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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버려 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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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5-10-24 16:07

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한 달 여를 아주 심하게 앓았다. 대학병원의 응급실로도 들어가고, 진통제를 먹어보고 주사를 맞아 봐도 가라앉지 않는 통증은 어디선가 보았던 그림 한 폭을 떠오르게 했다. 기억 속의 그림은 빨강과 검정의 소용돌이였다. 보고만 있어도 극도의 혼돈과 불안을 느끼게 하는, 내 몸이 빨려 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나 이번 내 상황은 세탁기의 탈수 통 속에서 돌아가는 빨래 마냥 그 그림 속 휘돌이 속으로 온 몸이 아닌 머리만 빨려 들어가는 고통이었다.

앓는다는 것, 거기엔 분명 원인이 있을 터였다. 그러나 통증은 극에 달하는데도 현대과학 첨단 장비의 대답은 '이상 없음'이요 '아주 정상임'일 때 그것을 인간 능력의 한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장비적 한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그 '이상 없음', '아주 정상임'과 견딜 수 없는 아픔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통 , 난 두통이란 게 그렇게 크고 깊고 넓은 것인지 몰랐었다. 두통의 종류만도 무려 400종이 넘는다고 했다. 내게 온 놈은 그 중 대단한 악질이었다. 내 머리 속을 제 마음대로 마구 드나들면서 심심하면 걷어차고 짓밟고 비벼댔다. 어떨 땐 마구 쾅쾅대며 발구름을 하기도 하고 아주 기분 나쁘게 직직 끌기도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온갖 못된 심술을 다 부렸다. 그때마다 나는 자지러지고 머리를 움켜쥐며 신음하다가 머리통을 떼어내 버리고 싶은 충동, 삽으로 아픈 부위를 푹 파내어 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으로 몸을 떨었다.

녀석은 그런 나를 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는 것 같았다. 내가 고통스러워 하면 할수록 더욱 신이 난 듯 기세를 높였고, 그러면 나는 더 자지러졌다. 그렇게 한바탕식 흔들어 놓고는 녀석은 히죽이 웃고 있을 때면 내 머릿속은 천 만근 무게의 납덩이가 되어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없어져 버렸다. 그러고는 무서울 만큼 잠시 고요가 왔다.

폭풍후의 정적, 그런 불안한 평화 속에서 문득 떠오른 말이 '내버려 둠'이었다.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둬 줄 수 없나, 나를 마구 흔들고 가만있지 못하게 하는 것들에게 제발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 두기를 간절히 애원했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던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도 잡아내는 귀, 아주 여린 빛까지도 감지해 내는 눈, 거기에 맞춰 지나칠만큼 예민하게 자극하는 생각들은 내 머리 속을 창세전의 카오스로 몰고갔다. 꼭 맞는 말이 혼돈이었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 보면 살아있다는 것은 크건 작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아픔을 아는 것이고 그것들로 부터 벗어나려는 힘을 발휘하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사람도 너무 편안하고 아무 일도 없을 때는 살아있음의 의미조차 느끼지 못한다. 말하자면 위기감이 없어진다는 것인데 위기감이란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과 종족 보존의 번식력으로 살아있다는 자기표현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살기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종교에 귀의하는 수가 늘고 풍요롭고 평화로워지면 종교에서도 멀어진다고 한다. 어렵다는 것은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자기 항복이다.

난蘭 한 촉도 생명의 위기감을 느껴야 꽃 촉을 밀어 올린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할 때 기적도 일어난다. 어찌 생각하면 시지프스의 고통도 특별한 배려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통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라는, 아니 살고 싶어 하는 강렬한 생존감을 느끼게 해 주려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만약 그가 수고도 고통도 없는 한 곳에 가만히 갇혀만 있었다면 그는 그걸 더 고통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내게 임한 이 고통도 새로운 전환기에 내게 주신 신의 특별한 계획 속 알림이 아닐까.

몇 날을 계속된 고통 속에서 아무 생각도 않으려 하는데도 자꾸만 이 '내버려 둠'이란 화두가 나를 놓아주질 않는다. 내버려 둠 이란 관심 없음이요, 방관도 되는데 내가 바라는 이 내버려 둠은 그렇게 나를 관심으로부터 버려달라는 것은 아니다. 내버려 둠의 소망은 나를 마구 흔드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적극적 보호다. 사람에게 일상적인 내버려 둠은 아주 나쁜 것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적당한(?) 고통의 흔듦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그 답게 해줄 것 같다.

사람이란 알게 모르게 무수한 인연의 줄에 얽매어 있기 마련이고 보면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생각에서 떠날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생각을 하기에 고통도 느끼는 것이고 그게 살아있는 증거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는데 신경초란 식물이 있다. 무엇이든 자기 몸을 건드리면 움츠러들고 만다. 초등학생 때 교실 앞에 신경초가 심겨져 있었는데 수업만 끝나면 반응하는 게 신기하여 달려 나가 그걸 건드려 보곤 했었다. 하지만 하도 아이들이 귀찮게 하니까 며칠 못가 말라죽고 말았다. 식물도 감당 못할 만큼 귀찮게 하니 죽고 마는데 사람은 어떨까. 어쩌면 나도 여러 가지 갖다 부칠 수 있는 온갖 구실을 내세우며 너무 여러 가지 생각으로 내 머리를 혹사 시켰던 것 같다. 내 머리는 견디다 견디다 항복을 하고 만 것 같다. 인간이란 워낙 독한 생명체라 신경초처럼 죽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도 그걸 감당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거부를 하고 나선 것 같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 하다고 했다. 순리란 말처럼 모든 것을 적당하게 분수 껏 나를 건사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내버려 둠이란 기준에는 바로 이런 '적당'과 '순리'나 '분수'가 담겨있는 의미일 것 같다.

'내버려 둠', 그건 살아가면서 누구나 지켜줘야 할 최소한의 양심적 휴식이 아닐까 싶다. 현대인은 그런 예의를 거의 잊고 산다. 심지어 휴식이란 이름으로도 노동보다 강도 높게 머리를 혹사 시킬 때도 있다. 이번 내게 온 이 고통과 혼란의 의미는 분명 적당히 나를 내버려 둘 줄도 알아야 한다는 신의 따뜻한 배려요 꼭 그렇게 하라는 사랑의 강력한 요구일 것만 같다. 나로부터의 자유함이 선행될 때 내면의 생각도 건강할 수 있으리라. 오랜만에 졸음이 몰려온다.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신 성서의 말씀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끗하게 감사하게 의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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