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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구 영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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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4-12 09:04

민완기 /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지명은 때로 단순한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을 들을 때 마다, 가슴 한 켠이 울컥하고 형언 못 할 그리움과 상념에 빠져들게 되는 마력이 있다. 태어나 열두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자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영천동’…  독립문을 대로 중앙에 두고 좌로는 영천동과 현저동, 우로는 사직동과 행촌동이 자리한 곳에서 태어나 내 몸 안에 뼈가 자라고, 살이 붙고, 머리가 큰 곳의 이름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영천 시장을 막 벗어나 100여 미터를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가면, 네 골목이 마주하는 곳. 좌측에 ‘대아제약’ 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세탁소와 과일 가게, 그리고 어려서 제일 좋아하던 박하사탕과 눈깔 사탕을 팔던 조그만 구멍가게가 마주한 그 곳이 내가 태어나 자란 바로 그 곳이다. 할아버지를 따라 인왕산 줄기 안산(安山)과 해골 바위 밑 약수터를 종종걸음으로 쫓아다니던 기억과, 서대문 형무소 뒤로 엄마 연못, 애기 연못에 놀러가 잠자리를 잡던 기억… 해마다 한 명씩은 꼭 물에 빠져서 죽는다며 다시는 그 곳에 가지 말라고 타이르시던 할머니의 걱정 가득한 얼굴과 목소리도 귓가에 새롭기 만한 곳이다. 첫째 딸은 그 옛날 미나리 밭에 세운 미동 공립국민학교에 입학시키고, 장남인 나는 굳이 사립을 보내시겠다고 만리동 꼭대기 ‘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서 이름을 딴 기독교 학교인 ‘운화’국민학교를 보내신 부모님의 교육열은 참 지금 생각해보아도 대단하셨다. 그 덕에 베이비 붐 시대에 보통 한 학급이 80-90명, 2-3부제 수업을 해야했던 시대 속에서 달랑 40명씩 3학급, 총 120명이 끈끈한 친구가 되어 지금까지 평생 친구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체 카톡방을 울려대고 있기는 하지만…

 

   할아버님은 13세에, 18세 되신 할머님과 일찍이 결혼 하셔서, 큰아들이 4살 되던 해인 1934년, 서울로 내려오셔서 부채표 동화약품에 취직을 하신 실향민이셨다. 그 뒤로 본인의 제약회사를 번듯하게 차리실때까지 자수성가한 분 답게 성실하고도 정직하신 분이셨는데, 그 분을 통해 어려서부터 수백 번도 넘게 들었던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석교리’의 두고 온 고향 이야기는 가 본적은 물론 없지만, 내게는 한 폭의 그림처럼 저장이 되어 있다. 그러나 ‘서대문구 영천동’은 그림이 아니라 내게는 생생한 영화이고, 그것도 3D 입체영화로 화면 밖으로 인물들이 막 뛰어나오는 리얼 서스펜스 드라마틱 초대형 영화이다.

 

   지금은 통행에 방해가 된다고 도로 한 켠으로 옮겨 세워놓았지만, 내 유년시절 함께 몰려다니던 우리 악동(?)그룹의 가장 큰 무용담은 독립문 안에 들어가 그 꼭대기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흰 구렁이가 산다고, 우리 정도는 한 입에 집어 삼킨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그때 우리들은 그 과업을 달성해야만 진짜 남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독립문 안에 기어 들어가, 숨도 못 쉬고 파랗게 질려서 나오던 순간이 생생하기만 하다.

 

   배앓이를 자주 하던 그 시절, 구아노찡 없이는 밤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밤 잠을 못 이루고, 또 하도 뛰어다녀 성한 무릎이 없어 옥도정기가 아니고는 지낼 수 없었던 그 시절…  훗날의 작은아버지 대신 ‘삼촌’들이 친구가 되어주고, 특별히 할아버지의 첫 손자 사랑은 각별하여서 문중 모임, 종친회, 시묘제, 국궁장, 낚시 대회 등등 안 데리고 다니신 곳이 없을 정도였다. 손자를 부를때면 언제나 ‘우리 대장’으로 호칭하시고 기를 팍팍 세워 주시던 할아버지의 그 사랑을 먹고 아마 이 날까지 살아온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뒤로 잠시 눈을 떴다가 감았을 뿐인데, 세월은 흐르고 강산은 바뀌어서 이제 내 곁에는 어린 쌍둥이 손주가 재롱을 부리고, 나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서대문구 영천동’에서 느끼는 그 간절한 그리움과 추억을 우리 손주들이 훗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밴쿠버 랭리’ 에서 더 좋은 ‘손주 바보’ 할아버지가 되어보고자 용을 쓰고 또 애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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