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장강(長江)의 뒷물결

심현숙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5-12-26 16:24

심현숙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미국에서 아들 내외가 오랜만에 다녀갔다. 딸이 며칠 휴가를 받아 우리 네 식구는 모처럼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록키 포인트 공원에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사진도 찍고 일식집에 들러 생선 초밥과 회도 먹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일상일수도 있는 일들을 우리는 특별한 날이나 된 양 참 어렵게 했다.
 그다음 날도 우리는 가족여행을 온 것처럼 가스타운(Gastown), 밴쿠버 다운타운, 스탠리 팍, 그리고 UBC 박물관까지 관광을 다녔다. 오가는 차 안에서 주고받은 대화 중에 아들이 이런 말을 꺼냈다.
 "건강 회복하셔서 저한테 짐을 주지 마세요." 갑작스러운 아들의 말에 나는 어안이 없었다.
 "네 동생과 나는 이곳에서 잘 살고 있는데 짐이라니?" 기분이 언짢았다.
 "엄마가 아프시다는 자체가 마음이 무거워요."
 "그래, 그건 맞다. 너희들도 이번 건강진단 결과가 안 좋다니 내 마음도 힘들구나." 아들이 말하기 전에는 아들에게 마음의 짐을 줬다는 걸 전혀 생각 못 했다. 생활비로 부담을 준 적도, 병원에 와서 나를 간병하라고 한 적도 없기에 나는 아들 내외에게 짐이 되었다고는 생각 못 했다.
 사실 우리가 이리 의사소통이 안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일상을 잃게 된 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아들이 속에 있는 말을 하게 된 셈이다. 우리는 남편을 돌보는 일에 급급하여 아무것도 생각 못 하고 15년 반을 살았다. 그 후 팬더믹으로 멀리서 사는 아들네와 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데다 나까지 투병하고 보니 웬만한 일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양 무심하게 지나갔다.
 아빠가 병상에 계실 때, 아들은 집에 오면 아빠를 뵙고 아빠가 묻는 말에 몇 마디 대답했던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아빠가 요양병원으로 가신 후에는 더욱 말수가 적어지셔서 눈빛으로만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나누었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원래 평소에도 속에 있는 말을 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보니 아들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교수라는 직업에서 비롯된 것인지, 병상에 계셨던 아버지의 부재로 정신적인 부담이 없어진 건지, 아니면 힘든 단계 단계를 정상까지 오르며 얻은 자신감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들이 마음을 열어 준 것만도 놀랍고 고마웠다. 서로 입장이 다르다 보니 언쟁도 좀 있었지만 금방 아들 편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맥길대 학부 시절 몬트리올에서 200불짜리 방을 렌트해 살면서 작은 생활비로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 첫 직장을 잡아갔을 때도 월세 내고 나니 200불 남아서 첫 월급 받을 때까지 진짜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아들은 그때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안타깝다. 이민지에서 고생하는 부모에게 생할비를 더 달라고 말할 수 없었지 싶다. 이렇듯 아이들은 노동 속에서 가족을 위해 온 힘을 다 하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 언제부턴가 자식들은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만 마음이 아프고 많이 미안하다. 어릴 적 유아 천식으로 위태위태하던 그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리도 무심했는지 많이 자책 된다. 부모로써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돈 얼마 주는 걸로 책임을 다한 줄 착각했던 모양이다. 가족 간에 허심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고 사랑인데, 우리는 부모라는 권위만 세웠지 그런 교육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들은 모진 폭풍우 속에서 어깨로 부딪치고 등으로 버티며 계곡을 흐르고 강을 돌아 이제 장강에 이르렀을 것이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는 백인 사회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두려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진급에서 탈락했을 때는 죽음까지도 생각했었다는 아들의 고백에 가슴이 서늘했다.
 그래도 떠나기 전날 밤에 아들이 했던 말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동생과 싸우면 항상 나만 꾸중하시고 매도 맞아서 아버지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고 바르게 사셨던 아버지를 존경했어요."라며 50대 중반 아들의 눈에 눈물이 글썽했다. 그 눈물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을 보았다.  아들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지만, 부쩍 장성해 버린 아들의 손을 선뜻 잡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6시 렌터카를 몰고 아들 내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전복도 많이 드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셔서 다음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봬요."하며 나를 꼭 안아줬다.
 "와 줘서 고맙다. 운전 조심해서 가라"고 나도 씩씩하게 말했다. 그리고 딸처럼 느껴졌던 며느리를 꼭 안으며  "우리 작은딸 가네"하며 울먹였다. 지금도 그 새벽이 눈에서 아른거린다.
  
 가족이란 오래도록 만나지 않아도, 속에 있는 말을 다 하지 않아도 사랑이고 희망이다. 아픔을 줄까 봐  침묵으로 배려할 때도 있을 테니까. 그러나 자주 만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길이 아닐까.
 가족이 있어 난 지금도 힘을 낸다.  만나니 반가웠다. 집안에서 남자 목소리가 나니 든든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변해버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안타까웠다. 더 안타까웠던 건 오랜 세월 몰랐던 자식의 힘든 시간이었다. 아들의 힘든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이제 모든 어려움은 지나갔어요"하며 나를 다독인다. 난관을 헤치고 혼자 어른이 되어 자기 인생을 스스로 분별하고 스스로 결단하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이제 우리 집은 부모와 자식들이 자리가 바뀌었다. 앞서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엄마가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고 흘러가듯(장강후랑추전랑), 부모를 제치고 앞서가는 그들 뒤에 서서 박수를 보낸다.
  “끝 없는 장강의 물결은 도도하게 흐른다” (두보의  ‘등고’ 중에서)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2026년 5월 27일 9시, 트왓슨 페리 터미널에서 빅토리아섬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도산 안창호 함 공개초청>;을 받아 견학 가기 위해서이다.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 도산 안창호 함은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 수주전을 앞두고 캐나다 서안 에스퀴몰트 해군기지에 입항했다고 한다. 캐나다 해군의 환영 행사가 끝난 뒤, 교민들을 초청하여 도산 안창호함과 그 잠수함을 호위하기 위해 태평양을 횡단해 온 대전함을 공개하게 된 것이다....
심현숙
김희성/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나는 긍정적인 태도와 에너지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협력하고, 명확하게 소통하며, 맡은 일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언어와 문화 모두 낯설었다. 그때 이웃들이 보여준 작은 친절들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그런 경험들이 기억에 남았다. 그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김희성
장경숙/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쌓아온 세월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먼지 쌓인 서랍처럼 오래된 기억들이 스르륵 쏟아진다누군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무엇을 버려야 할까무엇을 남겨야 할까엉킨 실타래 같은 삶 속에서 손끝은 자꾸 주저한다겉으로는 반짝이는 도자기 같은 하루들그러나 안쪽은 오래된 나무 탁자처럼 균열이 가고한 번도 쓰이지 않은 채시간의 녹이 스민 물건들만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과욕과 허세, 사치라는 이름의 쇠사슬로나를...
장경숙
곰의 겨울잠 파티 2026.08.07 (금)
단풍잎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던 날, 실버우드 농장 친구들에게 곰이 보낸 초대장이 도착했다.숲속 겨울잠 파티에 초대해!맛있는 음식과 잠옷을 챙겨 친구들과 함께 와!언제: 첫서리가 내리는 날부터 첫꽃이 필 때까지어디서: 실버우드 숲속 큰바위 동굴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꼭 알려줘!개는 초대장을 보자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우와!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실컷 자는 파티라고? 우리 함께 가자!” 돼지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윤경란
이동호/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인의 집에 초대받아 아내와 함께 갔다. 테라스에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고, 준비된 음식과 술은 대화를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우리는 웃음을 나누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사람은 가볍게 스쳤고, 공기는 따뜻했다. 잔 위의 술은 천천히 비워졌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괜찮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 평혼 속에서 잠시...
이동호
조순배/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비 오는 오솔길 웅덩이에문득 바다가 들어와작은 파도를 안았다가 놓아준다 둥글게 번지는 물주름마다한때 내 안에 머물던 날들이젖은 하늘빛으로 되살아난다 맑은 웃음소리 하나따뜻한 손끝의 떨림 하나말없이 바라보던 눈빛...
조순배
건너간 것 2026.07.31 (금)
점심 무렵아들에게서문자 하나 도착했다엄마 김밥오늘도 내 몫은 없었어점심시간이면김밥은 이미 동난다나는오이와 비트머위대와 참비름깻잎, 적상추, 당근을흙의 시간을 접듯김 위에 올렸다계란 하나 말아 넣을 때마다바람 한 줄햇살 한 줄이슬 한 줄말려 들어갔다아들은다른 사람의 도시락을 먹고다른 사람들은내 텃밭의 계절을 먹는다말은 통하지 않아도한입 베어 문 사람들의 표정이먼저 번역된다나는 오늘도흙을 만지며내일을 만다
김회자
로히드몰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주변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생을 마친 내 주변의 이웃들이 하나둘 삶의 문을 닫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몰 밖으로 나오니 넓은 주차장에는 몇 대의 차만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내 차를 향해 걸어가는데, 오래전 어느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후배는 삭발하고 절에서 수행하던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 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이종구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