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잘 기억도 되지 않는 것에 이토록 애 닳아 하는 것일까. 이건 필시 병일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수십 년을 넘은 이 나이 이르러까지 연연해 할 이유가 없잖은가.
돌아가신지 50년이나 되신,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머니의 추모예배를 드리는데 괜시리 심통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물론 우리 가족 네 식구만 드리는 조촐한 예배다.
그런데 오늘따라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내편이라고 생각했던, 그러면서 하나같이 일찌감치 내 곁에서 멀어져 가버린 분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가슴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예배를 마쳤는지 모르겠다. 가슴 가득 차 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 그것은 마치 물에 빠진 나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건너편 강둑에서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 분들을 멀리하며 점점 깊은 강물 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요 절망 같다.
자정을 넘은 시간이건만 밖으로 나갔다. 별빛은 간 곳 없고 가로등과 현란한 광고판의 불빛들만 제 세상인 듯한 시간, 거기 질주하는 차들의 불빛까지 그들과 한 패다. 그 불빛들을 보면서도 속수무책 흘러가는 나를 느낀다. 가다가 걸릴 것도, 막혀서 멈출 곳도 없는 유유한 흐름, 나는 그렇게 마냥 어딘 지도 모르는 곳으로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왜 자꾸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전혀 내 의지가 아닌 채 어디론가 흘러 보내지고 있다는 이 불안함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
삶이란 시간이란 길을 가는 것일까, 시간의 강을 흐르는 것일까. 내가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음에도 오만하게 으스대는 세상의 한 쪽에서 간신히 발끝을 붙이고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벽이 까마득하여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이 마치 가위 눌린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내게 어머니란 존재는 무한의 그리움이다. 젖 땔 때가 한참 지났어도 남의 눈에 안 띄게 숨어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있는 부끄러움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의 이면에는 어머니에게 단 한 번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그런 어리광을 부려봤으면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아있는 것 같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어쩌다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먹고 있는 아기들을 보게 되면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곤 했었다. 그렇게 부러움 가득 그리움 앓이를 했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면서 내 아이들의 혼사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바라는 대로 잘 보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저들이 원하는 사람과 만나 살되 최소한 경제적 어려움은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생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로서 자식들의 삶에서 만은 제발 그런 고생이 비켜 갔으면 해서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것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벌써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터였다. 가치 기준도 다르고 생각하는 정도도 다르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기준도 역시 다르다. 내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훨씬 저돌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그렇고 보면 내가 겪고 있는 이 추상적 그리움 같은 것도 저들이 안다면 필시 나를 아주 이상하고 우습게 볼 것이 분명하다.
하기야 살아온 방법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지 않은가. 나는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해야 했지만 저들이야 그럴 필요도 없었잖은가. 그러니 어찌 살아온 방법과 과정이 다른데 내가 살아온 대로의 결과를 강요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내가 무리수를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새 아웃사이더가 되어 나 스스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큰 아이는 내게 그랬다. 자신이 후회 않게 결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어쩌면 맞는 말일 수 있다. 아빠로서 조언은 할 망정 강요는 할 수 없잖은가. 어차피 인생이란 자기 지게를 자기가 지고 가는 것이 아니던가. 거기 또 아내까지 합세한다. 아들 녀석도 누나 편일 게 틀림없다.
나는 벌써부터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걸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미련스럽게도 그걸 아니라고 부인하고 감추려고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가느다랗게 내게 잡혀 있던 저 어린 날의 기억 한 가닥을 끌어내선 그걸 어머니란 이름으로,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어쭙잖게 작은 연 하나를 띄워 올리고는 그것으로 나의 옹색함을, 나의 초라함을 모면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내게 분명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란 이름의 내 유일한 도피처다. 내가 숨어있을 수 있는 오직 하나 믿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 사실은 내가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처지에서 가장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어머니였던 것이다. 비로소 내가 흘러가고 있다는 실체를 알게 된다. 그것은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거대한 바다에 떠있는 섬이었다. 처음엔 그 섬이 어머니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나였다. 그것은 어머니가 띄워 놓은 ‘나’라는 작은 섬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자신의 분신으로 작은 섬 하나를 만들어서 보이지 않는 당신의 모습을 보이는 존재로 남겨놓으셨던 것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환영 앞에서 숱한 날을 그리움 병을 앓았다. 어머니의 섬으로 존재했던 ‘나’는 끊지도 못한 탯줄을 강물에 담근 채 작은 섬으로 살아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내게 그리움이 된 것은 이 세상 모든 여인들 중에서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내게 그리움인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 중 유난히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당신이 내 그리움으로 살아있는 것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내 가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쳐다봤다. 먹물을 뿌려버린 듯한 하늘, 거기 유년으로 유성이 흐르고 있었다.
50년의 세월을 넘기고도 까딱 까딱 까딱 물 속에 잠겼다 나왔다 하는 바위섬처럼 어머니는 내게 그리움의 섬으로 살아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처럼 나 또한 내 아이들에게 작은 섬으로 남아있을 거라는 예시이기도 했다. 내게 어머니의 섬은 내 생명의 근원에 이르는 영혼의 숨결 같은 것이었지 않을까 싶다.
어둡기만 했던 하늘 귀퉁이에 신기하게도 별 하나가 나타났다. 마치 망망한 바다에 떠 있는 무인도의 등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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