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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문학 신춘문예 당선작(아동문학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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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6-03-06 12:48

차상 | 집으로 데려다줘 윤경란
차하 | 귀뚜라미의 날개 황정현
<집으로 데려다줘> 윤경란
                                                                                
“방게야! 빨리 나와! 멋진 웅덩이를 찾았어. 같이 가자!”
모래 굴 속에서 자고 있던 방게는 농게의 들뜬 목소리에 깨어났다.
‘또야?’
방게는 몸에 붙은 모래를 툭툭 털며 중얼거렸다. 며칠 전에도 농게는 어른 게들이 가지 말라고 했던 웅덩이를 기웃거리다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또 위험한 데로 가는 거 아니야?’ 
방게는 입을 달싹였지만, 목소리는 끝내 새어나오지 않았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농게랑 함께 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굴 밖으로 나가자 농게는 썰물에 드러난 갯벌 위를 벌써 멀찌감치 옆걸음질을 치며 가고 있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농게의 붉은 집게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방게는 한국 서해안의 넓은 갯벌에 사는 작은 게였다. 방게네 마을은 밀물이 들면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끝없이 펼쳐진 갯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게는 물이 빠져나가며 생긴 진흙 위의 부드러운 잔물결 무늬를 무척 좋아했다. 그럴 때면 자주 굴 입구에 나와 넓어지는 갯벌을 바라보곤 했다. 잠자던 세상이 다시 눈을 뜨는 순간 같았다.
농게는 방게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넓은 어깨에 붉게 빛나는 커다란 오른쪽 집게발을 가진, 눈에 띄는 게였다. 눈자루도 유난히 길어 친구들보다 멀리 볼 수 있었고, 무엇이든 남들보다 먼저 알아차려 재빠르게 움직이곤 했다.
방게는 농게가 자기 친구라는 사실이 늘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농게 곁에 있으면, 자기 몸이 괜히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자신은 좁은 어깨에 평범한 집게발 두 개뿐이었다. 가끔 농게처럼 특별한 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괜히 마음이 간질거려 고개를 저었다. 
저멀리 집게발을 흔들며 씩씩하게 움직이는 농게를 보며, 방게는 문득 어쩌면 농게가 자기 때문에 늦어지는 걸 싫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농게를 따라 사박사박 부지런히 움직였다.
새 웅덩이는 시커먼 바위들이 물을 에워싸고 있었고, 초록과 갈색의 해초들과 말미잘이 물속에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두 친구는 작은 물고기와 새우, 조개들을 쫓아 바위틈을 오가며 놀았다. 
슬슬 배가 고파지자 방게는 작은 새우와 해초를 모아 간식을 준비했고, 농게는 이 바위 저 바위를 따각따각 오르내리며 자리를 골랐다. 농게가 고른 바위 위에 나란히 몸을 붙이고 햇볕을 받으며 간식을 나눠 먹자, 방게는 나른하게 졸음이 올 것 같았다.
그때, 갯벌 위로 딱딱딱! 북소리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마을의 어른 게들이 집게발을 부딪혀 보내는 경고 신호였다. 
방게는 몸을 움츠리며 재빨리 가까운 바위 아래로 몸을 숨겼다. 
“아, 내 집게가 안 빠져!”
옆 바위틈으로 들어가려던 농게가 멈춰 서며 소리쳤다. 큰 집게발이 바위틈에 끼어 도무지 빠지지 않고 있었다. 
방게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농게 쪽으로 몸을 옮겼다. 
그 순간, 웅덩이 가장자리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소년이 허리를 굽혀 농게를 들여다보더니 손을 뻗었다. 
“안 돼!” 
방게는 농게의 다리를 붙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하지만 소년의 손이 이미 농게를 움켜쥐고 있었다. 다음 순간, 두 게는 함께 매달린 채 유리병 속으로 떨어졌다.
“아얏!”
농게의 몸이 병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툭!
붉은빛이 감도는 커다란 집게발이 튕겨 나가듯 바닥을 굴렀다.
“농게야! 괜찮아?” 방게는 급히 다가가 친구를 흔들었지만, 농게는 눈자루를 접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떨어진 집게발을 들여다보다 얼굴을 찡그렸다.
“에이, 부러졌잖아.”
그러곤 집게발을 휙 던져버렸다.
두 친구를 태운 자동차는 바다를 떠나, 강과 들판을 지나갔다. 방게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나가는 모든 풍경을 기억하려 애썼다. 하지만 도시에 들어서자 높이 솟은 회색 건물들과 쉼 없이 울리는 자동차 소리가 방게를 움츠러들게 했다.
소년은 집에 도착하자 두 게를 어항으로 옮겨 담았다. 어항 안은 반짝이는 자갈과 얕게 고인 물, 색색의 모형 해초와 바위들로 꾸며져 있었다. 가운데엔 높다란 성 모양의 장난감이 있었고, 그 위로 환한 전등이 마치 태양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방게는 농게를 부축해 성 안쪽 그늘로 데려갔다. 농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은 작은 집게발 하나만이 미약하게 꿈틀거릴 뿐이었다.  
소년은 마른 새우 몇 마리를 어항에 뿌려주고는 사라졌다. 방게는 멀찍이 숨어 지켜보다가 먹이를 몰래 모아 농게 곁에 가져다 놓았다.
“농게야, 뭐든 좀 먹어. 그래야 힘을 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잖아?”  
밤이 되자 농게는 조용히 먹이를 받아먹었다. 방게는 그저 농게가 빨리 기운을 차리기만을 바랐다. 농게라면 어떻게든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방게는 소년의 웃음 소리에 깨어 성 밖을 살짝 내다보았다. 농게는 어느새 일어나 어항 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이 먹이를 든 손을 흔들 때마다 농게도 그 방향으로 따라 움직였다. 소년이 등을 쓰다듬어도 농게는 피하지 않았다. 큰 집게발을 잃은 농게의 몸은 전보다 더 작아 보였다. 
“이리 와. 이거 정말 맛있어.” 농게가 방게를 부르며 말했다. 
“난 누가 주는 음식을 그냥 받아먹기 싫어.”
며칠이 흘렀다. 어항 속에서는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답답해진 방게가 농게에게 물었다. 
“농게야,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뭘 어떻게 해.” 농게는 소년에게서 받은 마른 새우를 씹으며 말했다. 
“집으로 가려면 말이야, 내가 뭘 하면 되겠니?”
농게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날부터 방게는 성 구석에서 어항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혹시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파도 자갈 아래에서는 차갑고 단단한 감촉만 전해졌다.
“방게야, 넌 왜 자꾸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니? 그렇게 꼭 집으로 가야만 하겠어?”
농게가 말했다. “여길 봐. 때가 되면 소년이 먹을 것도 주고 물도 줘. 이렇게 편한 데가 어딨어? 난 여기가 참 좋아.” 
방게는 농게의 말을 듣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거야? 너는 우리 무리의 대장이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주는 먹이만 기다리고 있어. 마치 어린 게 같아.” 
잠시 숨을 고른 뒤, 방게가 다시 말했다. “너는 여기가 정말 그렇게 좋아? 여기 있는 건 전부 가짜잖아! 웅덩이도, 해초도, 햇님도! 넌 바닷물이 들고나던 우리 갯벌 마을이 그립지도 않니? 나는 꼭 집으로 돌아갈 거야.” 
어느 날, 어항으로 다가온 소년은 먹이를 주는 대신 방게와 농게를 어항 밖으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장난감 블록으로 만든 갑옷을 두 게의 등에 얹었다.
“자, 전사들! 적군을 향해 공격!”
소년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두 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년은 두 게를 양손에 쥐고 서로 부딪치게 했다.

“번개 공격! 꽝!”
두 게의 몸이 세게 흔들리며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재미없어.” 
소년은 방게와 농게를 다시 어항에 넣었다.
성으로 돌아온 농게는 입에 거품을 잔뜩 문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방게는 농게의 숨결이 점점 가빠지는 걸 느꼈다.
“방게야, 나도… 집으로 가고 싶어. 집게발도 없는 내가 돌아가면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두려웠어. 그래서 여기서 버텨보려 했는데…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아. 네가 날 집으로 좀 데려다줘.” 
방게는 농게 곁으로 바짝 다가가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 내가 꼭 집으로 데려다줄게. 갯벌로 돌아가서 건강해지면 네 집게발도 새로 자라날 거야.” 
방게는 자신이 파던 어항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전등 불빛이 하늘처럼 아득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쩌면 바닥이 아니라 위로 가야 할지도 몰라.’ 
다리는 떨렸고, 몸은 무거웠지만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방게는 웅크린 농게의 몸 아래로 파고들어 자기 몸으로 단단히 받치면서 말했다. 
“나를 꼭 붙잡고 있어.”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성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등 쪽으로 조금씩 다가갈수록 숨이 가빠졌고, 어느새 방게의 입가에도 뽀글뽀글 작은 물거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겨우 꼭대기에 다다르자 전등빛이 방게의 몸을 환히 비췄다. 방게는 소리 내어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거품만 터져 나왔다. 그때 방게는 어른 게들처럼 두 집게발을 들고 딱딱딱!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벽에 방게의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작은 몸은 그대로였지만, 그림자 속 방게는 누구보다 커 보였다.
“엄마! 아빠! 이리 와요!”
소년이 외쳤다. 어른들이 어항 앞으로 다가왔다. 방게는 농게를 업은 채 집게발을 힘껏 흔들었다.
“안 되겠다. 지금 바다로 데려다줘야 해. 늦으면 둘 다 죽어.”
소년의 아버지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은 작은 통에 소금물을 채워 방게와 농게를 조심스럽게 담았다.
자동차는 도시를 지나고, 강을 건너, 점점 바다로 가까워졌다. 창문 사이로 바닷바람이 스며들었다. 방게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갯벌에 도착하자, 소년은 두 게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잘 가. 친구를 꼭 지켜줘.”
방게는 잠시 눈자루를 들어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쓰러진 농게를 부축해 마을 쪽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방게야, 고마워.”
농게가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정말… 특별한 친구야.”
방게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더니 갯벌 너머를 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 집으로 가자.”
썰물을 맞은 갯벌 위로, 바닷물이 빠져나가며 새로운 물무늬를 남기고 있었다.
그때, 방게의 작은 집게발이 석양빛을 받아 붉게 빛났다.


<귀뚜라미의 날개> 황정현

 
날개를 지녔지만,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없었던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허공을 날아오른다는 것은 차마 이룰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양 날개가 몸에 달려 있었지만, 그는 그 날개의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주눅이 들어 날개를 펼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채로 웅크린 채 살아가던 수컷 귀뚜라미. 길쭉하고 납작한 몸, 거무스름한 빛깔 때문에 야산의 야생화들은 언제나 그를 외면했습니다.

“우린 곱고 향기로워서 바람이 늘 안아주곤 하는데 넌 늘 혼자지?”

야생화의 비아냥거림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습니다. 귀뚜라미는 그녀의 말을 들을 적마다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를 향해 애타게 헤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긴 시간을 팔짝거리며 뛰어다녀도, 못생긴 수컷을 아껴줄 이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야생화의 말은 그의 마음을 빈 벌판처럼 만들었고, 그는 날개를 접은 채 스스로를 못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날개가 음악의 샘을 담고 있는 소리샘이라는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수컷의 한숨만이 수풀을 가득 뒤덮었습니다.

“넌 날지도 못하면서 거추장스러운 날개는 왜 달고 다녀?”

야생화 무더기들이 수컷에게 비아냥거리자, 수컷은 날개를 더욱 깊숙하게 숨겨서 접은 채로 수풀 깊은 곳에서 웅크렸습니다.

‘나는 아마 평생 외톨이로 살 거야. 이 쓸모없는 날개만 펄럭이며.’

어두운 생각에 빠진 수컷은 달빛이 외롭게 걸쳐진 큰 바위에 다다랐습니다. 그 바위 밑으로 꺼져 있는 웅덩이가 보였습니다. 비관한 수컷은 그 가파른 바위 밑으로 굴러떨어져서 웅덩이로 몸을 던지려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몇십 배는 높은 바위를 향해 귀뚜라미는 뒷다리에 강한 힘을 주어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자신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걸 용서받기 위해 수컷은 떨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날개를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앞날개와 뒷날개를 싹싹 문질러 열심히 비벼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치르르 치르르. 가늘고 길게 우는 울음소리가 수풀을 우아하게 뒤덮으며 낭랑하게 울려왔습니다. 수컷은 놀라서 다시 한번 날개들을 세게 마찰해 보았습니다. 자신의 외로운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고운 선율이 숲속에 운치 있게 울려 퍼져 떨고 있는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수컷은 치르르 치르르 목 놓아 울었습니다. 연주에 골몰하다 보니 어느새 죽으려고 했던 처음 생각마저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처음으로 포근하게 보듬어준 음악에 취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날 이후, 매일 보름달이 뜨는 밤, 수컷 귀뚜라미는 자신이 죽으려고 했던 바위를 찾아가 연주에 열중하였습니다. 마음이 쓸쓸해질 때면 앞날개 한쪽의 마찰 판과 다른 날개의 울림판을 사용하여 구슬픈 음악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양쪽 앞날개를 문지르는 모양은 마치 고음의 바이올린을 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숲속에서는 마음을 울리는 바이올린 연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치르르 치르르. 수컷의 연주가 수풀림을 가득 메워 구슬픈 세레나데를 연주하노라면, 수풀에서 마음이 서글펐던 다른 풀 벌레들도 일제히 따라 합창했습니다. 이제껏 야생화의 향기만 포옹하던 산들바람까지도 수컷에게 다가와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네 음악을 사랑으로 귀 기울여 줄 누군가가 언젠가 찾아올 거야.”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면서.

 

밤새 날개가 다 닳아 부스러질 때까지 바이올린 연주를 치열하게 하던 수컷 귀뚜라미는 깊어가는 고독을 벗 삼아서 예술혼이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새롭게 발견한 음악적 재능은 수컷의 텅 빈 마음을 두루두루 어루만졌습니다. 매일 밤 연주가 울려 퍼지던 숲속에서 그 음악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수컷의 예술적인 곡 연주는 그곳에 살고 있던 암컷 귀뚜라미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암컷은 앞다리에 달린 작은 귀로 수컷의 그 감미로운 음절을 밤새도록 들으며 숙면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음악 감상을 하던 암컷은 오래도록 들었던 그 음악의 출처가 불현듯 궁금해졌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가 있지? 내가 한 번 연주자를 만나 봐야겠다.“

암컷 귀뚜라미는 소리를 따라 수풀을 헤맸고, 공고도 붙였습니다.

[밤마다 구슬픈 단조의 선율을 연주하던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자를 찾습니다. 연주자를 찾으신 풀 벌레님께는 시원한 저녁 이슬 일곱 방울을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그 공고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가서 수컷 귀뚜라미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저녁 이슬 일곱 방울에 눈이 멀어 자신을 알려주는 풀벌레들이 있을까 봐 수컷 귀뚜라미는 수풀림의 으슥한 곳으로 더욱 깊숙이 숨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은둔하며 바이올린 연주에만 전념했습니다. 그 선율을 타고 숲속의 바람도 우아한 왈츠 춤을 추며 귀뚜라미에게 조용히 손뼉 쳐 주었습니다. 보름달이 차고 기울고, 이제 혼자서 독주회를 열어도 될 만큼 수컷의 실력은 갈고 닦여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수컷 귀뚜라미는 연주에 어김없이 집중해 있었습니다. 너무 열심히 바이올린을 켠 탓에 목이 탔습니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수컷은 저녁 이슬로 목을 축이려고 수풀림으로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한 해 내내 수컷 귀뚜라미의 연주를 얌전히 듣기만 하던 암컷은 연주자를 찾으려고 애간장이 다 탔습니다. 상금으로 줄 신선한 저녁 이슬을 매일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기에, 암컷 귀뚜라미도 수풀 밖으로 나왔습니다. 더듬더듬 저녁 이슬을 따기 위해 날개를 뻗치는 암컷 귀뚜라미. 그녀는 목이 말라 허겁지겁 발을 뻗는 수컷 귀뚜라미를 거기서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다른 풀벌레와 새들이 이슬을 다 따 먹어서 저녁 이슬 일곱 방울만 남아 있는 날이었습니다. 암컷 귀뚜라미는 수컷을 바라보며 일러주었습니다.

“이 저녁 이슬은 제가 꼭 가져가야만 해요. 공고에 내놓은 약속을 지키려면 이 저녁 이슬이 절실히 필요하거든요.”

목이 너무 말라서 입이 쩍쩍 타들어 가던 수컷은 암컷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주에 너무 몰두한 탓에 그날 밤, 저녁 이슬을 마시지 않으면 실신할 듯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수컷은 암컷에게 넌지시 일렀습니다.

“그 곡을 연주하는 이를 내가 알고 있소. 나에게 그 저녁 이슬을 넘기면 그 자에게 인도해 주겠소.”

수컷은 목이 말라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힘겨웠습니다.

“정말이죠? 약속했으니 여기 저녁 이슬 일곱 방울 드려요.”

수컷은 일곱 방울을 한 번에 마시고, 그제야 후회했습니다. 그 연주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었어요. 이제껏 야생화에게 따돌림만 당해왔던 몸이라 더더욱 자신이 없었지요. 수컷은 혼자 고민만 깊어졌습니다.

‘내가 바로 그 연주자인 걸 말하면 또 못생겼다고 따돌림을 당하겠지? 하지만 이미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하지?’

홀로 고민이 깊어진 수컷은 암컷에게 돌려 말했습니다.

“그자가 어떤 모습이든 정말 괜찮겠소?”

“저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암컷 귀뚜라미예요.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자가 어떻게 생겼든지 간에 그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이라면 분명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이일 거란 확신이 들어요. 그런 아름다운 연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는 아름다운 귀가 없는 것이겠지요.”

암컷의 대답에 수컷은 자신의 양 날개를 펴며 암컷 앞에서 모든 걸 털어놓을까도 잠시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의 외모가 자신 없었습니다.

 

암컷은 지그시 눈을 감고 회상에 잠겨 수컷의 발을 잡고 아늑한 한 수풀 방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그곳에는 암컷의 아버지 사진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그 아버지가 암컷에게 남긴 유산 한 개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습니다. 곡 연주를 담은 작은 녹음테이프였습니다. 그 테이프를 라디오에 넣고 틀자, 아름다운 음악이 수풀을 가득 낭랑하게 메웠습니다. 귀뚤귀뚤 치르르 귀뚤귀뚤 치르르르. 아름다운 귀뚜라미의 연주가 흘러나오자 수컷과 암컷은 그 음악의 선율에 한껏 취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윽고 아버지의 멘트도 흘러나왔습니다.

“아가야. 음악은 정직하단다. 고운 영혼의 선율은 음악에 반영되기 때문이지. 아름다운 연주는 아름다운 영혼에 깃든다는 걸 기억하렴.”

아버지의 멘트가 끝나자 수컷과 암컷은 생각에 잠겨 침묵을 유지했습니다. 잠깐의 어색한 조용함이 물러가고, 암컷은 조심조심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아버지의 음악을 생중계로 들을 수 없어서 마음이 아주 아팠어요. 하지만 아버진 제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귀를 선물해 주시고 떠나셨어요.”

암컷은 지그시 앞다리의 귀를 수컷에게 내밀어 보였습니다. 그 귀는 과연 온갖 표정의 선율을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품을 가진 듯 보였습니다. 마음이 절로 움직인 수컷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당신이 왜 공고를 붙여서까지 귀뚜라미 연주자를 찾으려 하는지 이제 좀 이해가 되는구려. 아버지의 유산 덕으로 당신은 아름다운 연주를 알아볼 귀가 생겼으니 말이오. 정말로 그 음악가는 아무리 추하더라도 용기가 날 것 같구려. 자신의 음악을 사랑으로 들어줄 이가 이렇게 존재하니 말이오.”

수컷은 암컷의 마음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슬며시 그녀의 마음을 떠보았습니다. 암컷은 다시 얼굴을 붉히며 상기된 채로 대답했습니다.

“그분을 진짜로 아시면,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하시는지도 혹시 아세요?”

수컷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을 되찾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이는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연주를 하곤 한다오.”

수컷은 양쪽 앞날개를 문질러 바이올린 활처럼 소리를 만들었습니다. 한 해 내내 홀로 연습했던 그 음악을 그녀 앞에서 마침내 선보였습니다. 순간, 얼음장처럼 얼어붙은 암컷 귀뚜라미. 자신이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수컷의 연주를 바로 앞에서 듣게 된 감격과 놀라움에 아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수컷은 자기가 저도 모르게 연주를 해 버린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져 날개만 바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못생긴 외모를 보고 다시 따돌림을 당할 거라고 두려움이 밀려 왔기 때문이었지요. 암컷은 한참 동안 놀라서 침묵하다가, 이윽고 입을 뗐습니다.

“아니! 바로 당신이 그분이시군요. 제가 한 해 내내 찾아 헤맸던 그 귀뚜라미.”

“저런. 들키고 말았구려. 나도 모르게 그만…. 이런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으면서 왜 그렇게 숨어 지내셨나요?”

암컷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수컷에게 거듭 물었다.

“나는 매력이 없잖소. 못생기고, 칙칙하고, 납작하고.”

“그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달란트를 지녔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말로 내 연주만 듣고서 내가 아름답게 보이는 거요?”

“그럼요. 저는 당신처럼 날개에 마찰판과 울림판이 없어요. 아무리 날개를 바스러지게 비벼봐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걸요. 그 때문에 평생 제 짝이 될 사람은 아름다운 날개 소리를 지닌 이였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는걸요?”

암컷은 수줍어하며 수컷에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수컷은 평생 자신을 아름답다고 말해줄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만 여겼는데 놀라움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내가 다시 연주를 해 보겠소. 나의 연주를 아름답게 느껴줄 풀벌레를 찾아 평생을 헤맸지만, 이제껏 찾아볼 수 없었소. 이 연주는 내 가치를 알아봐 주는 당신이 있어서 빛나는 것이라오. 당신의 아름다운 귀에게 이 음악을 바치고 싶소.”

수컷은 감격하여 사랑의 인사를 켜는 바이올린 연주를 하였습니다. 귀뚤귀뚤 치르르르 귀뚤귀뚤 치르르르. 그렇게 사랑의 인사를 연주한 수컷의 음악에 취해서 암컷 귀뚜라미는 황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알을 함께 낳고 보호해 줄 짝을 마침내 찾았다는 생각에 말이지요. 그녀는 조용히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당신의 연주는 나를 늘 따라다녔어요.”

“절망 끝의 바위 위에서 나를 살린 그 음악이 결국 당신에게 나를 데려왔소. 내 음악은 이제 당신과 연결된 한 곡의 듀엣이오.”

수컷은 암컷에게 자신의 소중한 씨앗 한 점을 전달했습니다. 암컷은 그 씨앗을 부드럽게 받아 소중히 안았습니다. 둘은 서로의 날개를 보듬어주며 칙칙했던 흙 속에 사랑의 씨앗을 품은 알을 따뜻하게 낳았습니다. 수컷은 알을 위해 자장가를 연주해 주었고, 암컷은 그 소리를 조용히 품에 안고 흐뭇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귀뚤귀뚤 치르르르 귀뚤귀뚤 치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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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매사에 철저했다. 그리고 당신 나름대로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었다. 여덟 식구가 아버지의 군인연금으로 근근이 끼니만 해결하던 시절, 엄마는 아버지 연금이 들어오는 날이면 늦은 밤에라도 부식가게의 외상값을 갚으러 갔다. 내일 아침에 갖다 주면 되지 않느냐고 아버지가 말했지만,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엄마의 철저함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민 통장으로도 증명되었다. 세 개의 통장 중 한 통장 앞면에는 ‘장례식...
정성화
밤의 날개 2026.04.03 (금)
고요가 조용히 날개를 펼칩니다팔랑이는 이파리처럼, 이파리의 날개처럼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산비둘기들이 마을로 내려옵니다내려와 잠드는 내 집 처마 끝에달빛을 비춰줍니다고요의 숨소리가 들립니다달빛도 긴 그림자의 그늘을 접고나뭇가지에 어깨를 걸치고 앉아고요가 잠든 집을 지켜줍니다 고요가 조용히 일어나 잠들려는 나를살짝 깨웁니다눈뜬 별들의 바다가 깊습니다나도 살짝 별들의 어깨에 기대봅니다잠이 다...
이영춘
기념우표 2026.04.03 (금)
광화문 갈 때면 우표를 샀다참나리 쑥부쟁이 복수초 전집내겐 그래도 꽃보다 여인이었고꽃을 꼽지 않아도 내 사랑의 우아함이 전송되는게 중 잘난 우표 하나 뽑아 들고이제 더 이상 그립지 않다는 듯편지 봉투 한 모퉁이에 첨부했다보고 싶을 땐보고 싶어 미친 그리움가슴팍에 먹먹하더니겨우 사랑한다는 말 하나우표 하나에 부탁하고나는 멀쩡하다 흉내 한번 내봤다사람이 지나가면추억이 남는다지만우표가 지나가면가격표를 남긴다발품해 수집한...
김경숙
해외 집회를 인도하러 갈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내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간증으로 나눌 때 많은 영혼들이 위로를 받고 다시 소망을 얻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얼마나 깊은 뜻을 이루어 가는지를 느낀다. 우리의 눈에는 고통과 어려움으로 보였던 시간조차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살리기 위한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박명숙
아들아 2026.03.27 (금)
탯줄이 우리를 연결해 주고그 고리마저 흔적만 남기고 떨쳐냈지만오묘한 사랑의 영향은 계속 흘러 가고 다리 마디마디 여물어지고가느다란 팔 두터워지는 너를 보며내 가슴속 사랑이 차곡차곡 쌓아 가는구나 영글지 못해 귀여움이 오동통한손등에 달콤한 과일 향 맡으니사랑이 배불러 차오르며 새근새근 잠든 너의 코끝을 마주대면숨소리는 희망을 알리는 알람 되어사랑의 기적을 전달해 주는구나
김윤희
까치까치 설날은 2026.03.27 (금)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할머니 방에 들어간다. 오동나무 반닫이 3층장을 조심스레 연다. ‘이거, 내 색동저고리!’ 손가락을 꼽아본다. 설날까지 몇 날이나 남았나.  동지 지나 섣달이 들면 할머니는 가마솥에 장작을 때 하루 종일 조청을 고셨다. 안방 아랫목이 설설 끓어 콩댐으로 길들인 노르스름한 장판이 탈까 봐 놋대야에 찬물을 담아 이리저리 옮기셨다. “아가”하고 부르시면 나는 냉큼 달려가 장독대 뚜껑을 뒤집어 들고 섰다....
김아녜스
선택은 중요하다 2026.03.27 (금)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선택을 시작한다.일어날 것인가, 조금 더 누워 있을 것인가. 창문을 열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커피를마실지, 물로 하루를 시작할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겹겹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모여 인생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선택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저 늘 그래왔다는 이유로, 익숙하다는 이유로 하루를 산다. 그래서 가끔은 삶이 내가 정한 방향이 아니라, 어디선가 밀려와 떠내려가는...
우제용
청개구리 2026.03.27 (금)
예쁘기도 하여라봄 풀 돋아난 마당여가 저기 고운 초록색폴짝 폴짝 뛰어다니는 청개구리어른 엄지손톱만한 쬐그만 것이윤기나는 작은 나뭇잎처럼파라솔 위에도 제라늄 화분에도 붙어있다열린 현관으로폴짝 아기 신발코에 앉아사방을 두리번 두리번꼬리치는 강아지 기척에 놀라포올짝 현관 문 위로 뛰어오르는높이뛰기 선수볼롱 볼롱 턱 부풀리며 숨 할딱인다고놈, 참, 어디서 왔을까?신기하가도 하여라
임완숙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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