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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전문인 "청능사"가 되기까지, 실비아 김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5-30 15:19

30대 중반을 넘어선 그녀에게 어느 날 문득 주어진 질문.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아니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일까?”

대학 졸업 후 외국계 광고회사에서 일하게 됐고, 이후 10년 넘게 한길만을 질주하던 그녀였다. 브레이크가 걸리기 전까지 모든 게 좋았다, 광고 기획자로 불리는 삶과 그 일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전략을 세우고, 그래서 마침내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그런 일들에 많이 끌렸더랬죠. 방송에서, 신문에서, 그리고 잡지에서, 내가 만든 광고를 접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때는 큰 재미였습니다.”

일본과 홍콩 지사 근무를 거친 그녀에게 회사는 국장이라는 직함을 내주었다. 이른바 커리어우먼으로서 화려한 이력을 보유하게 된 것.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흔들렸다. 앞에 언급한 질문에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해서였다. 고민의 시간만 약 2년이었다.
 
일단 어디론가 떠나기로 했다. 떠나야만,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야만, 오랜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디올로지스트(Audiologist), 한국어로 옮기면 “청능사”로서 인생 2막을 연출 중인 실비아 김씨의 스토리다.



잘 다니던 직장, 사표 낸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왜 그러는데? 뭐가 문제인 건데?”라는 반문으로 정리됐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기 힘들었다. 결국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고, 얼마 안 있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머문 시간 6개월. 실비아씨는 한 기업을 위한 광고가 아닌, 자신의 인생만을 온전히 기획했다. 결론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것으로 내려졌다. 그녀가 선택한 전공은 청능학이었다.


왜 하필 청능학이었죠? 전직 광고 기획자와 청능사, 둘의 조합이 좀 어색해 보이는데요.
무엇을 공부할 지 고민하던 차에, 스스로 보건의료 쪽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의학이나 건강 관련 서적을 좋아했고, 신문을 펼쳐도 그런 기사들에 먼저 눈이 가곤 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의대 진학을 염두에 뒀습니다. 아마 나이가 좀 더 어렸거나 은행 잔고가 넉넉했다면 그 생각대로 밀어부쳤을 거에요.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달리하게 된 거군요.
의료 보건 쪽으로 진로를 정한 상태에서 의사 말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모든 직업군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이때 언어 치료사, 작업 치료사, 나중에는 청능사에 대해서도 알게 됐지요. 

여러 직업들 중 청능사를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당시 남동생이 군대에서 제대했는데, 귀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그것이 청능사를 좀 더 생각하게 된 이유에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는데, 솔직히 청능사라는 직업이 좀 낯설게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 특히 한인들은 청능사라고 하면 대부분 보청기를 연상하지요. 보청기를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것이 청능사의 주된 업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고…. 하지만 이 일은 전문 과정 이수자(Hearing Instrument specialist)도 할 수 있어요. 청능사에게 주어진 권한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합니다. 병원에 취직해 심도 깊은 청력 검사를 담당할 수 있고, 제조업체나 연구기관으로도 진출할 수 있지요.

청능사가 되는 것,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울 것 같은데요. 
일단 기본적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쳐야 합니다. 그 뒤 관련 시험을 통과해야 청능사 자격이 주어지죠.

실비아씨는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 궁금합니다.
첫 단계는 철저한 사전조사였어요. 미국보다는 캐나다내 학교에 마음이 더 갔는데, 유학생들한테는 학비를 훨씬 더 많이 받더군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라 이참에 아예 이민을 하자, 라고 작심했지요. 다행히 입학 허가서를 받는 거의 동시에 이민 서류가 통과됐습니다. 제가 선택한 학교는 웨스턴온타리오대학(UWO)이었습니다. 캐나다내 영어권 학교 중에서 청능학 과정이 있는 대학은 UBC를 포함해서 세 곳이 전부인데, UWO도 그 중 하나였어요. 





<▲ >


힘든 과정 거친만큼 취직은 쉽고 대우는 달콤

곧장 대학원에 진학했나요?
아니요, 학부 과목 몇 개를 더 들어야 했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하려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었거든요. 관련 학점을 취득하기까지 2년이 필요했습니다.

공부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된 거니까….
공부 자체는 즐거웠어요. 공부가 쉬웠다기보단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 원래 좀 없었거든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립감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런 감정에 많이 시달렸지요. 20대 어린 학생들이랑 무슨 할 얘기가 많았겠어요. 이렇다 할 대화 상대도 없었고, 학교와 집만을 왔다갔다 하는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지요.

심리적으로 꽤 지쳤겠네요.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어요. 한국으로부터 일자리 제의도 여럿 있었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캐나다에 계속 남은 이유가 물론 있었겠지요.
UWO 학부 시절, 제가 힘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한국에 돌아간다고 해서 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됐을까요? 예전처럼 다시 광고 일을 하게 되면 내가 행복해졌을까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해도, 얼마 안 있어 원래 했던 고민을 반복할 게 뻔하죠. 다행히 대학원에 들어간 후부터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게 될 지, 또 내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지, 이 모든 것이 대학원 준비할 때에 비해 훨씬 명료해졌으니까요.

실비아씨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 그 대학원 과정이 궁금하군요.
공부할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선 언어학을 배워야 하죠. 우리가 어떻게 언어를 듣는지 그 기본 원리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이외에도 상담학, 음향공학, 해부학, 유전학 등을 공부하게 됩니다. 

해부학도 모자라서 유전학까지 손을 대야 하는 건가요?
선천적으로 귀에 문제가 있는 경우, 유전학적 접근이 필요하니까요. 질병 탓에 귀가 안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의학에 대한 기초 지식도 쌓아야 합니다. 뇌신경도 공부하게 되는데, 저는 이 분야에 가장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럼 실비아씨가 졸업 후 진출한 분야는 어디인가요? 취직은 어렵지 않았습니까?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자리를 잡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합니다. 보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구요. 저는 병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나이아가라 폭포 옆 자그마한 마을에 있던 카톨릭계 병원이었어요.
(실비아씨에 따르면, 보청기만을 전문 취급하는 전문 과정 이수자도 첫해 5만달러 정도를 연봉으로 받는다. 청능사의 연봉은 이것보다 높은 6만달러에서 시작된다.)

한적한 곳이었겠군요.
너무 한적해서 탈이었죠. 15분만 걷다 보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알아챌 수 있는, 매우 작은 동네였어요. 일 끝나고 나면 마땅히 갈 곳도 없는…, 하지만 일은 재밌었어요.

그러다 이곳 밴쿠버로 오게 됐습니다.
아니요. 밴쿠버 정착 전에 캘거리에 있었어요. 마음 맞았던 대학원 동기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거든요. 예전처럼 한번 뭉치자는 얘기도 있었고, 시골 병원에서 일하며 외로움병이 도진 것도 있고 해서 캘거리로 갔어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 바로 남편이 밴쿠버로 옮긴 이유에요. 남편이 금융회사에 다니는데, 밴쿠버 발령을 받았거든요.

밴쿠버에서 일자리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까?
캐나다에서 주 경계선을 넘는다는 건 또 다른 이민과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인맥이 없는 건 둘째 치고, 모든 환경이 낯설 수밖에 없으니까. 캐나다 어디에서나 청능사는 전문가 대우를 받긴 하지만, 나를 모르는 곳에서는 나름의 구직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관련 업체에 죄다 보냈습니다. 수신인은 인사 담당자가 아닌, 대표들이었어요. 대표와 직접 연락이 닿아야 인터뷰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거였죠.

상당히 열정적이었네요.
간혹 한인 학생들로부터 청능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아요. 저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막연하게 하는 질문에는 어떤 답을 해야 할 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구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이 궁금한 지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할 기회가, 공부할 기회가 없다고 푸념하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방법은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매달리기만 한다면.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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