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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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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7-11 09:42

심현숙 (사)힌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나는 아버지가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억이 있다. 어렸던 내게 위험이 닥쳤을 때 무릎 굽혀 내밀어주셨던 아버지의 등이 아직도 내게는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단옷날이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를 따라 장흥군 관산 면에서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멀리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친구는 큰방으로 나를 안내했고, 방안 낮은 선반에는 돌아가신 친구 아버지의 영정과 그 앞에 수북이 담은 밥 한 그릇이 물 한 사발과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어린 마음에 뭔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정령이 붙어 있다고 어슴푸레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는 귀한 손님이 왔다고 고인의 영정 앞에 놓인 쌀밥을 내 앞에 턱 갖다 놓았다. 정말 겁이 나서 먹기가 싫었는데, 친구가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입안으로 꾸역꾸역 밥을 뜬 수저를 밀어 넣었다.
 저녁이 되자 어지럽기 시작하더니 자정이 넘었을 때쯤 열이 점점 높아지자, 놀란 어른들은 동네 청년 두 명을 딸려 면내에 사는 우리를 보냈다. 초등학교 옆을 지나가는 순간 우리와 함께 온 청년들이 갑자기 양쪽으로 갈라져서 장도(長刀)로 나를 못 가게 막았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획 돌아 학교 운동장으로 망아지처럼 뛰었다. 교장 선생님 관사로 정신없이 뛰어 들어온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마루로 올라가 방문을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교장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방문을 열어주시고 나를 이불속에 누이셨다. 할머니 품에 안긴 듯 안도했다.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밖에서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하는 남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청년들로부터 기별을 받고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는 두 분께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내 앞에 쭈그려 앉으며 등을 내미셨다. 나는 "아버지" 하며 아버지 등에 찰싹 업혔다. 그리고 작은 얼굴을 살포시 댔다. 아버지는 새벽 두 시경이었지만 딸아이의 진료를 위해 의원 문을 두드려 의사 선생님을 깨우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급체해 고열이 나다 보니 헛소리에 환상까지 이상(異常)증세가 나타났던 모양이다. 아버지 등에 업혀 집에 오는 동안 불안했던 마음이 차츰 사라지면서 안정을 찾았던 것 같다. 그 뒤 내게 아버지의 등은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등불처럼 든든했다.
 
 아버지는 매우 인자하셨다. 집안에서 아버지의 고성(高聲)은 들을 수 없었고, 8남매를 양육하면서 매 한번 들지 않으셨다. 자식이 잘못을 하면 꾸짖는 대신 타이르며 기회를 주셨다. 내가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 고향의 한 청년이 연서(戀書)를 보낸 적이 있다. 서중 교감관사로 발송한 우편물이 간혹 학교로 배달되어 아버지가 가져오시곤 했다. 아버지는 약주를 들고 오셔서 편지를 주시며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셨다. 어찌나 쑥스럽던지 곤욕을 치렀다. 그 일은 호된 꾸중보다 더 무서웠다.
 내가 교직에 있을 때, 아버지는 학교에 찾아오셔서 교장 선생님께 딸을 부탁하시곤 했다. 육군수송학교 교관이었던 남편과 진해에서 살 때도 먼 곳까지 오셔서 딸이 근무하는 학교를 찾곤 하셨다. 아무 배경도 없는 타향에서 힘들겠다는 마음에 기를 살려주고 싶으셨으리라.
 이민 오기 몇 달 전에는 '사람이 떠날 때의 몸가짐'을 전화로 일러주시며 침울해하셨다.
"누구나 떠날 때는 조용히 떠나야 한다. 물가의 새를 보아라. 그들은 비상할 때 조금도 파문을 일으키지 않고 사뿐히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오른다." 누가 내게 이렇게 인격적으로 따뜻하게 타이르거나 조언해 준 사람이 있었던가. 아버지는 내 인생에 지주(支柱)이셨고 스승이셨다.
 아버지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셨지만, 일본 유학 시절에도 고향에 오시면 들판으로 소를 끌고 나가셨다고 한다. 내게 겸손한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법관이 되려고 하였지만 6.25사변 통에 교육계로 투신하셨다. 평교사로 출발하여 정년퇴임 때까지 학생들과 운동장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분이셨고, 그것이 아버지의 긍지이기도 하였다. 첫 교장발령을 받아 간 중학교에서는 제자들에게 베푸신 교육열과 제자 사랑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렇듯 밖에서는 존경받고 고매한 인품을 지닌 분이셨지만, 우리 아버지도 여느 아버지들처럼 삶이 버거우셨던 것 같다.
 IMF 때인 1997년 여름, 광주 친정집에 갔을 때 러닝셔츠 위로 비친 아버지의 등을 우연히 보고 마음이 울컥한 적이 있다. 내가 어릴 때 업혔던 아버지의 포근한 등이 아니었다. 너무도 작아져 왜소해진 등이었다. 젊은 시절의 의젓하고 탄탄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힘없이 쓸쓸해 보이는 노인의 뒷모습이었다. 어딘지 지처보이고 외로워 보이는, 말할 수 없는 고뇌를 가슴에 가득 품고, 견디며 사는 아버지를 그분의 등에서 느꼈다. 이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IMF로 직장을 잃은 자식, 사업이 휘청거리는 자식, 몸이 성치 않은 딸로 한순간도 심신이 편하신 날이 없으신 듯했다.
 나는 아버지의 등이 볼품없이 변해버린 것도 모르고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았다. 아버지는 평생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종손으로서, 교육자로서 기쁨과 보람도 가지셨겠지만, 책임감에서 오는 긴장과 고심도 크셨으리라. 아버지도 조부모의 귀한 자식이었는데 그것도 잊은 채 처음부터 아버지였던 것처럼 묵묵히 등에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걸어오셨다.
 지나고 보니 나는 아버지의 어떤 고통도 이해하려고 아니 했고, 위로 한번 해드린 기억이 없다. 손 한번 잡아드리며 '아버지, 저희 키우시고 돌보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못 해 드린 것이 크게 후회된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늘 '부모의 그늘에 보호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태어날 때, 등에다 한 장의 커다란 캔버스를 짊어지고 나온다.'라고 말한 화가가 있다. 그 새하얀 캔버스에다 사람은 하루하루의 삶을 그려간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짊어지고 나온 캔버스에다 지나온 날들을 날마다 그리신 것이다. 최선을 다한 인생에도 비애는 있기 마련이다. 누구와도 끝내 공유하지 못했던 고독, 어리석음, 후회 등이 회한으로 아픈 풍경이 되어 등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남자는 등으로 운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버지도 수없이 그리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릴 적 업혔던 아버지의 등만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등은 내 삶에 용기를 주었고, 늘 응원하며 길을 안내해 준 이정표였다.
 나의 등도 이제 볼품없이 빈약해졌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내 ‘아버지의 등’같은 존재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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