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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을 데리고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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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5-08 08:48

박정은/(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나기 전, 도시가 폭파되는 뉴스 화면이 내 머릿속에선 떠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와 국경을 접한 이란에서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이, 그쪽으로 가야 하는 내겐 마치 심장 가까이에서 울리는 경보음처럼 들렸다. 가지 않아도 될 이유는 충분했고, 두려워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내 머리는 최악을 상상했고, 나를 멈추게 하려는 공포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괜히 갔다가 미사일 보는 것 아니야? 비행기가 끊겨서 혹시 못 돌아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상상이 아닌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공포에 절여진 나는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그래도 난 비행기에 올랐다.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환불 불가라는 여행사의 답변에, 목숨보다 돈이 더 아까워 울며 겨자 먹기로 겁을 데리고 여행길을 나섰다.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평온함이었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기에 바빴고, 캐나다에 있던 태양이 아무 일 없다는 듯 거기에도 떠 있었다. 그런데도 난 긴장을 풀지 못한 채로 이스탄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했던 미사일이 날아가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시끌벅적한 시장의 소음, 길거리 군밤 장수가 굽는 군밤 향, 텃밭의 풀을 뽑는 할머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하루를 살아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스치며 달린 지 이틀이 지났을 무렵, 내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숨이 깊어지며 주위를 구경할 여유가 생겼다. 불안을 확인하느라 바빴던 눈이, 그제야 풍경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야 난 깨달았다. 위험을 찾던 내 마음이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을. "괜찮구나!"라는 말이 생각이 아니라 감각으로 느껴졌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낯선 음식을 맛보고, 친절한 웃음을 만나면서 나도 더 많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도착한 곳이 카파도키아였다. 그곳은 한때 모든 것을 덮어버렸던 수백 미터 두께의 화산재가 굳어서 만들어진 땅이라고 했다. 그렇게 굳어진 암석을 비, 바람, 눈이 깎아내고 조각해 굴뚝 바위 같은 독특한 지형을 만든 곳이었다. 손으로도 깎일 만큼 바위가 부드러웠기에 사람들은 그곳에 동굴 집과 교회, 저장고를 만들었다. 특히 로마 박해 시기, 많은 기독교인이 그곳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사람이 숨어 살았다는 동굴 집과 8층 깊이까지 파 내려간 개미집 같은 지하도시도 직접 내려가 봤다. 비좁은 땅굴을 따라 밀쳐진 돌문을 통과해 땅속 방으로 들어선 순간, 난 오래된 숨결을 마주한 사람처럼 조용해지고 말았다. 누군가는 그 어둠 속에서 숨을 고르고, 누군가는 그 안에서 기도하며, 또 누군가는 그 안에서 아이를 키웠을 거였다. 한때 모든 생명을 파괴했던 화산재가 훗날 사람을 품는 집이 되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두려움이 지나간 자리에 삶이 들어선 셈이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카파도키아 지형을 한눈에 보기 위해 열기구 바구니에 몸을 실었다. 사실 나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발 아래가 비면 심장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선 두려움을 한번 넘어봐선지, 공포가 나를 붙잡기보다 더 높이 밀어 올렸다. 열기구가 바람에 실려 떠오르기 시작하자, 물론 처음엔 오랜 습관대로 손에 힘이 들어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두려움이 나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전날 보았던 동굴 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맞서 살아낸 사람들의 흔적이 내 안에 작은 용기를 심어 놓은 듯했다. 열기구는 천 미터까지 올라갔고,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서 해가 떠올랐다. 찬란한 빛이 계곡, 깎인 절벽, 스머프가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듯한 버섯바위, 암벽에 뚫린 동굴 하우스 입구를 차례로 비추기 시작했다. 저 동굴을 파던 손, 서로 기대어 버텼던 사람들, 그들의 삶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그저 오늘을 살아내기 위한 선택이었을 거였다. 하지만 바로 그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풍경이 되었다. 그 풍경을 내려다보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특이한 지형'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고 살아낸 인간의 흔적이라는 것을. 천 미터 상공에서, 나도 내 안의 두려움이 작아지는 걸 느꼈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단단한 무언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두려움을 다룰 수 있는 강인한 힘이 인간에겐 있다는 믿음 같은 게 되살아났다.

캐나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출발 전의 나를 떠올렸다. 같은 사람인데, 다른 상태였다.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내 뇌의 작동 방식이 달라져 있었다. 두려움은 생각 속에서 커졌고, 안도감은 경험 속에서 자랐다.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공포를 없애는 방법은 안전한 방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는 걸 직접 몸으로 확인하는 거라는 거였다. 이제 나는 안다. 두려움이 느껴질 때마다, 그 반대편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다음에 또 겁이 나더라도 움츠러들지 않고, 아마 나는 다시 떠날 것이다. 겁을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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