피곤해 죽겠다.’, ‘죽을 줄 알아’. ‘죽는다!’ 하면서 쉽게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하는 언어 습관의 모델은 분명 나다. 영어를 쓰는 캐나다에서 한국어 언어 습관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습관들 에도 눈을 뜨게 되기도 했다.

 자극적이고 불편한 말들을 써야 의사가 잘 전달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참으로 나쁜 단어들이 언어 속에 이리저리 박혀있는 것들이 그제야 보이더라. 아마 그 안에 젖어서 채 알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떨어져 여기서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이들이 배우는 한국어는 옳고 바르게 하리라. 그런 다짐도 했다. 오롯이 나의 거울과도 같은 모습으로 성장할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바른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다시 만나는 길 2026.05.01 (금)
길을 가다 길이 나누어지는 곳에 꽃을 심는다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던 길가다 보면 곧은 길은 휘어지고가는 이도 길 따라 굽어지고저버렸던 것들이 휘돌아 다시 올지 모를 기로에하얀 물망초 잠잠히 피어 서성인다
자명
뉴욕 일기 2026.05.01 (금)
금발의 미녀가 귀여운 개를 이끌고 허드슨 강변을 거닐고, 노부부가 산책하는 센트럴 파크의 한가로움, 월스트리트를 숨 가쁘게 오가는 화이트칼라들의 모습은 절묘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TV 화면을 통해 비추어지는 이곳 맨해튼은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하게 되는 도시다. 그러나 처음 발을 내디딘 이들은 한결같이 실망과 당혹감을 경험하곤 한다. 지독한 교통체증, 좁고 불결한 거리, 곳곳에 늘어선 부랑자들과 끊이지 않는 사이렌 소리. 비라도...
자명
다시 피어나는 꽃 2026.05.01 (금)
나는밴쿠버의 봄 한가운데다시 선다고요히 숨을 고른다흐드러진 꽃들 사이아직 피지 않은 하나보이지 않는 곳에서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긴 겨울은나를 꺾지 못하고도리어 나를 묻어더 단단히 길러냈다이제는 안다피어남이란우연이 아닌의지의 시간임을한 번 더스스로를 일으켜나의 자리에서새벽 머금은 불빛으로            A Flower Blooming...
로터스 정
AI와 망설임 2026.04.30 (목)
“와! 이걸 정말 직접 작곡을 하고, 노래도 하신 거예요?” 노래를 듣고 놀라서 물어본 질문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직접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이고, 보컬(음성)까지 넣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예전 ‘시리’와 ‘알렉사’처럼 단순히 사람이 시키는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처럼 예술 창작분야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나도 AI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궁금한 점이 있거나, 문제가...
정재욱
미움보다 외로움이 낫지 않겠는가아픔보다는 그리움이 낫겠지마주하여 괴로움이 끓는다면돌아서서 우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내 혀에서 독이 날름거리고눈에서 불똥 갈퀴가 할퀴기 전 그래길게 바람 한 번 들이켜고뜨거운 서러움 꿀꺽 삼키고돌아서서 홀로 걷는 거야 가는 길에 품은 악은 날려 버리고가득 찬 혀의 독을 묻어 버리면아린 마음 그나마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그래!믿음을 저버린 배신의 어둠 앞에서까짓 것 눈 한 번 질끈...
한부연
헉, 헉, 심장이 터질 듯 다리가 마비될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의 뇌는 달리고 있는 다리, 정확히 말하면 허벅지 뒤쪽 근육, 햄스트링에 계속 더 힘을 내 달리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십여 분간 뇌와 다리가 사투를 벌인 끝에 나는 마침내 목표선을 통과 했다. 완주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만족스러운 기록에 나 자신을 조용히 칭찬했다.   나는 사십 년 넘게 달리기와 함께 살아왔다. 처음에는 체력...
정효봉
Hole 2026.04.24 (금)
전혀 다른 우리의 시작에시간과 공간은 우리를 감싸안았다 지금도 사진처럼반짝이는 특별했던 순간들서서히 희미하게 사라지겠지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는다모든 별들의 죽음이 이미 예고되었듯이 안으로 침잠하며 검게 타오른 불길은끝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평선을 그려내었다 남은 마음이라고는후 불어 날릴 재뿐이라도아주 잃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디에든어떻게든무엇으로든 존재할...
이인숙
프레이밍 효과 2026.04.23 (목)
“프레이밍 효과 ( Framing Effect )” 라는 이론이 있다. 이 프레이밍 효과란 “어떤 사실을 전달할 때 그 사실을 어떤 틀 안에 넣어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라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액자 효과” 또는 “틀 짜기 효과” 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면 물이 절반가량 들어 있는 컵을 보고 A는 “물이 절반 밖에 없네. 다 없어지기 전에 빨리 마셔야지” 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반면 B는 “물이 아직 절반이나...
정관일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