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요즘처럼 일상이란 말이 살갑게 아니 절실하게 다가온 적도 없었을 것 같다. 끝날 줄 모르는 전쟁에서 평화를 바라는 마음처럼, 오랜 장마에서 햇볕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지금 세계의 모든 사람이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소확행을 원했던 우리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확행 속에 묻혀 살았었는지를 코로나19 거리 두기를 하는 요즘 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일상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이고 일상으로 하고 있는 일을 말한다. 날마다 반복되기에 하찮은 것 같고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사실은 그게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음을 요즘, 이 나이에야 느낀다. 그래서일까. 코로나19로 인해 SNS에 올라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카톡으로 받은 내용인데 감동을 준다.
93세의 코로나19 감염환자가 응급실에서 24시간 산소공급을 받았다. 그런데 계산서를 받고 보니 산소 금액만 5천 프랑이란다. 그가 계산서를 받고 흐느껴 울자 치료비를 지불할 수 없어서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비싼 산소를 93년 동안이나 돈 한 푼 내지 않고 마시고 산 것을 몰랐으니 내가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산 것이냐고 했다. 93세는 아니지만 나 또한 이 나이 되도록 한 번도 그런 감사를 해, 본적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어제의 반복이 아니라 기적이라는 사실, 어제처럼 오늘도 일어나서 걷고 보고 먹는 것이 기적이란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엊그제는 외손녀 셋이 있는 딸네 집에 갔었다. 아이들은 햄스터를 키우고 있는데 온 가족 다섯 식구가 아침이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햄스터가 눈을 뜨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이란다. 너무 늙어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주 눈을 감아버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뜬 것을 봐야 안심이 된다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오늘은 T.V에서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면 꼭 녹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통화가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란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거나 겪는 지극히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하고 축복인 것인지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많은 목숨을 앗아가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게 세계를 불안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다. 하지만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를 살려내는 선한 기능 내지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 같다. 늘 바빠서 좀처럼 시간을 함께할 수 없고 얼굴 보기도 어렵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이 본의 아니게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좋은 가족관계를 갖게 하는 기회도 되었다는 얘기다.
나가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나가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아무 때나 먹으러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전화만 하면 바로 만날 수 있던 우리의 시간에 갑자기 담이 쳐지고 발이 묶이게 되었다. 심지어 만나도 마주쳐도 못 볼 사람인 양 충분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이 참담함, 이 황당함이 얼마나 더 갈 것인지 두렵기만 하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은 행운이다. 사람들은 지천으로 피어있는 세 잎 클로버를 질겅질겅 밟고 다니면서 네 잎 짜리를 찾으려 한다. 행복을 짓밟고 찾아낸 행운이 과연 그만큼 값진 것일까. 우린 왜 행복보다 행운에 목말라 할까.
막내 손녀는 올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제 언니들이 다니는 학교에 저도 간다고 달력에 표를 하며 입학식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3월이 가고 4월이 가고, 여전히 입학식도 학교도 못 가고 있다. 언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날이 되자 학교로 갔는데 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할아버지, 나 언제 학교 갈 수 있어요?” 하고 눈물이 글썽글썽 울먹이며 묻는다. 쉽게 생각했던 것,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하찮고 우습게 보았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의 요즘이다.
밖에서 까치가 까악까악 노래하고 있다.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려나. 지금 내게 가장 반가운 손님은 한시바삐 코로나19가 없어지고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주일이면 원주에서부터 서울까지 예배를 드리러 오는 아들네 네 식구, 아무 때나 보고 싶으면‘할아버지 지금 간다.’ 하고 휙 달려가던 딸네 다섯 식구, 내 수업시간에 만나던 정겨운 수강생 얼굴들을 다시 교실에서 볼 수 있는 이 일상의 회복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일상,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일상으로 하고 있던 일들이 그립다. 속히 오라 일상이여. 그대를 하찮게 여겼던 내 경솔함과 죄를 용서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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