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인연

김베로니카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4-08 15:57

김베로니카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언제부터인지 원하지도 기다리지도 안았지만 슬그머니 옆에 와서 내 인생에 한발 디밀고 길동무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도 때가되면 소리 없이 소멸하고 스치듯 왔다가 사라져가는 자연과 우주의 삼라만상과 더불어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그중에서 우연처럼 만나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만남도 있지만 기억하기조차 힘든 그런 인연들도 많은 것 같다. 시작은 좋은 인연처럼 보이지만 끝에는 서로 상처만 주고 마는 그런 만남도 무수히 많다.

우리가 맺은 인연 중에는 하늘이 맺어준다는 부모와 자식 사이, 또 형제, 자매로 만나는 그런 사인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 생각된다. 그 필연도 가끔은 깨어지고 서로 상처내고 아픔으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사람은 그 인연 줄만은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 부부의 연은 정말 끈끈한 동아줄로 연결된 것 같다.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 했던가? 80, 90이 된 부부들도 이혼 하는 요즈음 시대를 돌이켜보면 부부가 만나서 끝까지 같이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권력을 가진 이들보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더 성공한 경우는 한 가정을 끝까지 지키며 자식들 다 잘 키우고 백년해로 한 사람들이다.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진 두 손을 마주잡고 저녁 노을 지는 해변을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아름다운 인연을 본다.

세상을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 삼라만상과의 인연도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내가 한국이란 땅에서 태어나서 그 나라에서 모든 것 누리고 살다가 먼 이국땅 밴쿠버에 온 것도 이 땅과의 인연이 나를 불러온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소유한 모든 물건들도 나와의 인연이 끝나는 날 내 곁을 떠나고 눈에 익은 아름다운 자연도 언젠간 내가 떠남으로 또 다른 풍경을 내 앞에 펼쳐준다. 모든 생명체들도 나와의 연이 끝나면 내 곁을 떠난다. 하물며 내가 사는 집도 인연이 닿아야 그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소유한 소소한 모든 것들도 나와 인연이 끊어지면 어디 론지 사라진다. 만나고 헤어지는 연습에 익숙해지려고 발버둥 친다고 어찌 다가오는 이별을 거역할 수가 있겠는가?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연히 몇 번 스쳐 지나다 인연이 된 아름다운 만남도 있다. 생각이 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그리움은 마음속으론 보고 싶지만 만나지는 못 하는 애틋한 인연이다. 십 수 년이 지나서 우연히 다시 만난 인연은 아마 세상 끝날 때 까지도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기억일 될 것이다.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못 볼 지도 모르지만 간직하고픈 그런 인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마도 다시 못 만나서 더 아쉬움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그런 만남이 있지만, 기억 속에 지워 버리고 싶은 그런 만남도 우린 지니고 살아간다. 우연히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언젠간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날 거기서 볼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순간 내 가슴은 죄인인 양 콩닥거리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그 자릴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잘 못은 그쪽이었고 나쁜 짓을 한 것도 그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럴까 생각도 해 봤지만 내가 그렇게 야무진 사람이었다면 당하지도 않았겠지 하는 생각에 어서 벗어나 만나지 않는 게 났겠다 싶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나에게도 있다는 게 새삼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런 일에 휘말려 들었단 사실이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다는 생각에 한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줄을 놓지 못하고 애태우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몇 날밤 잠을 설쳤다.

좋고 아름다운 인연은 내가 힘들지도 않고 내가 그 줄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모든 게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술술 풀리면서 좋은 결말을 가져다준다. 내가 살아온 길 또 앞으로 내가 살아내야 하는 많은 날에 우연히 만나는 그런 만남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요즈음 내 주위를 돌아보면 참 고맙고 좋은 인연들이 많다. 생각만 해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귀한 사람들이다. 내 행동이나 마음이 좋은 향기를 풍긴다면 주위엔 좋은 인연들이 모이겠지만 내가 부정적인 생각과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면 좋지 않은 악연을 맺을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지만, 그 스친 인연을 내가 좋은 인연으로 잘 다듬어야 한다. 나에게 손 내민 그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 하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잘 마무리 해야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은 많은 인연 중에 우리 기억에 남는 그런 이름다운 만남을 아쉬워하며 그리워하기 전에 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인연 들을 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 치 앞도 안 보일 만큼 힘들고 아플 때 내 곁을 지켜주는 그 사람이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인생길에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련한 인연들은 불어오는 봄바람 꽃잎에 실어 보내고 내 옆에 남아있는 그 인연 보듬어 시작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다. 그 인연이 끝나는 날 내 영혼은 영원한 여행길에 올라 더 이상 슬프지도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는 천상의 인연을 만날 것이다.

“인연은 억지로도 안 되고 애가 타도 앞으로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 지금 너한테로 누가 먼 길을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는다.” 는 고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나오는 그 구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프랙탈 2024.06.07 (금)
“오늘의 헤드라인 뉴스입니다. 어제 오후, 속칭 <버뮤다 연쇄살인>의 여섯 번째 희생자가, 다섯 번째 희생자 이후 불과 7주만에 발견되면서 사회를 다시 충격에 빠뜨린 가운데, 오늘 경찰은…” 고준호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양손으로 뼈채 들고서 발라 먹던 고기를 잠시 내려놓고,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TV 리모컨을 집어올려 홈쇼핑으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고기를 먹으면서 연쇄살인 어쩌구 하는 얘기를 듣기에 고준호 씨의...
곽선영
이민자의 특징 2024.06.07 (금)
  ‘동양의 도학은 약육강식을 부도덕이라고 하지만 서양의 철학은 이기는 자만이 생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글을 인용한 것은 과거엔 이민을 운명, 팔자, 역마라 치부했다면 현재는 용기 있고 강한 자의 결단과 도전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의 방법은 초기엔 간호사나 재봉사 등의 기술이민이 주였다면 지금은 독립이민, 기술이민. 투자이민, 초대 이민 등 다양한 통로가 있다. 초기엔 전문직이 일반적이지 않았는데 이민의...
이명희
나물 캐는 아낙의 시선 피하여길섶 풀숲 속숨어 핀 샛노란 민들레해를 사랑하여환한 꽃 피우고임 온기 느끼며 길가에 서 있다가흰 나비 애무하고 떠나간 뒤날개 단 홀씨 한 다발 들고초원 지나갈 바람 기다린다오! 바람이여저 멀리 하늘 끝에 계신 내 임에게로Please! send seeds beyond the cloudsto the end of the sky
김철훈
강물을 보네깊어지며 흐르는 거역 없는 몸짓을 보네하루를 다 날아온 고단한 태양을 눕히고어느 산기슭 떠나온 나뭇등걸도 함께 눕히고강물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나를 보네팔랑이는 잔물결들 사이로 얼핏 설핏 보네정(精) 때 묻은 부모 형제 다 두고태평양 큰물 건너오던 반세기 전 그날비단결 검은 머리 스물여섯 살 새아씨여!세월을 보네꿈, 좌절, 인내들이 들락거린 한 세월을 보네일곱 번 넘어지면 여덟 번째 일어서면서고향 떠나 멀리 또...
안봉자
세 번의 외과수술 2024.06.03 (월)
우리는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여 새롭게 나날이 달라지는 세상을 산다고 했더니 어느 날 주위를 살펴보니 100세 이상 사시는 노인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60세 환갑잔치를 요란하게 치르던 때도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환갑잔치가 사라졌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100세 잔치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도 아니다. 수명이 늘어난 것은 의료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덕분이다. 이런저런 수술로 죽을 사람이 죽지 않고...
심현섭
감자 꽃 향기 2024.06.03 (월)
“할무니, 왜 이쁜 감자 꽃을 다 따분당께라우?” “꽃을 따내 줘야 밑이 쑥쑥 든다고 안 그러냐?”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까. 할머니를 따라 밭에 나갔다. 할머니는 밭을 한 바퀴 휘 둘러보시더니 감자 밭으로 가 감자 꽃을 따기 시작했다. 꽃은 꽃이고 밑은 밑일 텐데 어린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니 어미가 감자 꽃을 참 이뻐했느니라.” 하시더니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가? 순간 흐린 기억으로 어머니가 감자 꽃을 바라보고...
최원현
오 월 찬가 2024.06.03 (월)
상큼한 산들바람 손등 스치고 지나가면나무를 건너뛰던 다람쥐 나도 보아 달라하고 작은 무도회를 연캐나다 구스 공연 햇살도 왜 나는 안 봐주냐며무릎에 앉았다 눈으로 보아도 들리는 님의 소리처럼
전재민
엄마의 빨랫줄 2024.05.27 (월)
그 시절 엄마는아침 설거지 마치고이불 홑청 빨래를 하곤 했다커다란 솥단지에 폭폭 삶아돌판 위에 얹어 놓고탕탕 방망이질을 해댔다고된 시집살이에마음의 얼룩 지워지라고부아난 심정 풀어보려고눈물 대신 그렇게 두드렸을까구정물 맑아진 빨래를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말뚝 박은 빨랫줄에 널어놓으면철부지는 그 사이로 신나서 나풀댔다부끄러운 옷까지 대롱대롱 매달린울 엄마 늘어진 빨랫줄은 마음의 쉼터옹이 지고 구겨진 마음이훈풍에...
임현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