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미스 김은 아무리 보아도 뛰어난 미인은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생 얼굴 열아홉 처녀의 한국적 미인이라야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일 년 중 유독 5월 며칠 동안만 곱게 화장을 한 그녀의 모습은 차라리 초연하기만 하다. 미스 김에게서 향기를 맡아보고 싶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얼마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러다 5월 미풍이 일렁거리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비로소 그녀의 향기에 젖어 들게 되리라.
나는 5월의 꽃 라일락 앞에 서 있다. 북미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목의 하나인 미스 김은 원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의 꽃이었다. 그녀의 한국 이름은 수수꽃다리. 우리에게 라일락 이름으로 더 친숙했던 그녀는 미국으로 이주 후 미스 김이라는 독립된 꽃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이미 반세기를 북미 땅에서 살아 온 그녀도 영락없는 우리의 자태이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서양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기간은 5월 중순 무렵 진한 화장을 했을 때만 가능하다. 꽃이 피기 전엔 우리나라 수수꽃다리와 구별하기가 결코 쉽지 않아서다. 그녀의 일가들은 우리나라 수종에 비해 조금 더 화려하고 키가 작으며 꽃이 오래가면서 향기는 더 짙다. 한국의 수수꽃다리는 흰색이 많은 편이나 그네들은 연한 보라색이 주종을 이룬다. 한국의 원종에 비해 쉬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것도 이국땅에 대한 거부감이었을까. 심은 지 1년이 지나고 풍토에 적응한 후라야 성장을 시작하고 꽃을 피우는 습성도 이주 후 달라진 점이다.
그녀는 해방 직후 미국 농무성에 근무하던 미더 교수를 따라 미국 땅으로 이주하였다. 미국 농무성 관리들은 각국의 수목 원종을 불법으로 채집해 자기 나라로 가져가 개량 후 새로운 이름을 짓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상품화 하던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기였다. 미스 김도 고향 황해도에서 미국으로 강제 이주 후 개량을 주도한 미더 교수에 의해 미스 김이라는 독립된 꽃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녀 앞에 서 있으면 금시 먼 기억 저편으로 여행을 떠난다. 라일락 하면 청춘의 상징처럼 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되지만 내 청년기의 사랑이란 단어는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여학교 교정마다 가득했던 5월의 꽃 라일락은 젊은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동시에 실연당한 사람들을 치유해 주는 꽃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을 때,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애달프던 이들에게 하트모양의 꽃잎 하나를 깨물면 비로소 사랑의 아픔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속설에서다. 은은한 향기와 함께 희망과 설렘, 애정과 시정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꽃말을 배반하듯 꽃잎 하나를 깨물면 지독한 쓴맛과 입안을 얼얼하게 만드는 독한 향기는 사랑이란 양면성의 감성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서울 옥수동 마루턱으로 가는 약수동 고갯길엔 2층 양옥집들이 즐비했다. 석간신문을 돌리다가 힘에 부쳐 담벼락에 내 가난을 잠시 내려놓으면 금방 잠이 들었다. 서서 잠을 자는 법도 그때 배웠다. 유학을 위해 무작정 상경해 스스로 학업과 생업을 짊어져야 했던 내게 끼니를 굶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꿈속이었을까 피아노 소리와 함께 후각을 자극하던 그 향기는 초상 없는 한 자락의 설렘이었다. 아득한 정신으로 올려 다 본 5월 하늘엔 쪽빛 실루엣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열다섯 내 사춘기는 그 쪽빛 수평선 외줄을 타고 쓸쓸한 허기와 함께 그렇게 찾아왔었다.
미스 김 앞에서 잠시만 눈을 감아도 그때의 피아노 소리는 공명으로 조망되어 달려오고, 그때 하얀 이층집을 가득 에워싸던 무리들이 바로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미스 김 그네들이었다는 것도 기억이 새롭다.
5월 끝자락 석양 아래 한 다발의 라일락으로 얼굴을 가린 체 가만히 나를 내려보던 그 눈빛은 꿈속의 환영이 아닌 피아노 치던 여학생이었다는 것도... 빛이 바래지 않은 환유의 연두빛 기억 속에서 달려온 그 여학생 얼굴이 떠오르면 나는 또 금시 홍당무가 되고 만다. 라일락 선율과 함께 짝지어 찾아 온 나의 열다섯 사춘기는 그렇게 왔다가 또 울림 없이 침잠 되고 말았다.
미스 김의 원적은 동유럽 헝가리였다고 한다. 어떤 이는 실크로드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하고, 더러는 이조 중엽 중국에서 들어와 북한 지역에 뿌리내려 자생하면서 우리 꽃으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함께 자란 주변의 꽃들은 외국에서 이주해와 우리 꽃으로 토착화 되어 한글 개명과 함께 다시 태어난 것들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은 이름을 그대로 둔 채, 외래어로 된 꽃 이름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외국에서 건너온 꽃 이름을 지을 때, 이상학적이거나 개량을 한 사람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수목이나 생활 속의 시정을 연관 지어 한글로 개명하였다. 어찌 보면 덜 세련돼 보이고, 촌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수수함이 주는 그 의미는 꽃처럼 아름답다. 라일락은 수수꽃봉우리를 닮았다 하여 수수꽃다리라 지었고, 클로버는 시계꽃이라 부른다. 그뿐 아니다. 아이리스는 붓꽃, 에델바이스는 솜다리 꽃, 썬플라워 보다는 해바라기가 더 정겹지 않은가.
미국의 미더 교수는 왜 미스 김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몹시 궁금하다. 상업적 목적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지금도 어눌한 한국말로 수수꽃다리라고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서양사람들에게 익숙한 라일락(영문), 리라(프랑스)이름에서 착안했을 성도 싶은데, 불법으로 채취한 원 종을 의식한 일말의 양심에 대한 배려였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낯선 이국땅에 들어가 뿌리를 내리고, 손자 그 손자의 손자 대대로 살아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불변의 정체성, 성(姓)의 계승일 것이다. 미국 땅으로 미스 김을 이주 시킨 미더 교수가 한국에 머물 당시 유교를 바탕으로 한 수직적 사회관습의 영향으로 미스 김의 모티브를 찾았는지 모른다. 풍문으론 미더 교수의 잔심부름을 도와 준 사람이 미스 김 이었다는 설과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를 상징하여 미스 김으로 이름 지었다는 것도 설득력을 얻는다.
근자, 미스 김 그녀는 역이민자 신분으로 한국 진출의 러시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 그들을 초청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미스 김 라일락으로 부르고 있으며 인기 있는 정원수의 대명사가 되었다. 한국에서 이민 간 그녀가 외국인 신분으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체. 그녀도 제가 나고 자란 모국 땅이 낯설어 잠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나 금세 동화되어 갈 것이다. 우리가 이국이 땅으로 이주하여 뿌리 내리고 영원히 살아갈지라도 그 불변의 의식적 요소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그 정체성은 영원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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