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면서 부모님이 한국에 계시지 않게 되면, 한국에 갈 일이 점차 줄어든다.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겨들었는데, 작년에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니 서글픈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당장 한국에 가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형제자매가 있어도 며칠은 괜찮겠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서로 불편하다. 그래서 묵을 곳을 인터넷을 통해 구했다.
예전에 엄마 집에 머물 때는 모든 것이 익숙해서 몇 년 만에 찾아가도 낯설거나 불편한 점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빌린 집은 잠실 쪽에 지은 지 얼마 안 된 오피스텔이다. “비가 와도 우산 없이 집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문구에 매력을 느껴서 집을 계약했는데, 비가 문제가 아니었다. 살인적인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집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나를 자꾸 바보로 만드는 느낌을 주었다. 정착 서비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 지내는 데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새벽 4시 30분에 도착하는 대한항공 편을 타고 그 집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이었다. 집주인이 미리 알려준 대로 패드에 집 호수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집 호수를 누를 때는 ‘삑삑’ 소리가 나다가 비밀번호를 누를 때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다시 멈추고 또 눌러도 마찬가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첫날부터 난관이다. 마침 안에서 누가 나오는 덕분에 경비아저씨에게 말을 하고 얼떨결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에는 어떡하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일단 집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었다. 아침부터 약속이 있어서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실례를 무릅쓰고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가르쳐 드린 번호가 맞아요. 다시 그대로 해보세요.” 외출했다가 들어오면서 알려준 대로 해보니 문이 열렸다. “아하! 보안 때문인지 집 호수는 ‘삑삑’ 소리가 나고, 뒤에 비밀번호를 누를 때는 소리가 안 나는 거구나” 한국 도착 첫날부터 녹록지 않았다.
집에 와서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는데, 어디는 전기가 들어오고 어디는 전기가 안 들어온다. 미안했지만 또 한 번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스탠드는 켜지는데 전기포트에는 전기가 안 들어오네요.” “제가 처음이니까 해드리러 갈게요.”라며 선뜻 찾아와 주었다. 만나 보니 집주인이 아마 30대쯤 된 것 같았다. 와서는 안 되는 원인을 알아서 고쳐주는 것이 아니고, 벽면의 이것저것을 누르니까 불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되셨죠?” 일단 작동이 되니까 고맙다고는 했는데 집주인 간 뒤에 전등을 끄려고 어찌어찌 만지다 보니 또 안된다. “에고, 낚시하는 법을 알려줘야지 물고기만 주면 어떡하나?” “첫날부터 적응하기 참 힘드네.”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한국에 가면 ‘말이 통하는 외국인’이 되고, 캐나다에 오면 ‘말이 안 통하는 한국인’이 된다. 답답한 마음에 미안하지만 집주인에게 또 전화를 했다. “이것저것 눌러보세요.” “이건 또 뭐지? 뭘 이것저것 눌러보라는 건지...” 그러니까 과거에는 방마다, 거실마다 스위치들이 있어서 그것만 켜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요즘 집들은 벽에 평평한 스마트 패널 하나에 모든 스위치가 모여 있다. 그것들을 이것저것 눌러보라는 것 같은데, 어쩌다 누르면 들어오고... 도저히 근본적인 방법을 알아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에게 물어보았다. “벽에 스위치가 안 들어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경비아저씨에게 여쭈어보세요.” 경비아저씨는 “시설 관리실에 전화해서 물어보세요.”라고 하신다. 한국 휴대전화가 없으니 산 넘어 산이다. “제가 한국 전화가 없어서요. 연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관리실 아저씨에게 “전기가 안 들어오는데 집에 와서 좀 봐 주세요.”라고 했더니 “그건 본인이 직접 하시면 돼요.”라면서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역시 콜럼버스의 달걀이야!” “방법만 알면 별거 아닌데...”
이 이야기를 한국에 사는 친구에게 했더니 그 친구도 집주인이 알려준 방법이 이해가 안 간다면서, 집주인과 비슷한 나이 또래인 자기 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단다. 그랬더니 그 친구 딸도 “그냥 이것저것 눌러보면 되지.”라면서 오히려 엄마 말이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아마 30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료를 찾아보았다.
요즘 세대를 나이에 따라 ‘밀레니얼 , Z, 알파, 베타... ‘ 이렇게 세대를 나누지만, 30대의 특징으로 보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시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세대는 차분히 설명서를 읽거나 조언을 듣기보다는 이것저것 직접 눌러보면서 몸으로 익히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과거 아날로그 기기는 잘못 누르면 고장이 나거나 데이터가 날아가기 때문에 기기를 작동하기 전에 가이드북을 정독하거나 남의 설명을 차분히 끝까지 듣고 안전하게 시작하는 편을 선호했다. 반면에 디지털 환경은 ‘뒤로 가기(Ctrl+Z}나 ‘새로고침’ 한 번이면 원상복구가 된다. 실패해도 리스크가 없으니 일단 누르고 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설명서는 완전히 막혔을 때만 찾아본다. 일단 조작해 보면서 기능을 스스로 터득하는 ‘시행착오형 학습’을 선호하는 세대이다.
그래서 나도 요즘 기기들은 일단 이것저것 눌러보면 해결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한 번은 새로운 곳에 갔는데 세면대 물이 빠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예전처럼 뭔가 볼록 나온 레버가 없었다. 요즘 세대가 하는 대로 이것저것 누르다 세면대 물이 빠지는 배수구를 눌러보니 물이 내려갔다. ‘요즘 세대를 따라가려니 참 어렵네.”
한국 여행 중에 제주도의 곶자왈 전망대에 들렀다. 전망대를 찾아갈 때는 초행길이라 표지판을 보면서 잘 갔는데, 나올 때는 다음 약속 시간에 마음이 급해서 앞만 보고 걷다가 길을 잃었다. 아무리 봐도 잘못 온 것 같았다. 다행히 쉬고 계신 분을 만나서 물어보았다. “입구로 나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돼요?” 그러자 그분이 “한참 지나쳐 왔어요. 저도 나가는 길이니까 저를 따라오세요.” 걸으면서 툭 한마디를하셨다. “이제 나이 들면 놀멍 쉬멍(놀면서 쉬면서)해야 돼요.” 제주도 방언이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마음은 놀멍 쉬멍, 머리는 요즘 아이들이 하는 것을 쫓아가면서 그렇게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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