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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속 깊은 키오스크(Kio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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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3-10-23 09:47

민완기 /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지난 9월 한달 여를 근 7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모처럼 고국 나들이 길에 설레임과 좋은 추억들도 많았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가장 힘들었던 것을 꼽아보자면 단연 ‘키오스크’와의 독대(獨對)하는 시간들이었다.

  팬데믹 이후 가급적 대면접촉을 피해야하고, 그만큼 인건비와 업무 부담도 줄일 수 있기에
도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순간순간 여행의 발목을 잡아오는 키오스크 복병의 매복과 공격에 녹아나는 순간들이 많았다.

  원래 이 단어는 궁전을 이르는 페르시아어 “쿠슈크’에서 유래된 말로, 그 흔적이 남아있는
터키어 ‘쾨슈크’는 작은 여름용 별장이나 정원에 건축된 작은 누각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후 키오스크는 그런 모양으로 지은 간이건축물을 이르며 오늘날 간이 판매대, 무인소형매점, 무인 단말기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작은 건축물이 우리 부부를 도착하는 날부터 얼마나 격하게 환영하는지…

  수하물을 찾아서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마침 삼성동 공항터미널행 리무진버스가 막 출발을
하려고 한다. 황급히 뛰어가서 아내는 버스에 오르게 하고 기사 분과 함께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기사 분께 준비해간 지갑 속 한화를 현금으로 내밀자 황당한 표정으로 저쪽 키오스크에가서 빨리 표를 끊어 오란다. 11시간 비행과 1시간 가까운 입국 과정에 지쳐있는 내게 버스 티켓 2장 발권하는 일이 이리도 어려울 일일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화면을 터치하니 하차 지점, 인원수, 원하는 좌석 등 선택하라는 스크린이 차례로 떠서 나오는데 평소 같으면 사실 아무것도 아닐텐데 내 뒤 버스 창문으로 일제히 고개를 우향우하고 막 떠나려는 차를 잡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승객들의 눈총이 느껴진 순간부터 그야말로 멘붕, 블랙아웃이 찾아와 버렸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카드를 뒤로 꽂았다, 앞으로 꽂았다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다 못해 기사 분이 돕고자 내려왔고, 뒤이어 나보다 조금 더 기계치인 아내까지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아마 자리에 앉아 그냥 기다리기가 숨이 막혔으리라. 어찌어찌 천신만고끝에 티켓팅을 하고 버스에 오르니, 아, 연변쯤 사는 옷 좀 차려 입은 외국인 근로자쯤 되나 보다 쳐다보는 그 감정 없는 시선들… 지금도 송연(悚然)하기만 하다.

  신고식을 호되게 치루고 두번째 키오스크와의 해프닝은 서류 관계로 차를 가지고 구청 방문을 하게 된 날이었다. 일을 마치고 출구 차단봉 옆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하려니 그간 이상없이 잘 쓰던 BMO마스터카드가 해외발급카드인 연고로 결제가 안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카드 수수료때문인가 나름 짐작은 해보았지만 한국 관공서를 지키는 키오스크 형님들은 더욱
녹록지가 않았다. 내 뒤로 서너 대가 금새 줄을 서서 빵빵대기 시작을 하고, 헤매던 중에 키오스크 하단에 빨간 버튼이 보여 누르니 직원이 스피커로 답을 한다. 내가 쓰는 폰으로 계좌이체안내 문자메세지를 보내겠단다. 그리고 내 폰으로는 송금이 안되니 은행 갈 때 내기로 맘먹고 3,4일간을 바쁜 일정으로 잊고 지내고 있는 터에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하는데, 하루는 대학 동문들과 점심을 먹는 중에 또 전화가 와서 옆에서 통화를 들은 친구가 자기 폰으로 주차비 1,800원을 그 자리에서 대신 이체해 준 해프닝도 키오스크에게 당한 두번째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도 더 숱한 후일담이 있었으니, 성수동이 카페 핫플레이스로 변했다기에 마침 그곳을 지나는 길에 역에서 내려 한 카페를 들려서 주문을 하려고 다가가니 프론트 직원은 단 한마디 아무 말도 없이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키기에 쳐다보니 키오스크 형님이 떡하니 사람보다 먼저 나를 반겨준 것과, 여행 일정이 끝나서 밴쿠버에 돌아오게 되는 날에도 공항에 오면서 이미 스마트 폰으로 pre check in을 한 짧은 줄을 지나 그냥 길고 긴 줄에 가서 아무 말없이 서면서 문득 우리의 키오스크씨는 시니어들과 휠체어를 탄 키 낮은 장애인과의 만남은 노골적으로 사양을 하시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가져본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하는 법. 혹시 다음에 또 이 작은 여름용 별장
키오스크에 놀러온다면, 초로의 우리 부부만 달랑 오지 말고 아들, 며느리, 손주들까지도 다 함께 오라는 키오스크 개발자의 속 깊은 충고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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