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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김대건천주교회 이태우 주임 신부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1-17 13:27

“한인사회, 이라크 난민들을 보듬다”
태어난 곳은 있지만 돌아갈 땅은 없었다. 단순히 종교가 그리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든 고향에서의 삶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지내야 했다. 세상은 이들을 난민이라고 불렀다. 이라크 전쟁 이후 고국을 등져야 했던 칼데아 가톨릭 신자들의 이야기다.
 


“타 민족에게 오랫 동안 일궈온 성당 문을 열어주다”

이라크에서는 왠지 터번을 쓴 사람만을 만나게 될 것 같지만, 그곳에서도 가톨릭 신자나 기독교인들은 비교적 무탈하게 살고 있었다. 적어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총성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소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삶은 순식간에 피폐해졌다. 이들을 노린 테러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됐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0년 마지막 날, 바그다드의 일상을 조선일보는 이렇게 적고 있다.


<30일 저녁 기독교인 집 열여섯 곳에 폭탄이 설치됐으며, 이 가운데 11개가 이튿날 폭발하면서 최소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바그다드 중심부에 사는 칼데아 가톨릭 신자 파우지 이브라힘(80)과 아내 자넷이었다. 이웃들은 “이브라힘 가족은 이 집에 40년째 살았으며 모두에게 사랑받았다”고 말했다. 

30분쯤 뒤엔 알 가디르 지역의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지헤르 사미 다우드의 차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부모 집을 방문해 집 인근에 차를 세워둔 참이었던 다우드는 “오늘 이전까지 한번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정말 두렵다.”고 말했다>







두려웠던 이들은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바로 이곳 밴쿠버로 흘러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도시…. 정부의 도움은 물론 있었겠지만, 낯선 땅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이들을 위로해 준 것은 아마 종교였을 터. 처음에는 20세대가 성당에 모였다. 그러다 난민들의 숫자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신자들도 많아지게 됐다. 더 큰 장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같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만나고, 모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 성당 저 성당에 임대 문의를 해보았지만, 돌아온 답은 “어렵다”는 애기 뿐이었다. 선뜻 문을 열어 주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사이 칼데아 가톨릭 신자들은 1000명 가까이 불었고, 이들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장소는 마땅치 않았다. 

올해 들어서야 난민들에겐 친교와 나눔, 그리고 기도의 공간이 주어졌다. 써리에 위치한 성김대건천주교회가 이들을 보듬었기 때문이다. 난민들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이곳 한인 신자들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는 태도다. 성김대건천주교회의 이태우 요셉 주임 신부의 반응도 신자들과 같았다. 이태우 신부는 한국 원주교구 소속으로 1993년 이후 지금까지 밴쿠버 지역 한인 신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어려운 결정을 하셨는데, 칼데아 가톨릭 신자들을 보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별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갈 곳이 마땅치 않았어요. 다른 성당들이 그들을 수용할 공간적 여유가 부족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 것 뿐입니다. 

신자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아니요, 전혀요. 그것이 저도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누군가 지시해서 이번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에요. 신자들 스스로 회의를 했고, 그 결과 이라크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물론, 앞으로 같이 지내면서 불편한 부분도 생길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것은 극복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한인 천주교회, 좀 더 넓게는 한인사회가 난민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부에서는 이번 일로 한인사회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평가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우리가 다른 커뮤니티에 마음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가톨릭에서는 다운타운 홈리스들을 위해 점심을 해주는데, 저희 본당 신자들도 15년째 이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칼데아인들에게 이번에 자리를 내줬다고 해서 우리의 태도나 입장이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요. 우리 역시 처음에는 “집”이 없어 이곳저곳을 옮겨다녔고, 2001년이 된 후에야 이곳 써리에 정착하게 된 거에요. 그러니까 난민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지요.

한인들도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던 거군요.
이곳 밴쿠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한인 신자들은 대개 자신들만의 공간을 가지려 하죠. 어떤 욕심 때문에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사회에서는 문화, 언어의 벽을 느끼며 살다가, 일주일에 한번 성당에서 고향을 느끼려는 거겠지요. 어찌됐건 밴쿠버의 한인 공동체는 1975년에 시작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부터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다가 86년인가 뉴웨스트민스터의 한 성당을 빌리게 됐다는 군요. 12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성당이었는데, 신자들이 늘다 보니 거기에 계속 머물 수가 없었어요. 칼데아 가톨릭 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인근 폐교를 빌려 성당 문을 열게 됐다가, 2001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겁니다.

성당을 짓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군요.
1세대들이 많이 애썼지요. 고생하며 일궜는데, 그것을 우리만 쓰지 않고 타 커뮤니티에 기꺼이 내준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무척 즐거운 일입니다.



“비전은 단순한 생각 아닌, 어떤 방향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


한인들은 약간 폐쇄적이라 캐나다내 다른 사회와 잘 교류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자이크 사회’인 캐나다에서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요?
뭔가 기여를 해야 겠지요. 영어가 서툴어서 혹은 이곳에서 교육받지 않아서 나는 기여할 게 하나도 없어,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커뮤니티의 일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잘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커뮤니티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교류가 시작될 수 있고, 이를 통해 또 기여가 가능해 질 거라고 봅니다.

신부님, 그러니까 종교 지도자의 입장에서 한인사회에게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습니까?
저는 한인사회가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앙인이라면 신앙인대로의 비전, 사업가라면 사업가대로의 비전이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자, 이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인간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민을 한 걸까요? 이민을 어떤 참됨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한인사회가 이곳에 건강하게 뿌리 내리고 자연스럽게 섞어 들어가려면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저희는 소위 민족 성당이라고 불리는데, 그런 우리가 이라크 난민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이곳 지역 성당들은 놀라운 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을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비전이란 무엇인가요?
비전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에요.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방향, 목표 등에 내 삶이 온전히 투신되는 거에요. 실천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행동을 통해서 비전이 명료해지고 확실해 지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이 사회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특히 1세대 중 일부는 2세대들이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데요.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정체성만 지키려고 하면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워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서 나 자신을 모두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언어, 우리의 문화,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을 2세들이 자연스럽게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한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한국식 사고를 고집하는 것은 다르다는 거에요. 사고 방식이 좀 다르다 해도, 우리의 문화를 잘 간직하면  삶은 더욱 풍족해질 겁니다. 

정체성에만 매달리면 캐나다 사회의 한 부분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캐나다를 모자이크 사회라고 하는데, 넓게 보면 이 세계 자체가 모자이크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양한 인종들이 인류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자기만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다채로운 세계에서 자기 색깔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전체 모자이크에서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겠지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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