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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 (winery) 소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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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10-11 10:21

조규남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느긋하고 넉넉한 곳에 앉아 있으니
     흐르는 시간도 늦은 걸음을 걷고
     너울거리는 바람도 포도 넝쿨 사이로
     시간을 몰아 마실 하듯 흐르는구려
 
     너른 하늘과 땅을 쪼개고 가른 뒤
     사람을 불러모아 도시는 살아가고
     갇혀 살아가는 자고 깨는 반복은
     우리 등을 떠 밀어 산과 물가로 내 몬다
 
     톱과 망치로 손은 한가 할 수가 없고
     물결처럼 멈출 수 없는 자동차 질주 속
     매일의 먹이를 찾아 완주를 끝내는 피곤한 하루는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동물임을 잊게 한다
 
     간만의 나들이는 들판에 놓여 난
     허영 같은 들 뜸이 곁들여
     넘실거리고 구불거리는 구릉 속을
     어두움 속 이루어 지지도 않을 소망을 찾듯
     비겁한 자가 찾아낸 도망쳐 같은
     와이너리 문 앞에 멈춰 큰 숨을 들여 마셨소
 
     여보게, 놀라지 마시게나
     도망처를 찾는 사람들은 왜 이리도 많은 걸까
     하루 품을 팔아야 찾을 수 있는 외진 곳
     몇 모금 포도주를 찾아온 공범들이 득실 거리는
     나 같은 도피인들의 머릿수를 세며 
     이 비겁한 장소에서 생뚱한 안도감이 들었수
 
     공장처럼 들어선 드넓은 포도밭도
     바둑판 같은 도시의 구획처럼 정돈되어 있고
     증권가 파생상품의 설명서처럼
     건강과 활력의 근육질로 부풀린
     긴 설화의 감언이설과 우아하게 늘어선 잔 들과
     곁들여진 해방감을 안주 삼아 포도주는 흐르고

     신이 빚어낸 오직의 음료라는 왕관을 쓰고
     고급스레 따라주고 고급스레 한 모금 적시는 교만이
     분위기를 잡으며 가치의 극대화를 부추기는 구려
 
     만 가지 요설로 포도주를 설명하는
    안내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허황된 장광설도 예술의 경지가 있구나
    한곳에 집중된 시간을 두고 깊게 탐 하면
    주제의 본질에 도달했다는 착각의 해답일까?
 
     가랑비에 속옷 젖는 줄 모르듯
     제 각각의 포도주 탄생의 찬란한 비화와
      내비치듯 풍기는 매혹의 향이 인류의 보물 이라는
     도도한 매 번의 거짓같은 바텐더의 익살에 녹아
     일배 일배 부일배
     야릇한 상상력을 부추기는 술잔의 생김새와
     보일 듯 속살 내비치듯 술잔 바닥을 쓰다듬는
     짙은 연분홍 색깔의 Red wine,
     훤 한 속살 감추듯 엷고 투명해서 더욱 야릇한
     연노랑 색깔의 White wine
     산골 무공해 처녀 같은 과일의 숙성품이라는
     생소 해서 더욱 우아한 이름의 과일 주
 
     다시 일배 일배 부일배
     취기가 오를수록 무언가 1%의 부족감
     그렇소, "원 샷"의 권주가 없는 삭막함
     삼겹살과 감자탕이 안보이는 삭막함
    속마음 털어낼 주정 없는 삭막함                                              .
    우리 음주의 널널함에 익숙한 나에게
    목젖을 타고 내려가는 그 짜릿함이 그리웠소
 
     깊은 고민인 듯 좁고 긴 띠를 이룬 구름은
     이어지고 흩어져서 맑은 하늘 노을에 적셔지고
     저녁의 지는 해가 고개 넘어 어둠을 뿌리기 전
     구름에 제 몸 부딪쳐 피 흘려 전하려는
     하루살이 같은 사람들의 저 진홍빛 사연들은
     아름답게만 채색되어 구릉 위에 걸어 놓는구려
     숨은 그림에서 찾아낸 엉뚱한 정답처럼
 
     넉넉한 취기에 혈압을 건드리는 걱정들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내려다 보이는 아주 높은 곳에 서 있는듯
     옷깃만 스쳐도 억겁을 기다린 인연이라는
     살어 있어 만나는 인연의 뒷면을 들춰보며
     산더미 같은 갚아야 할, 산더미 같은 받고 싶은
     둘이 고루 섞이어 맹물 같은 마누라 손을 잡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두 말꼬리 사이를 휘청거렸소
 
     모든 것을 두들겨 담금질하는 세월 아래
     세상과 나는 어떤 맵시로 변해질거나

     무엇인지 모를 것들로 몽롱하고 왁짝지껄한
     와이너리 문을 나서는 문고리를 잡고
     문득
     이 문을 열고 나서면 한 단계쯤 더 좋은
     또 다른 빛나는 천국이 있었으면
 
     누가 아나 , 혹시
     몽롱한 취기 속 헛 딛는 발걸음 아래
     허당처럼 몰래 숨겨 놓은 천국을 밟아
     그 속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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