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목욕탕! 그 황홀한 기억

자명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12-05 14:34

자명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사는 집을 떠나 가장 편안한 장소를 꼽는다면 단연코 목욕탕이 아닐까. 타국에서 오래 머물다 고국에 들어가면 어색한 부분들이 많은데, 그런 이질감을 금시 씻어 주는 곳이 목욕탕이 으뜸이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피부로 느끼고 한국문화에 금방 동화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가한 시간, 적당히 뜨거워진 탕에 목만 내 놓은 채, 한 사람씩 들어오는 모습을 관찰해 보는 것이 여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사람 얼굴만큼이나 신체 부분도 제 각각이고 거시기도 천차만별이다.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유독 많아진 세상살이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표정은 그늘져 있고, 찬바람이 휑하니 스쳐 가고 있음을 탕 안으로 들어오는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어쩜 저들은 육체의 때를 벗기기 보단 마음에 상처를 씻으러 이 곳을 찾아온 게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로 그 곳에 오래 머무는 시간들이 잦다.
내가 처음 목욕탕을 갔던 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사촌형님 집에서 기거하며 유학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 날 아침 사촌 형은 목욕탕엘 데리고 갔다. 꾀죄죄한 내 몰골을 본 형님은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기 전 때 자국이라고 씻겨 집에 데려가려는 형의 배려임을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처음 목욕탕에 들어가 어쩔 줄 몰라 망설이는 내게 형은 어서 옷을 벗으라고 재촉했다. 그 때의 난감함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어렸을 적 한 번 밖에 뵌 적 없는 사십 중반의 형님이 옷을 훌훌 벗은 채 내게도 빨리 벗으라고 재촉하던 모습은 문화적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도 형은 탕 속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상념에 젖어 있었다. 그 날 형님이 참 외로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흘끔흘끔 탕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눈치 것 훔쳐보면서. 적당히 몸이 데워지자 형님은 손발부터 등까지 때를 밀어 주더니 낡은 수건을 건네며 당신의 등도 밀어 달라고 하셨다. 이상하게도 형님과 목욕을 하고 나자 어려움이 없어졌고 적잖이 마음이 안정되었다. 큰 사업체를 운영하셨던 형님을 만날 수 있는 휴일이면 어쩌다 목욕탕엘 갔는데, 형님과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목욕탕은 내게 어느 장소보다 내 삶의 애환이 묻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독립을 하겠다고 형님 집을 나와 신문배달을 하며 지낼 때였다. 내 구역은 약수동과 금호동을 있는 고갯길 주변이었다. 남는 신문을 목욕탕에 가끔씩 넣어 주곤 했는데,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도 하고, 휴일 날 공짜로 목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은 날은 주인아주머니가 뜨거운 옥수수차를 한 잔씩 주어 혹한에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탕 속에서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경제 주간지에서 읽었던, 한 비뇨기과 의사가 쓴 칼럼이 생각났다. "남자의 그것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목욕탕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탕 속을 활보 한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모든 남성들은 한 결 같이 어깨가 축 처져 있다. 그렇다고 다들 그것이 빈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중년 남성의 설 자리가 그만큼 좁아졌음을 은연중 엿볼 수 있을 뿐.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낭설에 대해 이 지면을 통해 그 진실을 밝혀 두고자 한다. "코가 크면 거시기가 크다"라는 그 루머는 전혀 사실 무근임을 밝혀 두고자 한다. 큰 코만 보고 부러워했다가 여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코가 얼굴 전체를 가릴 정도로 크고 우람하였으나 그건 아주 형편없었고, 영 볼품이 없었다. 저걸로 무슨 작업을 한단 말인가? 쯧쯧. 그것을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던가, 남성들이여 낭설에 기죽지 말고 당당해 질지어다. 또 여성들이여! 헛된 소리에 절대 속지 말지어다.
 
중략-
우리는 배꼽 위에서 평등하다.
그것은 생일날의 흉터,
고아들의 패찰,
인광을 칠한 백골의 주황색 입술이
아삭아삭 제일 먼저 뜯어먹는 온순한 육체의 이삭,
우리는 배꼽 위에서 너무나 평등하다.
김승희의 시, 배꼽을 위한 연가 중에서
 
목욕탕에 올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르는 것은 내 상념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온갖 형식으로 치장한 면면들을 벗어 버리고 인간본질의 참 모습들을 만나는 곳, 거기엔 분명 신분의 차별이 없는 지상낙원이 틀림없다. 하여 틈만 나면 나는 그 파라다이스를 찾는다. 풀리지 않은 일상의 문제들을 진지하게 돌아 볼 수 있고, 명상을 통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최고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 목욕탕! 명상 속 미학이여! 난 행복하다. 이런 좋은 문화 속에 살고 있음이. 나는 또 시간이 나는 대로 탕 속에 목만 내놓은 채,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내 관찰의 대상이 되어 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아래층 여자 목욕탕에서는 지금 어떤 모습들일까?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어느 해안가 풍경 2024.05.13 (월)
고양이는 그늘에서 잠자고 아저씨는 점심 준비로 분주하다 태양은 하늘 위에 걸려있고 바람은 머릿결을 살랑살랑 딸랑거리는 자전거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하얀 파도 소리 할머니는 집 앞에 나와 담벼락에 스치는 나뭇가지에 얘기를 걸고 오랜만에 놀러 온 손녀는 살금살금 고양이 쪽으로 까만 고양이 눈 초승달처럼 커지고 아이는 아닌 척 시치미를 땐다 밥 먹어 하는 소리에 고양이가 쪼르르...
박락준
 고백하자면 나는 악보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러나 부엌일을 하거나 단순한 손 일을 할 때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힘든 줄도 모른다. 음식을 골라 음미하는 미식가 같은 진정한 음악 애호가는 아니지만 그저 클래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쇼팽, 모차르트, 바흐, 두루두루... 마음이 울적하면 아베마리아를, 단풍이 질 때는 비발디를 , 그때 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듣는다. 몬트리올에서의 이야기다....
김춘희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반갑다. 해가 길어지고, 따뜻한 봄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서서히 생활에 작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낯선 새소리에 창문을 열고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목을 길게 빼본다. 머리 위에 뾰족한 부채를 단 레드 카디널인지, 푸른 깃털이 매력적인 블루 제이인지, 귀여움을 뽐내는 워블러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다가올 계절을 품고 자연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가까이 와 있다는 것만이 분명하다....
권은경
새 봄 2024.05.13 (월)
갑자기 봄이다간절히 기다리던 봄이다눈을 돌리니 어느 곳이나 봄 꽃이 피어나세상을 밝게, 곱게, 싱그럽게 꾸미고 있다봄 꽃은 희망이다긴 시간의 시련을 견디어 온 전사들이다봄 꽃은 부활이다죽었던 가지에서 새 순이 나고 꽃이 핀다봄 꽃은 사랑이다세상을 아름답게 변화 시키는 힘의 원천이다봄 바람이 좋다봄 기운이 좋다봄 향기도 좋다이런 봄을 다시 볼 수 있어 참 좋다싱그런 새 봄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오늘 따라 햇살이 따갑게...
나영표
잠시 홀로 된 공간은 휴식이었고무방비 상태였고 다시 돌아온 현재는 의지로 돌아왔지만 그 순간 이전에 기다림은 없었다.살아가는 그 마디마디에 여러 방법과 선택은 존재했고놀란 가슴에 앞뒤좌우 돌아볼 겨를 없이내일은 미래가 아닌 현재로 빠르게 이동한다.누구나 무의식 속에서 행동할 때가 많지만 기계는 항상 의식이 있는 상태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노크 없이 문을 열어줄 시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쉼의 공간에 갑자기...
송요상
오늘도 사랑 편지가 들어왔다. 가끔 이런 연서를 받지만 오늘은 유난히 기분을 들뜨게 한다. 그냥 사랑만 담은 편지가 아닌 잉태의 출발이기 때문이다.눈이 엄청 내린 한 겨울 캐나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눈 폭풍을 헤치고 동쪽 소도시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일주일에 삼일씩 그 도시에 머물며 비상 상황을 메꾸어 주고 있었다. 양로원 앞으로는 속이 시원해 지도록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고 우거진 나무숲은 마치 공원 안에 있는 듯 초록초록한...
김난호
공평한 세상의 꿈 2024.05.07 (화)
 머리 희끗하고 멋지게 수염 기른 캐네디언에게 연령 구분을 못해 실수를 할까 방책으로 "Sir !" 를 붙이면 기겁을 하며 노인이 젊은 자기들을 놀린다고 한다.그 바람에 곧 70살이나 되는 내 자신에 놀라게 된다. 홍역으로 학교를 못 가 아버님이 양띠로 한 살을 줄여 놓으셨다. 덕분에 훗날 다시 큰 병 고를 치르고 나선 첫해 생일 무렵 나이 제한을 턱걸이로 넘어 방송에 입사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늘 머리 속으로는 새로 사는 나이를 헤아리게 되었다....
이은세
숲 길에서 2024.05.07 (화)
숲 속의 작은 반란 여기저기 분주하다영롱한 이슬방울 구르다 꿈 되는 곳햇살은 어찌 맑은지 가슴속이 환하다계절이 지나가며 쌓여서 부엽이 된윤회의 큰 섭리 누구든 삶을 키우는한 줌의 거름이 되어 봉헌의 삶 살아보라온 산을 마비 시킨 산야초 들꽃 향기우통수 찾아 나선 산 새와 들 짐승들못생겨 등 굽은 나무 산 자락을 지킨다지척을 알 수 없는 이 세상 자욱한 안개오열하고 숨 죽이던 소 우주 나의 안뜰회심의 한 줄기 빛이 골짜기를...
이상목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