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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소묘 2026.11.06 (금)
볕뉘 스스로 목소리를 줄일 때 비로소 드러나는 풍경들이 있다. 어느새 하늘은 저만치 더 높아졌고, 잎새들의 서걱임과 빛바랜 초록 끝에는 엷어진 잔영이 차분히 내려앉는다. 충만했던 계절을 비워내며 고요를 맞이하는 백로월(白露月)을 훌쩍 지난 절기는 빛이 제 본질로 돌아가는 겸손의 시간이다. 무성했던 원색 초록이 자리를 비우면 오솔길의 윤곽이 또렷해지고, 서늘한 공기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 폭의 엽서 그 풍경 속을 걸으며 깨닫는다....
자명
가을비 2026.11.06 (금)
이틀 내내 하늘은 빗살무늬 눈물을 흘린다 양철북 두드리는 소리 김치전 소주 한잔에 어깨춤을 추고 싶을 만큼의 운치 거기까지가 가슴속 그리는 비의 풍경이다 창문 밖으로 검푸른 찰나의 섬광 내리꽂는 하늘의 칼춤 나의 섬에는 이토록 달구비가 내리는데 당신이 가꾼 숲은 괜찮을까 전화를 건다 작달비 같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레퀴엠 선율 창문 밖으로 장대비는 그칠 줄 모르는데 아스라이 먼 그 사람 안개비 작별을 고하는 여자 가을비는...
김계옥
그렇게 높던 수정 빛 하늘이 물에 젖어 있다.   추억처럼 물안개 내리는 속세도 잊고 싶은 계절이다. 바람이 찾아와 책장을 넘기고 아침햇살이 글을 읽는 환상적인 여름이 운연雲煙처럼 사라진 지도 한참 되었다. 살아 숨 쉬는 계절은 남은 삶을 가없이 위로해 주고 인생도 욕심내지 말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넘칠수록 좋다. 우리는 꿈과 이상을 갖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산다. 이는 행복이고 기쁨이다. 한편으론 날...
박오은
갈잎의 대화 2026.11.05 (목)
밤새 넉넉한 이슬로 온누리를 채운 이른 새벽   서둘러 채비하는 어미새는 어느새 푸른 창공을 가로지르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에 오늘도 아침을 깨운다   해맑던 잎새 낙엽 되어 흐르는 가을이면 하늘은 파란 바다로 출렁인다   지난 여름내 작열하던 태양을 온몸으로 견뎌 낸 너의 애처로운 이 가을을 덮을 때면   ...
김정임
자운영 2026.10.30 (금)
논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와 있는 것이 있다 나는 아직 닿지 않았는데 향기가 먼저 나를 지나간다 발목이 잠기고 무릎이 낮아질수록 조금 더 아래에서 다른 공기가 일어나 숨을 들이마시면 바깥이 아니라 안쪽이 먼저 흔들린다 분홍은 번져 있을 뿐인데 그 위를 계속 건너 다닌다 닿았는지 아닌지 모를 만큼 가볍게 왔다가 머물지 않고 곱다는 말이 떠오르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사라질 것 같아서 나는 말 대신 숨을 더 깊이 들이마신다...
조순배
Ⅰ. 서론   AI는 예술, 문화, 학문 등 인간과 밀접해서 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곳곳에 설치된 키오스크나 큐알 카드 사용은 기본이고, 교육과 학습, 금융과 소비생활, 교통과 이동, 문화. 예술. 창작 등 이제는 인간의 뇌가 AI를 정복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일론 머스크는 예언하기를 ‘AI의 발전 속도가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고, 현재,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의 기업들이 인공지능에 투자하는...
이명희
박물관 2026.10.30 (금)
성채처럼 무거운 박물관에두터운 침묵이 깔린다 승리의 찬가는 귀를 세워도 끝내 들리지 않는다조명은 과거의 껍질을 벗기고영웅도 패배자도 한 지붕 아래 숨을 죽인 채 서 있다 명줄이 긴 유물들은 끝내 풀리지 못한 채 눈꺼풀을 내리지 못한다 강물처럼 밀려드는 관람객은 서로의 눈도 스치지 못한 채 찰칵, 짧게 짖고 시대의 위를 미끄러진다      
송무석
오래된 LP 레코드판 위에 바늘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한참 노래를 듣다가 오디오를 껐다. 고요해진 방 안에 여전히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My Way)’ 마지막 소절이 짙은 여운으로 맴돌았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 마음에 평화와 안식을 주는 명곡. 오늘도 그 노랫말에 깊은 마음을 얹고 지그시 눈을 감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눈가에 맺혀 흘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상에서...
정효봉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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