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나온 지 어언 26년이 되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한국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예전보다 여유가 생겨 처음으로 큰 부담 없이 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설렘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건강에 대한 걱정이다.
예전 같으면 비행기표를 끊는 순간부터 마음이 들떴을 텐데, 지금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국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처지라 혹시라도 아프게 되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떠나는 길이라 여행이라기보다 고행길에 가까운 느낌마저 든다.
여행자 보험을 알아보니 비용이 4천 달러를 훌쩍 넘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 금액을 보는 순간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보험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결국 결론은 단순했다. ‘앓느니 죽지.’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더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그냥 떠나기로 했다. 가능하면 집 안에 머물고, 위험한 일은 피하면 되지 않겠는가. 물론 늘 그렇게 다짐하지만 막상 가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내 겐 늘 특별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찾는 한국은 마치 『오즈의 마법사』 속 나라처럼 신기하게 느껴진다. 횡단보도 바닥에 비치는 신호등 불빛, 버스정류장 의자의 난방 시설, 여름철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냉방 시설, 그리고 쉼 없이 도착하는 버스들까지.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아이디어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거리에는 높고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병원과 의원들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다. 음식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간판만 바라봐도 무엇이든 맛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부실 만큼 발전한 모습에 놀라고, 어디에서나 만나는 친절한 사람들에게 또 한 번 놀란다. 마치 국민 모두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풍경 속에 서 있노라면 문득 묘한 감정이 찾아온다. 나는 과연 어디에서 왔어, 어디쯤에 서 있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다. 분명 한국말을 하고 있는데도 대화의 박자가 반 박자쯤 늦는 것 같고, 사람들과 함께 웃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뒤늦게 따라 웃는 광대 같아진 기분이 든다. 익숙해야 할 곳에서 낯섦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내가 떠나오기 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그러고 보면 변한 것은 나라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한국은 앞으로 나아갔고, 난 다른 시간과 다른 환경 속에서 90년 대의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끝에 다시 만난, 지금의 한국은 내 겐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그리운듯하면서도 어색한 나라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속 신비로운 세계를 걷는 것처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난 그 이야기 속을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등장인물이 된다.
26년 만에 찾는 고국. 그곳은 여전히 내 고향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나라처럼 느껴진다. 그리웠고 또 가고 싶었던 나라, 대한민국! 그 낯설고도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걷는 어리둥절한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
|










나영표의 다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